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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by 다시봄


따지고 보면 그가 겪은 불행이란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권태이든 격정이든, 쾌락이든 고통이든,
모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삶의 무늬를 더 풍부하게 하니까.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인생을 양탄자의 무늬로 보게 된 자신의 사상을 떠올렸다. 그는 의식적으로 아름다움을 찾았다.

눈앞의 아름다운 사물을 바라보는 이는 자신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 없이 평범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수많은 고민과 갈등, 삶의 아이러니가 뒤엉켜 감정을 솎아내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누군가는 가볍게 넘길 일에 붙들려 씨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행복이라 여기는 일을 불행이라 여기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에 잠 못 이루고,

가진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억지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삶을 피로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누적된 피로를 풀 방법만 찾아 헤맨다.

비타민을 먹고 자양강장제를 마셔도 풀리지 않는 피로 앞에서 무기력한 나를 탓하며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려다 다시 피로를 쌓는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의 틈으로 스며드는 단 한 문장이 가슴을 훅 치고 들어와 눈물을 흘리게 만들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문장은 더 이상 글자나 말이 아니라

‘구원’이다.


언제든 위로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내게 날아와 쓰러지기 직전의 나를 일으켜 세운다.

주어진 삶을 살아내느라 잊고 있던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고, 억울하고 속상해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다시 붙잡아 준다.

그리고 깨닫게 한다.

지금 겪고 있는 불행을,

마음 속으로만 인내하는 혼란을,

인생을 아름답게 꾸미는 무늬의 하나로 여긴다면

어떤 고통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내 삶의 무늬를 더 풍부하게 하는 것이라면

풍부해진 무늬로 인해 내가 더 단단해질 수 있다면

괴로워하고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책을 읽다가, TV를 보다가, 누군가의 대화 속에서 ‘단 한 줄의 문장’을 발견하면 마음이 설렌다.

언제든 내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어디에서든 나를 일으키는 문장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그 문장을 나만 알고 있기 아까워 만나는 사람마다 건네고 싶은 충동도 생길 정도로.

나처럼 누군가의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는 구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일으켜 세워진 그가
또 다른 이를 일으켜 세울 거라고 믿으면서.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2> 연재를 마칩니다.

언제든 어디서든 당신을 일으켜줄 문장을 만나길 기대하며.




[지금 연재 중입니다]

월 [나를 일으키는 문장은 어디에나 있다]

화 [일주일에 한 번 부모님과 여행 갑니다]

수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목 [이 사람 어때? AI에게 물었다]

금 [글이 주는 위로-글쓰기 예찬]

일 [이 사람 어때? AI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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