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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에필로그

by 시오

상쾌한 청산도의 아침공기를 마시며 주황색 버스를 탔다. 구불거리는 시골길을 천천히 달려가는 버스 안에서 보이는 청산도의 평화로운 풍경으로 섭섭한 마음이 조금 더 진해지고 있었다. 완도행 배를 타고 완도를 지나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서울에 들어섰다. 고속터미널이 곧이지만 여느 때와 같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차들로 30여분 제자리다. 어둠 속에서 분노한 듯이 붉은빛을 내는 차들이 틈을 주지 않고 미세하게 조금씩 나아간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얼굴을 덮치는 차가운 공기가 서울의 겨울을 알려준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자기도 국내 배낭여행 하고 싶었는데 같이 가지 못한 게 아쉽다며 여행은 어땠는지 물었다. 나는 그건 여행이라기보다는 고행이었다고 답했다. 아름다운 풍경들이었지만 나의 작은 몸뚱이는 너무 고되었다. 하지만 서울을 떠날 때 내 마음을 가득 채우던 검디 검은 덩어리들이 무거운 배낭들을 메고 걷고 또 걷던 중에 새어나갔던 모양이다. 차가운 겨울의 서울로 돌아왔지만,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아도 마음이 편안했다.


왜 그렇게 작은 일에도 나는 내 속을 태우며 마음에 차곡차곡 무게를 더했을까?

작은 파도에도 내 발목을 잡아채 물속 깊이 잡아당겨 내 숨통을 조였던 건 나였다.

맞추지 못한 퍼즐처럼 널브러져 있던 조각들이 제 자리를 찾아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 또렷하게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인간인지라 여전히 마음이 흔들리는 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묻는다.

'내가 죽는 날 지금 이 일이 기억날까? 5년 후에 이 일이 기억이나 날까?'

만일 답이 '아니'라면 내 인생에서 한 페이지는커녕 한 줄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일 텐데 굳이 나를 괴롭히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제 나는 각각의 방향으로 서둘러 가는 사람들을 보며 길 잃은 아이처럼 불안해하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건 '나에게 올바른 방향'으로 한걸음 한걸음 조금씩 걸어가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20231007_184249.jpg 겨울저녁 한참 걸어서 올라간 예쁜 카페에서 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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