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매일 40여분 집까지 걸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걸으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어왔다.
어느 날 집에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울컥하며 길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각각의 방향으로 서둘러 걸어가는데, 나 혼자 길 잃은 아이처럼 어디로 가야 하는지 당최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있는 공간과 나 외의 세상이 다른 차원에 있는 듯했다. 불현듯,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이렇게 붕붕 떠올라 몸이 이끄는 대로 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주위 사람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할 때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계속할 수 있을까? 계속한다면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계속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나는 왜 회사 일에 예전처럼 열정을 갖지 못하는 걸까? 열심히 해보려고 굳게 마음먹어도 왜 그 마음이 쉽게 꺼지는 걸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의미는 있는 걸까? 나의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고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포기하지 않고 열정이 타올랐던 예전의 나를 꺼내어 비교해 보면 지금의 나는 참 부끄러웠다.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는 게 아니라 더욱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지난 몇 년간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살펴보았다. 이것들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인가? 확신이 없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 수많은 이야기들을 했지만 정작 나하고는 솔직하게 대면하고 대화한 적이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지금처럼 하루하루 의미 없이 보내는 게 맞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이해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회사를 떠나고 모든 친구들, 모임들과 연락을 끊고, SNS를 끊고 오롯이 나하고만 이야기하기 위해 퇴사 다음날, 강릉행 기차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