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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an 08. 2024

강릉

도망: 피하거나 쫓기어 달아남.

언제 돌아올지,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가을과 겨울 중간 즈음 떠나는 여행이었다. 짐을 줄인다고 했지만 결국 배낭 2개를 가득 채우고 말았다. 퇴사한지도 모르는 부모님 모르게 배낭들을 앞뒤로 메고 집을 나섰다. 


월요일 낮 시간인데도 서울역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점심시간이라 플랫폼에 들어가기 전, 가게 밖으로 까지 손님들이 붐비는 분식집에서 김밥 한 줄을 샀다. 그동안 구내식당과 집밥만 먹다가 알게 된 김밥 가격에 새삼 놀랐다. 물가가 오른 건 알았지만, 이제 더 이상 저렴한 가격에 간단하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김밥이 아니었다. 


플랫폼으로 가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오니, 다양한 먹거리의 작은 상점들이 줄줄이 있어서 너무 일찍 구매한 10분 전의 나를 원망하며 강릉행 기차가 서있는 마지막 플랫폼으로 내려왔다. 


일반적으로 여행의 시작은 설렘으로 가득 차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새삼 김밥이 알려준 고물가의 현실과 25일이 되어도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을 통장에 대한 염려, 그리고 무엇을 할지 계획도 없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높고 푸르른 가을 하늘이 보이는 창 밖의 풍경도 눈에 담기지 않아 어지러운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강릉역에 도착했다. 쌀쌀한 날씨에 차가운 손을 녹여줄 따뜻한 편의점 커피를 사고 역 밖으로 나왔더니, 함께 내렸던 그 많던 승객들은 모두 이미 제자리를 찾아간 건지 역 밖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강릉역 밖으로 나오면 왠지 바다 한 귀퉁이라도 보일 것 같았지만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한창 공사 중인 아파트들이었다. 

강릉역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인부 한 분 외에 아무도 없었던 한적한 강릉 거리

해가 짧아진 터라 경포대 해변 근처에 있는 숙소를 향해 서둘러 발을 옮겼다. 강릉 시내의 한산한 거리를 보니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 같았다. 앞뒤로 짊어진 배낭으로 금세 피곤해진 몸뚱이, 복잡한 생각들로 무거워진 마음, 그리고 볼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 이런 것들이 내 마음에 틈을 만들고 있었다. 

'나의 선택은 맞는 걸까?' 

'이 겨울에 도보 배낭여행을 하는 게 최선일까?'

'나를 이해하고 싶어 혼자 있고 싶었다면 어딘가에서 한 달 살기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스스로 내린 선택과 결정에 대한 확신의 양은 나이와 반비례하는 것 같다.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은 초동처럼 삭막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숙소로 가던 길

차가운 아스팔트 차도와 논밭, 잎이 다 떨어진 가로수들을 지나 무거운 걸음을 터벅터벅 옮기다 보니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다리 아래로 펼쳐진 갈대밭과 습지, 뽈뽈뽈 헤엄쳐 앞으로 나아가는 오리들, 그 너머에 지평선을 방해하는 하얀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고요한 해 질 녘 경포가시연습지

해 질 녘의 하늘과 그 하늘을 품은 호수의 풍경은 얼었던 마음을 살짝 녹여주었다. 좀 더 가벼워진 걸음을 옮기다 보니 경포호를 따라 걷는 걸음이 서툰 어린아이와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불규칙적이지만 경쾌한 걸음 덕분에 무거웠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배낭을 앞뒤로 메고 걸은 지 2시간 가까이 되어가니 몸은 더 무거워졌지만, 가벼워진 여행자의 마음으로 경포대를 들리기로 했다. 입구부터 펼쳐진 언덕에 잠시 주춤했지만 다행히 언덕길은 금세 끝났고 경포대가 눈에 들어왔다. 유적지라서 출입 불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었다. 관광객들이 있었지만 들어가진 않고 다들 경포대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조선시대에 건축한 건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서 나는 신발을 벗고 처마 밑으로 들어오는 세찬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경포대 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한쪽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해가 지는 무지갯빛 하늘 아래 경포호를 바라보는데 왜 여기에 경포대를 지었는지 이해되었다. 점점 하늘이 어두워지지 않았다면 좀 더 여유롭게 풍경을 즐기고 싶었지만, 여행자의 여유는 접어두고 숙소에 미리 알려드린 도착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경포대를 내려왔다.  


이런 곳에 숙박시설이 있을까 의심이 드는 어두운 비포장 도로를 걷다 보니 숙박시설이라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은 건물이 나타났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극심한 피로 때문에 방에 들어가자마자 스며드는 따스함에 몸이 녹는 것 같았다. 


온기에 편안해진 마음으로 피로를 풀고 있는데 핸드폰에 '엄마'가 떴다. 퇴사한 것도, 강릉으로 온 것도 모르시기 때문에 잠시 주저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강릉이라는 말에 놀라시긴 했지만, 엄마는 퇴사한 것에는 그다지 놀라시지도 염려하시지도 않으셨다. 

'뭐 한두 번 퇴사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잠도 못 자고 일하는 것 보고 내가 그만두라고 했는데 뭘.'

내 인생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서 퇴사 후 엄마의 걱정이 염려스러웠고 그 역시 집을 잠시 떠나온 이유 중 하나였는데, 오히려 의연한 엄마의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엄마와의 통화를 마치고 내 마음은 오히려 복잡해졌다. 


나하고만 오롯이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나는 가족들의 걱정 섞인 부정적인 평가를 대면하고 싶지 않아서 도망 온 건 아닐까? 

2시간여 걸은 피로에 이제 막 시작한 배낭여행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면, 나는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 이 여행을 결심한 걸까? 그저 주변 사람들에게 '또 퇴사'라는 것이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내가 선택한 게 아니고 선택받은 것이라서 혹은 내가 예상한 것과 달라서 회사 업무에는 더 이상 열정을 느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실은 최선을 다했을 때의 결과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그런 핑계로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자신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 제 일 마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그들은 '무엇인가'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내가 '무엇인가'에 꾸준히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어떤 험난한 문제와 고통이나 스트레스가 있어도 끝까지 끌고 나아간다는 것이라고 정의하여 나 스스로에게 진심을 담아 물어봤다.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단 한 번도 없었다. 

호주에서 너무 힘들게 일했다며 '번아웃'이라는 번지르르한 핑계 뒤에 숨어, 나는 줄곧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노력하지 않는 비겁한 도망자였다. 


경포대에서 바라본 해 질 녘 경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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