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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Park Feb 25. 2019

우리의 삶은 '청춘'일까?

김영하, 『퀴즈쇼』

김영하, 『퀴즈쇼』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대, 30대 청년 타이틀을 단 우리들은 청춘(靑春)을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의 삶에 색깔을 말하자면 앞날에 대한 걱정과 현실에 대한 실망이 가득한 회색 그 어딘가 일 것이다.



#1

김영하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제작되어 주목을 받았던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을 때에는 짧고 간결한 문장이 숨을 조여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을 덮고 뒤를 돌면 주인공이 뒤에 서있을 것 같은 기분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반면 퀴즈쇼는 작가가 자기가 가진 상식을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다양한 문학작품에 대한 언급과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에도 인간에 대한 고찰이 깊게 묻어나 있다.


두 작품은 같은 작가가 썼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장이 주는 느낌이 매우 다르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드는 감정은 비슷했다.

장자의 '호접지몽' (출처 나무위키)

작가는 장자의 '호접지몽'을 눈앞에 붙여놓고 글이라도 쓰는 걸까. 작가의 소설은 현실 세계와 판타지, 상상과 삶의 경계를 무너트리고 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반전이 나와 책을 다 읽을 때쯤에는 무릎을 탁 치며 '아하!'하고 깨닫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에게 마치 책을 읽을 때 들어갔던 커다랗고 깊은 터널에서 책을 다 덮고 난 후에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멍하게 서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어쩌면 그 불투명함이 우리 삶의 모습이 아닐까. 길고 긴 터널 속에서 '아하!' 하는 정답을 찾기 원하지만, 그 끝을 향해 달려가도 보이는 건 또 다른 터널일 뿐인 삶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2

재미있는 것은 소설에서 느껴지는 결말이 없는 답답함이 소설의 제목이자 소재인 '퀴즈'라는 소재의 속성과 대비되어 나타나는 점이다. '퀴즈'는 정답이 분명하고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 정답이 존재한다. 그 정답 이외에는 다른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퀴즈쇼'는 그 정답을 맞힌 자와 맞추지 못 한 자로 분리되며 그 구분이 제한된 시간 내에 빠르게 결정되는 세계이다.


Quiz Show "21"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의 삶은 퀴즈쇼가 아니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은 끊임없이 찾아오지만 그 정답은 오랜 시간이 걸려 나타나거나 아예 나타나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퀴즈쇼의 세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토피아'나 '외계 도시'같이 허망하고 현실과 연결되지 않는 환상의 나라가 아니라고 말한다.

"거기도 여기하고 비슷해. 경쟁하고 돕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좋아하고 뭐 그러면서 사는 거야. 가끔은 여기보다 거기가 더 현실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어. 그리고 그 어둠의 퀴즈쇼 그거야말로 진짜 퀴즈야. 한 번쯤은 해볼 만해. 허위도 가식도 없이 그냥 자기 운명과 맞짱을 뜨는 세계야."
세상 어디에도 도망갈 곳은 없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고 문제는 반복되고 세상은 똑같다는 거야. 거긴 정말 이상한 곳이었는데, 처음에만 그랬을 뿐, 적응하고 나니 하나도 다른 게 없었어.


인생이란 정답 없는 스테이지에서 바라보는 상상마저 현실과 선이 없는 모호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3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상황과 감정에 빠져들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이전에 느꼈던 그 감정에 대해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복잡한 상황 속에서 나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많이 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정확하게 어떠한 것인지 단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 작가는 그러한 복잡한 생각이나 미묘한 감정을 글로 잘 풀어내고 있다.


'벽 속의 요정'일 때는 그렇게 내 영혼을 사로잡던 애한테 왜 그런 감정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을까요? 그게 제 문제일까요?

그 많은 묘사 중 나를 사로잡은 건 기대에 관한 감정이었다. 첫 번째는 주인공 민수와 지원이 서로 채팅으로만 대화하다 만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처음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했을 때 느꼈던 설레는 감정이 만남을 통해 사라졌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는 민수에게서도 지원에게서도 표현은 다르지만 감정은 동일하게 표현된다.


이 기대에 대한 반어적인 감정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감정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속에서도 묻어남을 보여준다.

"어려서부터 너무 많은 기대를 받아왔잖아. 부모, 선생, 광고, 정치인 심지어 서태지까지 우리한테 '네 멋대로 하라'라고, 원하는 걸 가지라고, 그렇게 부추겼잖아. 피아노 조금만 잘 치면 음악 하라고 하고, 글 좀 잘 쓰면 작가 되라고 하고, 영어 좀 잘하면 외교관 되라고 하고... 언제나 온 세상이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면서 끊임없이 물었던 것 같아. 네가 원하는 게 뭐냐고. 뭐든 하나만 잘하면 된다고, 그런데 그 '하나'를 잘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이야? 결국 사람들을 자꾸 실망시키고,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돼버린 것 같아."

우리 지금 사회는 서태지가 '네 멋대로 하라'라고 하지는 않지만 너무 많은 기대에 지쳐있는 것은 그대로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성공하기를 기대하고 사회에서 가정에서 수많은 기대를 받으며 살아간다.


니트족 관련 통계자료 (출처 잡코리아)

하지만 우리가 흔히 입버릇처럼 하는 말처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를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기 이해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인생을 살기를 원한다. 우리가 지금 '니트족'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고 실제 니트족이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삶은 기대와 그 기대에서 오는 실망이 뒤섞여 있다.


#4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소설 속에서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든 건 소설 속이 내가 지금 사는 현실과 너무나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퀴즈쇼>는 2007년 조선일보 연재작으로 10년 전 서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국립중앙도서관의 릴레이 작가와의 만남에서 "우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청춘은 원래 고통스러운 거고 노력이 부족하다. 중동이라도 가라, 이런 시절이 있었다. 때문에 2007년 이민수와 같은 주인공은 굉장히 이상해 보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이민수와 같은 주인공은 특이한 모습이 아니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퀴즈쇼>의 주인공의 삶은 비참하게 느껴진다. 주인공뿐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지금 2019년을 살아가는 나의 나의 주변의 청년의 삶이다.


주인공 이민수가 겪었던 퀴즈의 세계는 진짜 존재하는 곳인지 '유리'의 말처럼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는지 알 수 없지만 목숨을 걸고 뛰쳐나온 세계를 또다시 동경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마저 우리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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