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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레밸 Jun 02. 2022

동료가 죽었지만, 우린 미소지어야 했다.

직장인의 희로애락

    약 한달 간의 출장을 마치고 오랜만에 사무실로 향하는 아침, 밀린 업무들이 골치아픈 문제로 바뀌기 전에 해결하려는 만반의 준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이 근무하는 선배의 안타까운 비보가 카톡방에 올라왔다.


"OOO 차장 본인 비보입니다."


    운전을 하며 네비게이션 위로 나온 찰나의 팝업 메시지를 눈으로 힐끗 확인하면서, '본인 비보'가 내가 생각하는 의미가 맞는지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다른 의미겠지라고 여기며 주차장을 나와 사무실에 도착하니, 내가 생각한 의미가 맞음을 다른 분들의 표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사무실의 대부분 한 차례 울음을 터뜨리고 감정을 추스리고 계셨고, 한 분은 나에게 죽음을 재차 확인시켜주면서 눈시울을 붉히셨다. 갑작스럽고 가슴 아픈 소식에 내 마음에 먹구름에 밀려오기 시작하며, 울음을 멈추었던 직원분들을 이어서 나도 터져나오는 슬픔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야속하게도 핸드폰은 받아야만 하는 업무전화 벨소리를 울렸고, 습관적으로 미소를 장착하고 전화통화를 마쳤다. 그 후, 충분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출장여파로 쌓여있던 업무와 고객요청사항들이 내게로 쏟아졌다. 더 이상 늦출 순 없어서 빠르게 업무를 처리해나갔다.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미소를 장착했지만, 통화가 끝나면 얼굴과 마음 속에 공허함과 슬픔이 가득찼다.


    죽음을 대면했을 때, 함께 슬퍼하며 애도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기에, 미소를 장착하며 일하는 내 모습이 더욱 불편하게 느껴졌다. 근데 나 뿐만 아니라 눈시울이 붉어지고 울고있던 옆에 직원분들도 슬픔을 서랍에 넣어둔 것처럼 전화통화를 하며 업무처리를 하고 계셨다. 이런 상황이 야속했다.




    고등학생 시절,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강하는 날에 같은 반 친구의 죽음소식을 접했었다. 아침 10시가 지나도록 담임선생님은 교실에 오지 않았고, 나를 포함해 같은 반 친구들은 모두 자유로운 이 상황이 즐거웠다. 10시 30분이 되어서야 담임선생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오셨고,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을 이야기해주셨다. 친구들 모두가 당황스러웠으며, 처음 접하는 친구의 죽음이 낯설고 생소했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을 나간 후에도 시끌시끌했던 교실이 한 동안 조용했다. 그러나 정적도 잠시, 하나둘씩 대화를 시작했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장난끼 가득한 웃음소리가 교실에 가득찼다.


    난 이 상황이 정말 혼란스러웠다. 죽은 친구와 친하게 지냈던 몇몇 친구들도 떠들고 있는 모습에 놀랐다. 하지만 이내 곧 나도 친구들과 대화를 시작했었다.

잠시 후 사회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웃고 있는 우리들을 바라보며 엄중한 표정으로 한 마디 하셨다.


"친구의 죽음을 접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웃고 떠들어도 되는거니? 친구를 위해 애도하는 마음을 가지렴"


그 날, 학교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모여 앉아서 늦게까지 친구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이때 죽음은 당사자에게 삶의 끝이지만, 주변 사람에게는 순간의 감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나를 더욱 재차 혼란스럽게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님의 죽음은 정말 가슴아팠지만, 난 오늘 하루를 살아가야 했다. 그렇게 오전 업무를 마무리하고 가까운 출장을 다녀오면서,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직 빈소는 차려지지 않았고, 사고사였기에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힘든 과정이 유족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아내분께서는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슬픔에 잠겨있으셨고, 작은 체구의 대학생 첫째 딸이 장례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째 딸은 눈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초점 없는 공허한 눈동자가 현재 상황이 얼마나 슬픈지 알게 해주었다.


    순간 나도 이제서야 선배의 죽음이 실감나기 시작하며 눈물이 차올랐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음과 코로나 이후 식사도 제대로 함께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떠올랐다. 그 후, 빈소가 갖추어지고 장례를 치르는 동안 사무실 직원분들이 돌아가며 자리를 지켰고, 선배가 회사에서 이렇게 사랑받는 좋은 분이셨음을 유족분들에게 전하고자 하였다.


    출장 갔었던 한달 동안 성과를 내기 위해 퇴근도 안하고 주말까지 반납해가며 일을 했었다. 그 결과, 원하던 성과를 얻게 되었지만, 사무실에 돌아와 죽음을 접하고 나니 일만 했던 한달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었다. 그리고 너무 일에 몰입되지 말고, 생각을 바꿔 일로 스트레스 받지 않기로 다짐했다. 또한 커리어개발과 직무역량 관련해서 스트레스 받기보다,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를 더욱 값지게 보낼 수 있을지에 집중하고자 마음 먹었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의미 없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시 업무고민을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지 내가 조금 더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머리가 더욱 복잡해진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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