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상담 10편-꿈이 없다고 말하는 아이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보낸 사람 황*라(Laohw**g30*1@nav*er.c..
받는 사람 최은영
2024년 5월 19일(일) 오전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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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열두 살, 열한 살 연년생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황*라입니다.
그동안 선생님 브런치 글 중 'MZ세대 엄마의 고민은 끝이 없다' 편을 너무나 공감하면서 읽었었고, 그 뒤에 써주신 다른 사례의 여러 고민 글을 통해서도 제 아들 또래의 학생들 마음을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이해해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감사하다는 인사 먼저 전해봅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는 이유는 저희 아들 두 녀석 모두가 '꿈이 없기 때문'이에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드리면 선생님께서 "꼭 꿈이 있어야만 하나요? 꿈은 천천히 생길 수도 있지요."라는 심심한 대답을 해주실 것 같기도 해서, 이메일을 보내볼까 말까 고민을 여러 번 하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특별하게 심각한 고민이 아니더라도 여러 엄마들이 한번쯤 고민해 봤을 법한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선생님께서 연재하시는 브런치 글 주제에 어울릴법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해서, 이렇게 메일을 보내보아요.
선생님!
저는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려볼 때, 장래희망을 상상해 보는 때가 제일 설레고 기분 좋은 순간이었던 걸로 기억을 해요. 저는 어릴 때 꿈이 정말 많았거든요. TV에 나오는 아나운서가 멋있어 보이면 아나운서 되기를 꿈꿔보았고, 어려운 사람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찾아가서 집을 아름답게 바꿔주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바라보면서 건축학도가 되는 걸 꿈꿔보기도 했었어요.
물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특정 직업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내가 원하던 꿈을 이루기에는 제 자신의 머리가 그다지 뛰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주제파악을 했지만 말이죠.
꿈꾸는 거야 자유 아닌가요?
아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서 꿈이라도 좀 꿔봐야 아이들이 뭐라도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배워보려는 의지라도 생겨나는 거 아닐까요?
초등학생이면 아직 그래도 꿈과 희망을 가져볼 법도 한 나이인 것 같은데, 저희 아들 둘은 제 어릴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인 것 같아서 제가 좀 당혹스러울 정도예요.
저희 아들 녀석은 둘 다 친절 어른들이 종종 명절에 만나서 "너는 꿈이 뭐냐?"라고 물으면 그저 쭈뼛대기만 하면서 "몰라요."라고 건성으로 대답하기만 합니다.
해마다 학기 초가 되면, 담임 선생님이 가정 조사서를 나눠주시는데 거기에 우리 아이의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하면 참 난감하기가 딱이 없어요. 아들 두 녀석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무조건 단호하게 '없다'라고만 하네요. 거짓말로 뭘 적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빈 공백을 두기도 뭣하고 말이죠.
꿈이 없는 두 아들 녀석에게 꿈을 좀 심어주고 싶은 거, 그것도 엄마의 욕심인 건가요?
선생님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어요.
2024년 5월 19일 황*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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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황*라님! ^^* 반갑습니다.
보내주신 이메일 잘 읽어보았습니다. 메일을 읽어보며 도대체 나는 어린 시절에 나는 몇 가지의 꿈을 꾸어보았던 것일까, 기억을 가다듬어보기도 했고 말이지요. ㅎㅎ
저도 어린 시절에는 황*라님처럼 tv 속 드라마나 다양한 영상을 보면서 상상 속의 어른이 된 제 모습을 열심히 떠올려보았던 것 같아요.
저는 1990년대에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내왔는데요, 제가 자라던 시절에는 세계화 국제화 구호를 많이 외치던 시절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영어를 멋지게 구사하며 유창하게 연설을 하는 외교관이나 동시 통역사를 꿈꿔본 적도 있었던 것 같네요.
물론 황*라님 말씀처럼 저 역시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저 역시 대학 입학 순위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점차적으로 잃어갔지만 말이지요.
그런데 황*라님!
저희가 학창 시절을 보내던 1990년대와 2020년대의 지금 이 시대는 여러모로 달라진 점이 많아진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며, 정보의 민주화가 이뤄지는 것 자체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자본주의 경제 성장 지표에 주의를 기울이던 과거에 대비하면 이 시대는 많은 이들이 AI 기술 기반 산업구조 전반의 혁신적 변화에 주목하고 있네요.
10년쯤 이후에는 가정용 로봇이 상용화되고, 자동차를 보유한 가정에 자동차세를 매기듯 로봇을 보유한 가정에 로봇세를 매기는 날들이 올지 모른다고 예상하는 시대 아닙니까?
빅데이터 기반의 초지능을 갖춘 AI로봇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직업군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하니, 누가 감히 10년 후 자기 자신의 미래를 확신 어리게 희망적 장밋빛으로만 그려볼 수가 있을까 싶어요.
저희가 학창 시절을 보내던 1990년대와 2020년대의 지금 이 시대는 여러모로 달라진 점이 많아진 것 같아요.
세계경제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예견하며 발표된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에 따르면 2016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의 65%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질 거라고 해요.
지금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시점에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의 절반 이상이 모두 새로운 직업으로 대체될 거라는 이야기죠. 그러니 지금 아이들이 머릿속에 특정한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고 꿈꾼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조차 해요.
황*라님은 아이들이 꿈이 있어야 무언가 공부할 의지도 생겨날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꿈이 있다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큰 상관관계는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초등학교 시절에 말하는 꿈은 더욱 그래요.
초등학교 시절에 자기의 꿈을 다양하게 그려보는 아이들은 비교적 개방적인 마인드를 갖춘, 호기심이 많은 성향의 아이일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는 편일 것 같고요.
그와는 상대적으로 다르게, 신중하고 생각이 깊어서 조심성이 많은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이 가슴속에서 떠올랐다고 한들, 남들에게 오픈해서 자신의 막연한 꿈 이야기하는 내비치는 것에 조심스러워할 것입니다.
내가 입 밖으로 내뱉은 말에 대해서는 왠지 모르게 책임지고 실현해내야만 할 것 같은 진중한 성향의 아이들일수록 더욱 미래 이야기를 하는데 망설임을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된 이들이야 한창 무럭무럭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꿈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오를 수 있어요. 나이가 어린 만큼 미래에 관해 무긍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을 것 같으니 말이지요.
우리가 어린 시절에도 어른들은 "너의 꿈이 무엇이냐?"라고 관심을 보여주시기도 했고요.
그렇게 어린이의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되었으니, 자라나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너의 꿈은 무엇이니?"라는 질문을 넌지시 물어봐주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는 게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 아이들 입장에서는 '미래'라는 단어가 마냥 긍정적으로만 느껴지기는 어려운 상황이기도 해요. 실제로 과거 제가 어린 시절 많은 친구들이 꿈꿔보았던 '과학자, 기자, 대통령, 은행원, 교사, 법조인' 등을
장래희망으로 말하는 아이들은 많이 사라졌어요.
열심히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직업적 성공을 위해 노력해 봤자, 결코 '자본소득 투자가'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여유와 윤택함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믿음이 아이들에게까지 널리 펴져있기 때문이에요.
'돈 많은 백수', '세 받는 건물자'가 최고 아니냐는 생각은 이 시대 어른들에게만 공유된 생각이 아닙니다. 어른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아이들에게까지 아주 당연한 정설처럼 받아들여진 이야기를 친구들과 무심코 대화 나누는 아이들 모습을 떠올려볼까요?
막상 그러한 현실을 조금만 더 진지하게 고려해 본다면, 한 세대 앞서 살아가는 어른의 입장으로서 '꿈꿀 수 있는 자유'는 내가 어린 시절에나 자유롭게 누릴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꿈'은 어쩌면 순수하게 아이들의 상상력에서 빚어진 '꿈',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꿈' 이야기는 그 시대에 공유되고 있는 불특정 다수 어른들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황*라님의 아이들이 꿈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미래에 대한 용기와 자신감 그리고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부족하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물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은 황*라님의 심경도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말이지요.
꿈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꿈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는 그저 지긋이 미소 지으며 "꿈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꿈을 발견하지 못한 거 아닐까?" "아직 발견하지 못한 꿈이 어딘가에 숨어있다니, 엄마는 더 그 꿈이 언제 발견될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미리 캐내버린 보물보다는, 천천히 나중에 발견하는 보물이 더 귀중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라고 이야기해 주시는 건 어떨까요?
아이들과 미래를 걱정하며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우연히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희망'을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그려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귀한 마음가짐인 거 같아요.
제가 드린 의견이 황*라님의 고민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줄 수 있었기를 바라봅니다.
남은 하루도 평화로우시길요!
- 2024년 5월 27일, 브런치 작가 최은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