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역할은 여기까지, 라인을 그어보자!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이 말인즉슨 '인간은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며 사회를 형성하여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고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어울림으로써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도시 발달과 직업 분화에 따른 주거 이주 빈번화로 마을 공동체 개념이 사라져 가고 있으며 서양의 자본주의 근본인 개인주의 가치관이 극명하게 확산된 사회적 분위기 안에 머무르고 있는 듯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나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로 태어난지라 내가 태어나 자라나는 시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과 문화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가 없지요.
물론 '개인'으로서 기질적으로 본디 타고난 '성향' 그리고 후천적 삶을 통해 형성된 '기호'가 서로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나'라는 '개인'은 어쩔 수 없이 내가 자라던 시대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가치관에 큰 영향을 받으며 자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6·25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1950~1960년대에 태어났던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와 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한 'MZ세대 사이'에는 '당연하다'라고 믿고 있는 '부모 역할'에 관해서도 서로 상충하며 대립하는 의견차이가 분명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각자가 자라나 경험한 시절의 '가족 문화'가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쟁 이후 가난 속에서 급격한 산업화와 공업화를 빠른 속도로 일궈나가며 경제 성장률을 드높인 시대를 살아낸 베이비붐 시대는 '근면 성실함'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여기며 삶을 버텨내셨습니다. 그들은 부모로서 자녀에게 언제나 '꾀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노력하여 자수성가형 부유함을 일궈내고 가문의 명예를 드높일 것'을 자주 강조하여 이야기해 오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가문의 명예와 체면을 중시 여기던 시절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만한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즉시 자녀를 강력하게 체벌하거나 엄하게 훈육하며 키우는 것이 '바람직한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 부모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MZ세대'는 위와 같은 베이비붐 세대 대다수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부모 역할과는 전혀 다른 부모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의 민주화, 세계화, 정보화 시류의 문화적 흐름 속에서 자신들의 가치관을 정립해 나갔던 MZ세대 부모들은 자녀에게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국제적으로 인권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아동인권 권리보호'가 제도적으로 정착화되며, 우리나라에서도 가정 내 체벌이 '아동학대'로 규정되고 있으니 자녀에게 손찌검 한번 하는 것이 자녀를 키워내며 엄청난 게 자책감을 느낄 수도 있는 시대가 되어버렸지 않았습니까? 그러하니 본인이 자라나는 동안에 보고 자랐던 부모님들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자녀를 길러내야만 하는 MZ세대 부모들은 '부모 역할'을 하며, 엄청난 고민과 갈등에 휩싸이게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또한 인터넷으로 온 개인이 실시간으로 다양한 세상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많아지면서 '정보는 힘이다'라는 문장이 누구에게나 널리 구호처럼 퍼져나가던 시절을 보내온 MZ세대들은 '유용한 정보'를 남들보다 빠르게 획득하는 것이 '개인의 경쟁력'이라고 믿고 있는 듯싶습니다.
이러한 MZ세대는 어쩔 수 없이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부모 세대에게 그 방법을 묻고 지혜를 구하기보다는 직접 인터넷과 책을 검색하여, 전문지식에 접근하여 자녀양육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제 우리는 '정보화 시대의 출현을 축하하며 그 기쁨을 맛보는 시절'을 넘어서서 지나친 '정보 과잉 시대'에 '정보 과부하'에 걸려 괴로워하고 있다. 이 괴로움은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 역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수용하고 경청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부모의 상인 것처럼 설명해 주던 전문 서적이 엄청나게 늘어나다가 또 최근에는 '통제 불가능해진 아이들을 바로잡기 위한 부모의 권위 살리기 방법'에 관한 정보가 상대적으로 많이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시대의 많은 MZ세대 엄마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키워내야만 하는 것인지에 관해 설명하기 어려운 심적 괴로움을 감당해내고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새로운 정보들이 끊임없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고 있고, 복잡 미묘한 사회 변화들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이 시대에 태어난 알파세대 아이들은 가족이나 학교 그리고 세상의 공동체 집단의 규칙보다도 각자 개인의 기호와 취향이 존중받는 것을 가장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서 성장하고 있는 자녀에게 과연 한 세대 먼저 앞서 살아간 부모의 경험치가 아이의 앞날과 인생에 과연 어떤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지조차도 불투명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이런 시절일수록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어가며 괴로움에 휩싸이지 않은 채, 스스로의 엄마 역할에 중심을 잘 잡아내기 위해서는 예리하게 다시 한번 더 스스로 '엄마 역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보아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그 기준은 각자가 처한 상황과 부모 그리고 자녀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며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그 기준을 정해보아야 쓸데없는 '엄마 역할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이 줄어들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지요.
많은 이 시대 MZ세대 부모들이 자녀를 잘 키워내기 위해서는 '최신 고급 정보를 빠르게 습득'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박증처럼 믿고 있으며, 각종 사교육 시장 업계는 그러한 MZ세대 부모의 무의식을 알아차려 더 많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고급 정보'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급정보처럼 포장된 내용들이 과연 얼마나 '내 아이의 기질에 맞게 활용될 수 있었는가?' 묻는다면 그다지 긍정적인 답변을 하기 어려운 부모들이 대다수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저 역시 MZ세대 엄마로서 위에 열거한 이야기처럼 도대체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정보들이 쏟아지는 시절에 '바람직한 엄마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우선적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모 역할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인간의 보편적 욕구를 단계별로 설명하는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Maslow’s Hierarchy of Needs)'은 부모 역할에 관한 기준을 선별하는 데에도 아주 유용한 듯 싶었습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 중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는 인간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중요한 욕구가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먹고, 자고, 입는 등 의식주에 관한 불편함과 어려움이 없이 자녀를 잘 보살피고 있으며 아이가 안전감을 느끼며 생활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주었다면 '바람직한 엄마 역할'로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난 이후에는 자녀에게도 어린 나이이지만 '소속과 사랑 및 존경의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해주어야 하는 듯 싶습니다.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늘 스스로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다'라는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가 엄마인 나로부터 충분히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을지 스스로 한번 되돌아, 엄마로서의 내 모습을 성찰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아이가 하는 재잘 거림에 귀담아 진심으로 들어주며 '관심 어린 눈빛'을 자주 보여주고 종종 따뜻한 포옹을 해줄 줄 아는 엄마라면 '사랑과 존경'을 실천하고 있는 '바람직한 엄마 역할'을 지켜나가고 있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중 상위 층에 속하는 '자아실현의 욕구'는 구태여 엄마가 애써 충족시켜 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는 듯 느껴지기도 해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해보고자 하는 욕구는 '가정 내'에서 발현되기 어려운 욕구이기 때문이죠. 엄마는 그저 아이에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충분히 개발 가능한 여러 가지 잠재력'이 아이의 내면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만 스스로 믿을 수 있게 해 주면 되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 애쓰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난 어느 순간 숨겨져 있던 잠재력이 꽃피워질 수 있는 것이니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쉽게 좌절하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면 그만인 것이죠.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나기까지 기본적으로 타고난 '인간적 욕구'를 보살피며 지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엄마가 해주어야 하는 '대단한 역할'들을 완수해 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MZ세대 엄마로서의 삶을 버텨내고 있는 이들은 타인 시선과 세상의 기준에 맞춰서 '성공적인 엄마 역할'을 해내가고 싶다고 욕심을 부리는 순간, 자칫하면 기본적으로 꼭 채워주어야 할 '아이의 기본적 욕구'를 결핍 상태로 몰아가게 만들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야 마는 것 같습니다.
'체계적인 교육 전문 서적'에서 추천하는 분야별 필독서를 읽히기 위해 아이의 졸음을 쫓아내야 하고, 아이에게 한번 더 포옹을 해줄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채 자녀의 학원 숙제를 살펴봐주어야 하기 때문이죠.
아이의 머리에 더 많은 지식을 채워주려고 애쓰지만 그에 따라주지 못하는 아이의 상태를 확인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아이의 잠재력을 불신하게 된다는 암묵적 메시지를 입 밖으로 내뱉게 되고 말입니다.
정보 과잉의 시대, MZ세대 엄마의 고민은 시작만 있지 끝이 없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점은 정보 과잉의 시대, MZ세대 엄마의 역할에 '스스로 그 한계와 경계선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엄마로서 스스로 끊임없는 노력과 헌신을 베풀고 난 이후에도 남겨지는 것은 후회와 자책뿐일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엄마 역할에 대한 경계를 꼭 한번쯤 세워서 마음 안에 단단히 고정시켜 보셨으면 합니다.
이 난해하고 복잡하기만 한 시대, 묵묵히 그 자리에서 엄마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그녀들에게 아낌없는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