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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May 13. 2024

고민상담 8편-자존감이 낮아 걱정인 아이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보낸 사람    조*지(jee21 ue@h*nmail.c...

받는 사람    최은영


2024년 5월 7일(화) 오전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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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세요?


친구가 우연히 보내준 글 'MZ세대 엄마들의 고민은 끝이 없다'를 읽어보고, 공감이 가서 저도 선생님께 이렇게 아이 키우는 고민을 보내보기로 했어요. 저희 어린 시절만 해도 컴퓨터 인터넷도 없고 모르는 거 있으면 가족이나 친구랑 나누면서 살았던 거 같은데, 요즘은 인터넷으로 워낙 정보가 다양하니 더 머리가 복잡하고 선택이 어려운 거 같아요. 아이 키우는 문제도 마찬가지고 말이죠.


선생님!

대부분 성인은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부모는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는데, 저는 저의 첫 딸아이를 보면서 자꾸 제 어린 시절 모습을 떠올리게 되네요.


제 생각에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자존감이 좀 낮은 편인 거 같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상처도 잘 받고, 어차피 뭔가 노력해 봤자 좋은 소리 듣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애초에 시작부터가 두렵기도 해요.  


그런데 저희 첫 딸아이가 딱 제 모습을 닮았지 뭐예요? ㅠㅠ


저희 첫 딸아이를 곰곰이 지켜보면 친구들이나 선생님 눈치도 많이 보고,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해요. 매사에 뭔가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말이죠.


제가 일부러 "우리 딸 효원이는 진짜 사랑스러운 아이야."라고 자주 이야기 해줘도 큰 효과는 없어 보여요. 제가 그런 말 해줄 때 그다지 기뻐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저는 제 자신이 좀 진취적이면서 자존감이 높은 편이 아니었던지라 저희 딸아이만큼은 자존감 높고 당찬 모습으로 자라기를 바랐는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제가 뭐 아이에게 대하는 양육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건지도 아니면 아이가 제 모습을 보며 은연중에 닮아가는 건지 모르겠어요.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워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선생님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2024년 5월 7일 조*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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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님 안녕하세요?

이메일을 보내주셔서 이렇게 중요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오늘은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려고 해요.


약 20년 전 무렵부터 심리학이 대중화되기 시작하고, '자존심'이라는 용어와는 구별되는 '자존감'이라는 용어도 유행처럼 일반인 대중 사이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자존감 대화법' '자존감 회복 수업' '자존감 높은 아이' '자존감 교육' 등 자존감의 중요성을 알리는 정보가 유행처럼 퍼져나가, 우리에게 익숙하게 된 지 오래입니다.


조*지님께서 보내주신 이메일을 열어 읽어보며 제가 가장 처음으로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은 '세상 부모님의 절반 이상이 아마 비슷한 심정을 갖고 계실 것 같다'는 것이었어요.  


이 시대 정말 많은 대다수의 부모님들이 조*지님처럼 '나 역시 자존감이 낮은 것 같은데, 어떻게 우리 아이를 자존감 높게 키워낼 수 있는 것인가?'라는 불안감을 갖고 계실 거라는 거죠.


제 개인적 사견이자 추측이기는 하다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기반 아래 자라난 성인을 기준으로 할 때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뜻하는 '자존감(self-esteem)'이 높은 심리 성향을 지닌 채로 성장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인 듯싶어요.


아시다시피 우리 대한민국은 '학벌 지상주의' '과잉 경쟁사회' '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나라에 살면서 그 어떤 조건과도 무관하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아끼며 사랑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채로 성장한 어른이 얼마나 많을까요?


자기 스스로 "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성인 어른이 실제로 얼마나 많을까요?  

자존감이 높은 어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요?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대단한 대한민국 교육열은 '우리 아이 자존감 높여주는 칭찬'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부모의 행동 수칙' '자존감을 높이는 부모 역할' 등을 구호처럼 외치고 있는 것만 같네요.

자존감이 무엇인지 스스로 느끼며 자라본 적 없는 어른들에게 '이제 당신은 부모가 되었으니, 열심히 배우고 익혀 당신의 자녀를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워내어 보라'며 채찍질하는 것처럼 느껴지기조차 합니다.

 

'자존감'은 과연 어떻게 해야 길어낼 수 있는 걸까요?  가정에서 부모가 '자존감 높이기 행동 수칙'을 열심히 실천하면 과연 자존감 높은 아이로 자라날 수 있는 걸까요?


비교와 경쟁의식이 과도한 우리나라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자존심:타인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과는 다른 '자존감: 무조건적인 자기 스스로에 대한 존중감'이 높은 아이들이 많아지기가 쉬울까요?


글쎄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우리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 이외의 무수히 많은 세상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그 어떤 조건과도 무관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있는 그대로 인격적으로 소중한 대접을 해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존감' 높은 아이들이 많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무리 부모가 내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려고 애를 써도 아이가 가정 바깥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성적이 높아야' '돈이 많아야' '얼굴이 잘 생겨야' 그 사람을 존중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문화 속에서 아이가 자라난다면, 아무리 아이의 부모가 자존감 교육을 실천한들 아이의 자존감이 지켜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내 아이 자존감 키우기 문제가 온통 부모의 책임으로만 한정지 어질 문제가 아니라는 거 하나는 확실히 마음에 담아두셨으면 해요.  다시 말해, 아이의 자존감이 낮은 이유는 바로 부모의 양육태도 때문인 것처럼 이야기되는 '속단'에 절대로 상처받지는 말자는 말입니다.


내 아이의 자존감 크기는 '내 아이가 자라나는 사회의 문화적 환경', '아이의 타고난 기질'에 추가적으로 '부모의 양육태도'라는 총 세 가지 요인이 함께 복잡 미묘하게 얽혀서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제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딱 한 가지입니다.


아이가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당차지 않아 보이고, 주변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고, 과정을 즐기기보다 결과에만 집착하는 것 같이 보여도 어쨌거나 '당신의 아이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하나만 바라보고 인정해 주자는 거예요.


조*지님 눈에 '지금 잠시' 아이의 모습이 그렇게 보이고 느껴져서, '조*지님의 머리 위에 걱정과 근심 어린 생각들이 떠올랐을 뿐이고, 그러한 걱정들이 조*지님의 신체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쳤을 뿐입니다.


조*지님 과거의 사진첩 앨범을 꺼내서 첫 딸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다시금 바라봐주세요. 그리고 그 사진 속의 아이가 짓고 있는 미소는 그대로 둔 채로 자라난 딸아이의 20대 모습을 상상해 주세요.


조*지님의 딸아이 자존감은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고 노인이 될 때까지 한결같이 높기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어떤 주변인을 만나는지 그리고 어떤 갈등을 겪는지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겠죠. 조*지님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금 조*지님은 스스로가 자존감이 낮은 편이라고 스스로에 대한 고정된 자아상을 마음에 품고 계시지만 그 믿음은 진실된 것이 아닐 수도 있어요.


자존감의 가장 마지막 글자 '감'은 말 그대로 '느낌'일 뿐이거든요. 우리 인간에게 자기 스스로에 대한 '느낌'이 늘 긍정적이기도 쉽지는 않잖아요?


진정한 자존감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이 처한 환경적 맥락 속에서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때에 생생하게 살아나는 감각이 아닐까 싶어요.


자존감이 바닥을 찍는 날이면, '오늘은 폭풍우가 쏟아지는 날씨와 같은 하루를 맞이했구나.'라고 생각하며 '폭풍우가 쏟아지면 조용한 곳에 몸을 숨기고 휴식을 취해줘야지.'라며 자신을 보호해주려고 하면 그만인 것이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있다고 한들, 그의 인생은 늘 특별하고 대단하고 고귀한 것이라 보장할 수도 없는 거 아닌가요?


우리 인간은 때때로 스스로의 결핍과 열등감을 채워나가기 위해 부단히 도 노력하며 몸부림치다가, '승화'의 과정을 거치며 대견한 성취를 일궈내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처럼 때로는 '높은 자존감'보다 '열등감'이 훨씬 더 삶을 멋지게 변화시킬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는 겁니다.


그러니 조*지님!!!

스스로의 모습과 딸아이의 모습을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가엽게 여기실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한 생각조차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문화 안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엇비슷한 생각들'일 뿐이니까요.


조*지님과 따님 모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상처도 잘 받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 자존감이 낮은 듯 걱정이 된다고 하셨지만 저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자존감이 매우 높은 사람들은 때로는 지나친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성급하게 굴기도 하고, 타인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쉽거든요. 이에 비하면 조*지님과 따님 분의 성향은 이와는 달리 좀 더 조심성이 있고 신중하게 행동할 가능성도 높고요.


자존감이 제대로 작동하기를 원한다면 시시각각 머리 위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몸으로 느껴지는 감정들을 상황과 무관하게 '부정적인 것' 혹은 '긍정적인 것'으로 구분 지어 분별하지 말고, '이런 상황에 처하니 이런 감정이 떠올랐구나.'

'이런 상황에 처하니 이런 생각이 떠올랐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모든 걸 알아차려 주기만 하면 됩니다.


생각과 감정은 그저 자연스럽게 몸으로 느껴지고 머리 위로 떠오르는 것일 뿐,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 모든 걸 있는 그래도 알아차리고 수용해 줄 때야 비로소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감정을 존중해 준다는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는 거 같아요.


 자신에게 긴장감과 불안감이 떠오를 때에,

"왜 나는 이렇게 불안과 긴장이 높은 거지?"

"나는 왜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거야? 자존감이 낮은 건가?"라고 스스로에게 묻기보다는


"그 상황이라면 나 아닌 누구도 충분히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었겠어?"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불안감을 느꼈을 거야." 라며 스스로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수용해 주는 게 어떨까요?


"생각이나 감정은 그냥 자연스럽게 머리 위로 떠오르고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거라니까 지금의 이런 긴장과 불안감도 곧 지나가고 사라지겠지."

"이 순간이 지나가면 긴장했던 나를 위해 편안한 휴식을 선물해 줄 거야."라며 자신을 다독여줄 것입니다.



조*지님의 고민이 오늘의 답장으로 조금이나마 덜어지셨기를 바랍니다.

남은 시간들은 좀 더 평온하시길요!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며,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마음의 평화를 만들어준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 2024년 5월 13일, 브런치 작가 최은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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