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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Apr 29. 2024

고민상담 6편_엄마 말은 모두 잔소리로 여기는 아이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보낸 사람    홍*아(iayaa3**@ho*mail.c...

받는 사람    최은영


2024년 4월 21일(일) 오후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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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세요? 며칠 전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나눈 친구로부터 선생님의 브런치 글 연재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무조건 엄마 역할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아이가 잘못 크면 그건 다 엄마 탓이다 이런 이야기도 많은데 선생님은 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고 친구가 이야기하길래 호기심이 생겨 저도 고민을 하나 투척해 보기로 합니다. ㅎㅎ 


저는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딸 자매를 키우는 엄마예요. 첫째 아이는 좀 내성적인 편이고 둘째 아이는 정말 무슨 이야기든 거침없이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내세울 줄 아는 아이고요. 


저의 요즘 고민은 둘째 딸아이의 저에 대한 불만과 투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녀석이 올해 초 식구들 다 같이 밥을 먹는 식사 시간 중에 자기가 고민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고민이냐고 제가 물었죠. 그랬더니 "엄마는 늘 잔소리만 한다." "내 친구 집에 가보면 다른 엄마들은 훨씬 더 친절하더라." 하고 말하더라고요.


그 소리를 듣고 순간 제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던지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이란 말처럼 엄마가 자식 잘 되라고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하며 잔소리하는 경우야 자연스러운 건데, 살다 살다가 엄마인 제가 다른 집 엄마들과 비교를 당하다니 말이에요.


둘째 딸아이가 워낙에 한번 꽂힌 생각이 해결이 되지 않으면 끝장을 보겠다는 태도로 물고 늘어지는 편인데 그날 제가 자기 말에 논리적으로 별 대응을 하지 않았더니, 그 이후로는 저만 보면 엄마는 잔소리꾼이라고 하네요. 그동안 자라면서 별다른 투정이나 불만 같은 거 내색조차 별로 안 하던 큰 딸도 자기 동생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듯 맞장구를 치고 말이죠.


아니 요즘 애들은 집에서 회초리를 많이 안 때려서 그런 건지 어쩜 이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는 걸까요? 저희들 어릴 때 생각하면 감히 엄마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다니 말이죠. 


아무튼 저도 나름대로 속이 상해서 우울해하다가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해 봤어요. 어쩌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제 말투가 듣기 싫은 잔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해요. 


근데 아니, 잔소리가 듣기 싫으면 같은 말 두 번 세 번 반복을 안 하게 자기가 알아서 좀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침마다 늦게 일어나 제 속을 썩이고, 집안 방구석은 늘 쓰레기장처럼 어질러져 있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핸드폰만 쳐다보며 친구랑 메시지나 보내고 있으니 제가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있겠냐고요. 


아무튼 요즘은 두 딸이 같이 눈빛을 서로 주고받으며 제가 무슨 말만 하면 '잔소리 늘어놓는 엄마'처럼 여기는 듯싶어 저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고 있어요. 


이 녀석들 버르장머리를 어떻게 고쳐놓아야 할까요? 엄마 말을 모두 잔소리로만 여기는 고약한 성질머리를 좀 고쳐주고 싶어 제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어요. 


너무 솔직하게 제 속사정을 털어놓은 건가 싶지만, 이런 게 바로 요즘 시대 엄마들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싶어서 이렇게 이메일을 보내봅니다. 미리 답변받았다고 생각하며 감사인사 드려둘게요. 


                                                                                                2024년 4월 21일 홍*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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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아님, 안녕하세요? ^^


이메일 잘 받아보았습니다. 요즘 두 따님의 엄마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속이 많이 상하신가 봐요. 잔소리도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지 나올 수가 있는 건데, 초등학생 수준에서 그런 깊은 속내를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은 거겠죠? ㅎㅎ


홍*아님 지금 얼마나 속상하신지 그 마음이 상상이 되네요. 친구 엄마들과 비교까지 당하시면서, 잔소리꾼 엄마가 된 것 같다니 말이에요. 


그래도 아이들이 엄마 앞에서 자신들 속 이야기를 그렇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엄마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너무 많이 속상해하지는 마세요. 만약에 엄마를 신뢰하고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저 엄마에 대한 불만을 속으로만 꾹 참고 말았겠지요.


홍*아님 둘째 따님은 친구 집에 갔다가 친절하고 상냥하게 아이들을 대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우리 엄마도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지시형 말투'보다 정감 어리고 따뜻한 언어를 써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한 모양이에요.


아이의 마음에서는 '우리 엄마도 잔소리처럼 느껴지는 말보다 더 따뜻하고 친절한 말을 해주면서 나를 대해주면 좋겠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는데 마침 식탁에서 밥을 먹다가 그 생각이 떠올라 엄마에게 떠오르는 대로 자기 이야기를 꺼낸 것일 뿐이죠.


아이의 마음에는 특별히 엄마를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폄하할 의도는 분명히 없었을 거예요. 다만 아이들이 엄마를 잔소리꾼 같다고 이야기한 것이 자꾸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불편해지시는 걸 보니, 홍*아님도 이 상황을 문제로 인식하고 계시고 무언가 좀 더 마음이 편안하게 잘 해결해보고 싶으신 것 같아요.


진짜 권위적인 엄마라면 아이들이 밥상머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도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나는 너를 낳아준 엄마이고, 너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나의 방식대로 너희를 대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라고 믿으실 텐데 말이죠.

아이들이 홍*아님을 좀 더 '좋은 엄마'로 생각해 주길 바라고 계신 거 같아요. 


만약에 제 말처럼, 아이들이 진심으로 엄마를 '잔소리꾼'처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정한 말'을 많이 해주던 엄마로 기억해 주길 바라시는 거라면 많이 어색하시겠지만 아이들에게 이야기 건네는 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말'이라는 게 속 깊은 의도야 어떻건지 간에 사람마다 자기만의 방식대로 습관처럼 굳어져버린 표현양식이 되어있을 경우가 많아요. 저희가 일상생활을 하며 말을 할 때, 말하는 대상과 상황 그리고 그 말을 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 크게 고민을 많이 하지는 않잖아요?


보통 자녀나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지시형 말투'를 많이 사용하시는 분들은 타인의 감정이나 관계보다는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자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으세요.


예를 들면 '시간이 늘어지지 않게 빨리 방 청소를 하는 것', '아이들 숙제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마무리 짓는 것'처럼 '엄마의 입장장에서 아이들과 가정을 돌보는 책임과 의무'의 심리적 압력을 강하게 받고 계신 거죠. 그렇게 때문에 아이들도 엄마의 말에 빨리 따라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고, 자연스럽게 '딱딱한 지시형 말투'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홍*아님이 아이들을 대할 때, 마음이 편안하지 않는데도 '잔소리 꾼 엄마'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억지 연기처럼 '다정한 말투'로 아이들을 대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잠깐 그렇게 억지로 노력을 많이 하더라도 그 노력이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겁니다.


차라리 아이들에게 엄마의 말투를 자신과는 또 다른 한 인격체의 개성이나 성향, 스타일로 인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양한 성격, 기질, 성향'이 있는 거 아닙니까? 꼭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무한하게' 친절해야 하고 다정할 순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엄마가 이 상황에서 아이들이 한 이야기에 발끈하며 화를 내면 더 이상 자연스러운 소통이 어려워질 뿐이니 우선 엄마 마음을 침착하게 하시고 아이들의 반응 자체는 수용해 주세요.


"그래, 엄마 말이 그동안 잔소리처럼 들려왔었다니 몰랐네. 그래도 그동안 이만큼이나 잘 자라줘서 고마워."

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의 반응이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 조금 의아해할지도 몰라요. 엄마가 갑자기 자신들에게 '그동안 이만큼이나 잘 자라주어 고맙다'라고 말해주니, 자신들도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은 심리가 작동하게 될 거예요. 


아무튼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존재 자체보다 '엄마로서의 역할'을 해나가다 보니 늘 마음이 급해져서 엄마도 모르게 그런 말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해시켜 주세요.  초등학교 4학년, 6학년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일 겁니다.


그리고 홍*아님께 꼭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이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고 해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을 뿐이지요. 홍*아님은 엄마로서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사실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 홍*아님이 그동안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고 열심히 엄마 역할에 쏟아부은 노력과 정성과 에너지는 진심으로 귀하고 소중한 것들입니다.


아이들이 당장 그 노력을 인정하고 알아주지 않는 듯 보여서 많이 속상하시죠?


그렇지만 아이들이 홍*아님 덕분에 그만큼 예쁘고 건강하게 자라났다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홍*아님이 아이들 위해 애써오신 걸 본인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으신가요? 그러니 홍*아님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아껴주고 위해주셔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대화로 말 걸며 이야기해 주셔야 해요.


'홍*아! 누가 뭐래도 내가 다 알고 있어.' 

'네가 아이들 위해 어떤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며 살아왔는지 말이야.' 


이렇게 매일매일 잠들기 전, 의식적으로라도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독여주시면서 '나 자신에게 말 걸기'를 시도해 주시면 별거 아닐지라도 마음 깊숙이 응어리졌던 무언가 서글픈 마음이 아주 조금씩 녹아내릴지 몰라요.


홍*아님의 마음이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과 같습니다.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 나 자신을 모두 다 쏟아 부어서 아이들을 키워내고는 그 노력이 무언가 눈에 보이는 보상으로 오는 것 같지 않아 서글픈 그런 마음 말이지요.


홍*아님 마음에 잔잔한 위로를 불어넣어 드립니다. 아이들을 지켜내고 잘 자랄 수 있도록 가슴 졸이며 보내온 시간들 그 자체는 '존귀한 것'임이 분명하다는 걸 잊지 마세요. ^^



                                                                                - 2024년 4월 29일, 브런치 작가 최은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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