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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Apr 22. 2024

고민상담 5편-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보낸 사람    김*정 <cor*ha**@hanm**l.com>

받는 사람    최은영


2024년 4월 9일(화) 오전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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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2학년, 6학년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 김*정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이 연재 글 맨 앞 편에 써주셨던 것처럼, 저 역시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부터 지금까지 정말 너무 고민이 많아 괴로운 MZ세대 엄마입니다.


저는 아이 둘 낳아 지금껏 키워오면서 정말 제 나름대로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무척이나 애를 써오며 지내온 것 같아요.


신생아 돌봄 삐뽀삐* 119 벽돌책 독파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책들을 접하며 '엄마 공부'를 해왔습니다.


아이들 유치원 때부터 시작해서 연령별 필독서 검색하고 자기 전에 꼬박꼬박 책 읽어주기도 해왔고요, 주제별 전집 시리즈 당근마켓 거래 해가면서 아이 학습을 위해 열정을  불태웠습니다.


저희 아들은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쉽지 않은 과정일 거라 겁을 주던 '엄마표 영어' 학습 과정까지도 나름대로 성실하게 따라주던 아이였어요.


그런데 그랬던 저희 아들이 갑자기 6학년 들어와서 돌변해 버렸어요.

자기는 공부가 정말 싫다네요. 더 이상 자기한테 공부하라는 말조차 꺼내지 말래요.

이제 중입을 앞두고 있어서 제대로 공부를 달려봐야 하는 시점인 거 같은데, 저희 아들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요?


갑자기 돌변한 아들의 태도에 제가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나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춘기 아들 잘못 건드렸다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사이만 멀어질까 봐 덜컥 겁이 나기도 하고 말이에요.


어떻게 하면 자녀를 잘 학습시킬지에 관한 전문서적은 여기저기 많이 있는데,

공부하기 싫다는 아이 달래는 법에 관한 책은 찾아보기가 힘이 드네요;;


제가 뭐 저희 아들 sky 보내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에요.

선생님도 아시잖아요? 요즘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어떻게 달려 나가는지 말이에요.

공부 습관이라도 흐트러지지 않게 계속 유지시켜 놓아야 할 것 같아서 불안해서 그래요.


제가 어떻게 아이를 달래야 저희 아들  다시  마음잡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을지 좀 알고 싶어요.

뭐라도 도움 될만한 의견을 좀 구해보고 싶어서 이메일을 드려봅니다.


                                                                                                      2024년 4월 17일 김*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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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님, 안녕하세요?


김*정님은 그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자녀양육과 자녀교육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오신  같네요.


김*정님의 이메일을 읽어보며 이 사연이야 말로 이 시대 '성실한 엄마들'의 전형적인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시대 모든 엄마들이 김*정님처럼 엄마 역할에 진지하고 성실게 노력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아이를 잘 기르고 교육시키기 위해서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각종 육아, 교육 서적을 찾아 읽어가며 열성을 다한 모습 그리고 또 내 아이를 위한 실질적 계획과 학습 실행 전략을 짜서 현실에 적용한 실천력 모두 웬만한 사랑과 정성의 에너지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내 아이를 반듯하고 똘똘하게 키워내고 싶은 마음이야 세상 모든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마음이겠지만,

그저 그 마음만 품은 채로 아이에게 '너 혼자 알아서 좀 잘 커봐라.' 하고 아이를 다그치기만 하거나 엄마 역할 자체를 성가시고 귀찮게만 여기는 엄마들도 의외로 많거든요. 


저는 우선 김*정님께서 아이를 위해 헌신하신 그동안의 노력 자체는 참으로 대단하신 거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도 그간의 시간 동안 엄마와 함께 학습하는 과정에서 많은 걸 배워나갔을 터이고 말이죠.


그 시간들은 그 나름대로 또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동안 그렇게 엄마의 계획대로 어느 정도 공부의 과정에 잘 참여해 주던 아이가 왜 갑자기 공부가 싫다며 거부반응을 보이게 된 것일까요?


공부가 싫다고 말하는 아이의 심리를 추측해 보면 아래의 내용 중 하나 혹은 여러 요인의 복합적 형태로 인한 게 아닐까 싶어요. 저와 함께 아이의 마음 상태를 한번 추측해 보실래요?


첫째, 자신의 학업과 미래에 관한 엄마의 관심이 과도하게 느껴져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눈에는 아이가 늘 어리고 부족하고 서툴게만 보이실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유아기와 아동기를 거쳐 나가면서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른이 된 이후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을 꿈꾸게 되지요.


아이들도 자신이 이십 대 이후의 성인이 되면 부모님 곁을 떠나 스스로의 주체적인 자유의지로 자기 삶을 개척해 나아가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본능적으로 아동기 이후의 청소년기를 맞이하면 자기 자신과 부모님의 생각을 분리해 보기 시작하지요. 예를 들면 '그건 엄마 생각이고!', '그건 아빠 생각이고!!' '내 생각은 달라!!!' 하는 마음이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부모의 말을 거역하면 지금껏 당연하게 누리던 많은 정서적, 물질적 지원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불안 때문에 그런 생각이 떠올라도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겠지요.


 어찌했건 청소년기 아이에게 부모가 무언가 자기 삶에 깊숙이 관여하여 그 주도권을 과도하게 행사하려 하는 듯 느껴지는 상황을 심히 불편하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이는 열심히 부모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을 꿈꾸는 시기를 맞이했기 때문이지요.


둘째, 공부의 끝과 한계가 보이지도 않는데, 언제나 참고 인내해야만 하는 듯 보이는 학습 과정이 괴로워서입니다.  


김*정님도 잘 아시겠지만 저희들이 자라나던 시절과 비교해서 요즘 아이들은 '인내심'을 키워볼 기회가 좀처럼 많지 않았습니다. 학습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저희들 어린 시절 학습에서 가장 강조되던 것 중 하나는 '반듯한 글씨체로 공책에 필기하기'였어요. 저는 초등학교 시절에 매번 '경필 쓰기'를 하며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데 온 집중력을 발휘했던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초록색 칠판 가득 빼곡히 담임 선생님이 써주신 필기 내용을 공책에 적느라 손이 아파도 참았던 순간들도 떠오르고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과정 자체가 아이의 마음에 '인내심'을 길러주는 모든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정말 다른 환경에서 학습을 합니다. 유아기 한글, 숫자 학습 관련 교재들만 해도 그래요.

서점에 가서 한번 살펴보세요. 얼마나 알록달록 화려합니까? 아이들의 흥미를 고려해 재미난 스토리에 귀여운 캐릭터 그리고 스티커 붙이기까지 말입니다.

 저희들 자라나던 때에는 학습 과정 자체가 애초에 의자에 앉아 엉덩이 붙이고 바른 글씨 연습하는 인내력 키우기로 시작되었었는데 말이지요.

그에 비교하면 요즘 어린이들은 학습 자체를 각종 흥미로운 매체와 디지털 영상을 통한 오감을 활용해서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갑작스럽게 학습 교재와 내용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너무나 난해하고 딱딱하게 바뀌어버린 듯싶을 거예요.


 안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디지털 매체 활용에 아주 익숙한 세대인데, 학습이 어렵고 난해하게 느껴져 인내심의 한계가 올 때마다 그냥 화려하고 감각적이며 흥미로운 자극체가 가득한 인터넷 가상세계로 자신의 주의를 돌려버리고 싶을 겁니다. 그런 마음이 드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셋째,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뚜렷한 동기가 없거나 공부를 하고 나서의 뿌듯한 성취감을 느낄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김*정님, 혹시 요즘 아이들 장래희망 중 '돈 많은 백수'가 인기라는 거 알고 계신가요? 이 시대 아이들은 어른과 동등하게 미디어를 통해 온갖 세상살이 이야기들을 귀동냥하며 자라납니다.


 '노동 소득이 자본 소득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많은 대중에게 익숙해진 지 오래입니다. 성실하게 하루하루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가 매우 평가절하당하는 시절이지요. 아이들의 눈에 보인 세상은 '돈이 최고'인 세상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생존이 위협당하는 시대처럼 느껴지는데, 왜 죽을 둥 말 둥 그렇게 괴롭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아이들도 많아진 거죠.


게다가 요즘 아이들이 바라보는 직업세계의 어른들 중 본받고 싶은 누군가 롤모델이 존재하기가 참 어려운 시대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아이들이 접하는 어른들의 삶의 스토리를 한번 살펴보세요. '정치인', '기자', '검사', '교사', '과학자', '의사' 등등 과거 저희들이 어린 시절에는 꾀나 멋지고 좋아 보이던 직업군도 요즘 아이들이 바라보기에는 심각한 사회 문제와 갈등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들일 뿐입니다.


 나는 저렇게 피곤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지래 겁을 먹게 되기 십상입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은 그 어떤 자신만의 특별한 동기를 가슴속에 품어보기가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직 무한 경쟁의 입시 체제에서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하는 게 이 시대 학생으로서 자신의 운명으로 느껴진다면 우리 아이들이 참으로 갸륵하고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하네요.


김*정님 입장에서는 엄마로서 때로는 귀찮고 피곤해도 자녀를 챙기고 자녀의 학습을 지원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셔서, 지금껏 굉장히 애쓰고 노력하며 지내오신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엄마로서 무한 책임감을 느끼고 계신 것도 잘 알 것 같고요. 그렇지만 이번 기회로 이 시대에 태어난 아이의 눈높이에서 한 번만 더 '공부'에 대해 아이가 느낄법한 과도한 불안과 스트레스도 헤아려주셨으면 합니다.


 아이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어야 아이와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으실 테니 말이지요.


아이에게 '공부' 자체에 대한 과도한 불안을 잠재워주시는 게 문제해결의 가장 중요한 시발점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가 공부가 하기 싫다고 이야기하면 화내거나 짜증 내지 마시고 침착하게


엄마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아침 먹고 양치하고 회사 가는 것' '때로는 귀찮아도 나가서 장보고 식사 준비 하는 것' 그런 것처럼 '학생'으로서 당연히 일과 중 해야 하는 일이 바로 공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주세요.


엄마도 때로는 그날 컨디션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밥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면서

너도 컨디션이 어디 불편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주세요.


아이 입장에서 자기에게 '필요하다'라고 느끼면 정말 열심히 공부에 집중하게 될 겁니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건 아이가 공부 자체에 과도한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돌봐주며 격려해 주는 일이 우선인 것 같아요.


 인생이라는 긴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항상 변함없이 성실하게 공부를 좋아하며 잘할 수 있을까요?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그 총합이 9년인데 9년 내내 일관된 태도로 학업에 강렬한 흥미를 보이는 게 여간해서는 그리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듯싶어요.


뿐만 아니라 대입을 위한 공부에 학창 시절 내내 너무 심각하게 과도한 에너지를 쏟아낸 아이는 정작 대입 이후, 자기 삶을 스스로 주체적으로 기획해서 창의적으로 이끌어갈 힘이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런데 김*정님 아시다시피 출신대학 간판만으로 남은 인생이 모두 다 결정되는 시절은 정말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조직이 학벌보다는 경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혁신적 창의성과 소통능력을 인재선발 최우선 순위에 두기도 합니다.


 인구 구조와 산업 구조가 급변하고 있고 직업의 종류와 처우 및 제도도 모두 다 새롭게 변화합니다.


그러니 이런 시절에는 항상 침착하게 변화를 지켜보며 유연하게 처세하며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유지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공부 못해서 좋은 대학 못 가면 인생이 다 끝날 것처럼 그렇게 불안을 조장한 학력주의 가치관 때문에 삶의 순간순간 소중한 감정들을 놓쳐버리시면 안 됩니다.


지금 당장, 오늘 하루 나의 소중한 아이와 눈 맞추고 따뜻한 식사 하며 함께 웃을 수 있음이 축복이라는 거 잊지 않으셨으면 해요.


남은 하루도 평온하시기를 바랍니다.


                                                                          

 - 2024년 4월 22일, 브런치 작가 최은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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