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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Jun 11. 2024

아쉽지 않은 인생은 없다지만,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2024년, 우리가 '지금 현재' 머물고 있는 이 지구별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은 80이 훨씬 넘는 나이만큼의 기대수명을 꿈꾼다. 많은 이들이 과학과 의학이 발전된 시대이니 나 역시 그 정도는 삶을 누리다 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믿고들 산다.


하지만 만약 당신과 나 모두 100년, 200년 앞서서 이 지구별에 태어났더라면 그런 기대수명은 감히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1800년 세계의 기대수명 평균 통계치에 따르면 일본은 34세, 미국은 39세였으며 1900년의 경우 일본은 44세, 미국은 47세로 알려져 있다고 하니 말이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는 지금껏 살아온 삶의 시간만큼 살아갈 날이 있지 않겠냐는 꿈이라도 꿔볼 수가 있는 '축복받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하니 내가 태어나 누리는 이 시대의 특권으로서, 과거에 비해 긴 생애주기의 삶을 꿈꿔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감사한 일인 것이다.


벽시계의 시계추를 200년 전 앞으로 되돌린다면, '시대 속의 개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남들이 꿈꾸는 기대수명 정도를 바랐을 나였을 터이다. 그러니 상상 속 200년 전의 나라면, 불혹을 넘긴 시간에 남겨진 생의 의지는 희미했을 수도 있었겠다.


기대수명이 40 무렵이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상상해 보면, 분명 앞으로 살아갈 남은 인생의 모습을 떠올리며 계획하기보다는 지나온 삶을 회고하며 추억하는 시간에 더 자주 익숙해져 있었을 것 같기조차 하다.


지나온 삶을 떠올려 보면 무엇이 남겨질까?


비교적 성실하고 열성적인 태도로 삶을 보내왔다고 믿고 있는 나로서도, 지나온 삶을 곰곰이 되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루빨리 어른들의 간섭과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던 십 대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나는 왜 그때 그 시절을 더 소중히 여기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떠오른다. 


불필요한 꿈을 너무 많이 꾸었던 것 같다.

쓸데없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한 적도 있었다. 거의 대부분은 오해와 착각으로 인한 미움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십 대도 삼십 대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줄 일들에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쏟아가며 과도한 걱정을 했었다. 내 삶에 주어진 것들보다는 내가 가진 결핍을 바라보며 서글퍼한 적도 많았다.


더 나은 멋진 내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스스로를 더 아껴주지 못하고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진시켜 버리기도 일쑤였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공허함에 남몰래 아파한 시간들도 있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 속의 내 모습은 서툴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랬던 내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아쉬움'이라는 감정의 그림자가 샘솟아 오른다.  흘러간 인생에서 아쉬움의 자국을 지워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덜 아쉬운 삶을 꿈꿔보고 싶은 당신이라면 무조건  '살아있음을 온전하게 느껴보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음식의 맛을 음미하며 꼭꼭 씹어 삼킬 수 있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고 두 팔로 사랑하는 가족을 끌어안을 수 있는 당신이라면 '모든 삶의 축복'을 이미 다 누릴 자격을 갖추었다.


앞으로는 온전하게 살아있음을 체험할 수 있는 그 축복받은 시간 동안 자신의 '서툴음'에 서글퍼하지 말고, 무엇이든 가볍게 '시도'해보자. 당신의 나이가 90이든 40이든 상관없이, 당신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단 한 번의 하나뿐인 '현재'일뿐이니 말이다.


아쉬움으로 가득 채워진 인생을 살아왔다면, 이제 남겨진 당신의 몫은 주어진 시간을 더 많은 '온전함'으로 채워내는 일이다.  생의 온전함은 그저 매 순간 '살아있음'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며 '생의 충만함'을 느껴주는 것으로 채워진다.


더 많은 '생의 온전함'을 느껴줄수록 당신의 삶은 그렇게,  '덜 아쉬운 삶'으로 변해가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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