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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시아 Jun 02. 2024

'셀프 치유'가 가능한 삶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여자, 최은영의 개똥철학


일곱 살 난 초롱초롱한 눈빛의 여자 아이가 당신에게 묻는다.

"선생님!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데, 마음이 아플 땐 어떻게 해야 하죠?"

"제가 마음이 아픈 것 같거든요."

진지한 눈빛으로 질문하는 꼬마 아이를 마주하게 된다면 당신은 머리 위에 어떤 답변들을 떠올릴 수 있을까? 



마음이 아프면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무얼 하면 좋은지,  일곱 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이 이 세상에는 과연 얼마나 많을까?


몸이 아플 때는 각각의 신체 증상에 맞는 병원과 약을 먹으라며 주저함 없이 설명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은 많겠지만, 마음이 아픈 증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줄 모르는 어른들이 대다수다.


이 시대의 많은 어른들이 자신의 '마음 아픔'을 드러낼 수 없는 채로 자라났고, 용기 내어 아픔을 드러냈다가 외면받아 더욱 가슴 아팠던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통해, 한 번쯤 가슴 아파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려본 경험쯤 하나 누구나 기억 속에 어렴풋이 가지고 있지 않을까?


살다 보면 누구나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사건 사고를 겪게 되고는 한다. 특별한 사건 사고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믿었던 이들로부터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을 겪게 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무언가 간절하게 원했 일의 결과가  뜻과는 전혀 반대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말이다.


당신의 눈에는 한없이 어리고 미숙하게만 보이는 그 일곱 살짜리 꼬마 아이도 역시나 생각보다 놀라울 만큼 충격적인 사건사고를 겪어내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종종 마주하게 되는 슬픔은 나이나 신분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을 따지고 다가오는 게 아니니 말이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애써 기억 가능한 의식 위로 떠올려보지 않았을 뿐, 어쩌면 유년기 꼬마였던 당신에게도 그렇게 일곱 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가슴 아픈 일'이 다가왔던 적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 역시 과거 그 어린 시절 한 장면 속에서 눈물을 머금은 채, 누군가 어떤 성숙한 어른들에게 묻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아플 땐 어떻게 해야 하죠?" "제가 마음이 너무 아프거든요."라고 말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껏 살아오며, 마음이 아플 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워본 경험이 별로 없다. 지금껏 자라오며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배워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신의 감정, 특히나 불편한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거의 전무하다.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때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홀로 고독한 시간 속에 한없이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그러다가 그 시간 속에 더 이상 머무를 힘이 없을 만큼 괴로워지면 아픔을 잊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적당량 이상의 알코올에 취해 잠에 빠져들거나, 운동에 과몰입하거나, 워커홀릭처럼 일에 빠져들거나 하는 등..............................................................


적당한 알코올, 적당한 운동, 적당한 사회적 직무 몰입도 모두는 당신의 인생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당신 삶의 그 어떤 행위이건 과몰입 상태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그것이 또 다른 불안을 낳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면 잠시 멈춰보고 되돌아보았으면 한다.

어쩌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 당신의 심장 깊숙이 묻어두었던 어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과거의 나'는 '기억 속의 나'일뿐 지금 현재의 나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둘째, '상처받았던 과거의 나'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언어로 사랑과 위로를 건네어준다.

셋째,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음'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신체 감각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협하는 불안과 공포를 경험한 순간의 기억을 강력한 장기억 저장 창고 해마에 집어넣는다. 이는 우리 인간 개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매우 지극히 생물학적인 생존원리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경험 중 강력하게 아프고 괴로웠던 순간은 더욱 생생한 각성을 일으키며 우리의 머릿속에 다시 재생되기가 쉽다. 그럴 때마다 우리 인간들은 그 생각에 다시금 강한 감정을 동반한 채로 그 기억 자체와 나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생각과 감정은 뇌의 무의식적인 신경계 자동처리 습관에 따라 의식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로 시시각각 의식 위로 떠오르고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온전히 나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상처'가 강렬하게 생겼던 순간과 비슷한 장면, 비슷한 인물,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마다 우리는 '과거와 비슷한 불안과 공포, 슬픔과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종종 '마음이 아프다'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면 꼭 '마음이 아픈 나' '불쌍한 나' '외로운 나'로 스스로를 인식하지 말고, '뇌의 무의식적 신경계 작용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신호를 보내는 몸의 일시적 상태'를 느껴주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마음 아픔'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아차려주면 된다. 자기 자신을 마치 일곱 살짜리 상처받은 꼬마 아이처럼 마음으로 대면해 주면 된다. 무엇 때문에 속상했는지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 자기 자신과 가장 다정한 언어로 일기를 쓰듯이 자기와의 대화를 시도해 보자. 스스로의 내면아이와 나누는 셀프 토크(self talk)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을 믿어주자.


그리고 나면 꼭 자기 자신의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껴주자. 자연의 일부로서 거친 비바람과 모진 태풍의 풍파를 맞아보았어도 '지금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느껴보자.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오감의 신체 감각 기관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내부 세계와 나를 둘러싼 외부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안정감 있는 테두리 보금자리와도 같다.


코 끝으로 느껴지는 호흡의 감각에 5분간 집중하거나, 피부로 느껴지는 바람의 느낌에 집중해 보자. 아니면 건강한 음식을 입으로 꼭꼭 씹으며 그 맛을 5분간 집중해도 좋다. 머리 위로 생각이 떠올라도 잠시 그것을 알아차릴 뿐 다시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현재의 신체 감각'에 집중해 보자.


과거의 상처도 미래의 걱정도 그저 '마음 아픔'의 상태를 다시는 겪어내고 싶지 않은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무의식적인 뇌의 스토리텔링에 불과하다.


그러니 당신이 좋아하는 당신만의 '셀프 치유'시간을 하루 중 잠시만이라도 확보해주었으면 한다.


퇴근하고 돌아와 집 정리를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가는 길 위에서도 그러한 나만의 '셀프 치유' 의식을 갖는 게 가능하다. 차가운 밤공기를 피부로 생생하게 느껴주면서 '나의 살아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자. 오늘 받은 스트레스는 묵혀두지 않고 오늘 씻어버리겠다는 마음을 가져주면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는 것도 좋다. 물과 함께 오늘의 상처를 모두 다 씻어버린다고 믿어주자.  당신의 영혼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노래를 들려주는 것도 좋다.


그것이 무엇이든 좋다. 잠들기 전 아주 잠시, 노곤한 일상 속 크고 작은 상처를 견뎌내어 준 당신 스스로를 위해오감을 활용한 '셀프 치유' 시간을 가져보자.  당신의 삶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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