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ional Day of Truth and Reconciliation
아이가 9월에 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맞이한 공휴일은 National Day of Truth and Reconciliation이었다. 준비물은? 오렌지 셔츠! 9월 초부터 가게마다 오렌지 셔츠를 진열해 둔 걸 봤는데, 그게 이 날과 관련이 있었나 보다.
캐나다에서는 공식 행사나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영토인식(Territory Acknowledgment)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우리가 xwməθkwəy̓əm(Musqueam), Sḵwx̱wú7mesh(Squamish), səlilwətaɬ(Tsleil-Waututh) 등 Coast Salish Peoples의 전통 영토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의 땅과 문화에 감사를 표하는 의식이다. 영국인이 캐나다를 차지하기 전에 훨씬 더 오랜 시간 동안 이 땅을 지키고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문화와 전통을 이루었던 원주민들을 First Nations라고 부르고 밴쿠버 지역에는 Coast Salish 민족이 있었다고 한다.
이 공휴일은 캐나다의 아픈 역사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데, 과거 캐나다 정부는 First Nations 아이들을 기숙학교(Residential Schools)에 강제로 보내 부모와 떼어놓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없애고 캐나다식 교육을 주입했다. 기숙학교에 수용된 아이들은 약 15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많은 아이들이 기숙학교에서 학대와 방임을 겪었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숨기고 싶었던 어두운 역사였던 것이 2021년에 한 기숙학교 부지에서 수백 구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캐나다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National Day of Truth and Reconciliation이 공식적인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날 오렌지 셔츠를 입는 건 한 생존자의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한 원주민 소녀가 새로 받은 오렌지색 셔츠를 학교에서 빼앗긴 경험을 이야기했고, 그 뒤로 캐나다 전역에서 기숙학교 생존자와 희생자를 기억하는 상징으로 오렌지 셔츠를 입게 된 것이다.
이 날을 기억하며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오렌지 셔츠를 입고 아이들을 맞이하고, 강당에 모여 함께 행사를 진행한다. 단순히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Every Child Matters라는 문구, 도서관에 마련된 First Nations과 기숙학교 관련 책들, 오렌지 셔츠를 입고 함께 걷는 행사까지 이 날의 의미를 기억하는 다양한 행사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중요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엄숙하게 앉아서 기념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가 중요하기에, 그 의미를 관련된 특정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기억하고 이어간다는 점에서 이 오렌지 셔츠데이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오렌지 셔츠 하나로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의미를 되새기는 것, 이것이 바로 캐나다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