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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래 좋아할 줄 몰랐어, 플루트

by 메이

초등학교 때 합주반에서 나는 학교에서 대여해 주는 아코디언을 연주했다. 아코디언을 맡은 아이들은 가장자리가 제 위치였지만, 개인 악기인 플루트나 클라리넷을 가진 친구들은 늘 중앙에서 주목을 받으며 행진하곤 했다. 구석에 서있어도 빛나는 은빛 플루트는 잘 보였다. 무거운 아코디언을 메고 땀을 흘리던 나, 플루트란 나에겐 부러움이었고, 나는 그 감정을 꾹 눌러 담은 채 어른이 되었다. 첫 월급을 받고, 나를 위해 어떤 선물을 해줄지 고민을 해보았다. 내 선물은, 플루트였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버스 노선이 적고 배차 간격이 긴 지역에 살던 나는 플루트를 배울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네, 그때는 주 5일제가 아니었답니다) 문화센터 수업을 들으러 나섰지만, 다음 버스는 1시간 후에 도착한단다. 오래 기다려 문화센터에 도착하자 이미 수업은 오래전에 끝난 후였다. 이렇게 해서는 앞으로도 수업 제시간에 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첫 수업에 간 날, 수업 대신 환불을 받았다.



플루트를 갖고 싶던 꿈은 이루었지만 정작 연주를 시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워라밸이라는 개념도 없었던 그때, 일만 있고 취미는 없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몇 년이 지나서야 문득 내 플루트가 잘 있는지 궁금해졌다. 케이스를 열어보자 남편은 "우리 집에 플루트가 있었어?" 하며 놀랐다. 응. 이제는 배워보려고. 1주일에 한 번씩 집에 방문해 주시는 레슨 선생님을 찾았고, 몇 개월간 플루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퇴근 후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저녁을 먹이고, 내가 방에서 레슨을 받는 동안 아이는 거실에서 좋아하는 동영상-로보카폴리를 본다. 하지만 "갑자기 멈췄어!", "간식 다 먹었어!" 등 꼬마의 요청이 등장하면 내 레슨은 예고 없이 중단되곤 한다. 그래도 즐겁다. 선생님의 시범 연주를 눈앞에서 듣는 것은 마치 방구석 1열에서 플루티스트의 연주회를 감상하는 듯한 호사!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우리 집에 들어왔던 적은 없었다. 몇천만 원이 넘는 선생님의 금빛 플루트로 플루트 전공자인 선생님이 내는 소리와 내 초보자용 플루트로 내가 내는 소리는 같은 소리인가 싶을 정도로 다르지만 그래도 즐겁다. 갈팡질팡하던 손가락이 제자리를 찾아 내가 원하던 소리를 내는 순간은 더욱 즐겁다.



백팩에 플루트를 넣고 밴쿠버행 비행기에 올랐다. 더 자주 꺼내어 불다 보니 소리가 더 맑아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여러 캐럴을 연습했고, 결혼기념일 주간엔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연습한다. 영화 감상 후에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 생겼다. 바로, 영화 OST를 플루트로 연주해 보는 것! 영화를 본 후 머릿속에 남아 있는 멜로디를 떠올리며 비슷한 소리를 내 보는 것이 즐겁다. 그런 나를 보며 악기를 배운 적이 없는 남편은 절대음감이라며 놀라지만, 사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능력일 뿐이다.


어릴 때 내가 동경했던 플루트를 연주하던 친구는 아직도 연주를 하고 있을까? 나는 그 친구 덕분에 플루트라는 악기가 존재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플루트를 부는 모습이 참 예뻤던 친구. 그 친구는 알고 있을까? 내가 그 아이를 부러워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조차 몰랐던 한 가지, 나는 한 가지를 좋아하면 아주 오래 좋아하고 마음에 넣어둔다는 것. 그렇게 플루트를 마음에 담은 지도 어느새 30년이 지났다. 그리고 플루트 부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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