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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들보드 위의 세계

by 메이

패들보드는 내가 밴쿠버에 와서 처음 접한 것 중 하나다. 밴쿠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근처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 낯선 풍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잔잔한 바다 위에서 보드를 타고 노를 젓는 사람들, 보드 위에 앉거나 누워 책을 읽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닷가 앞 전망 좋은 곳이다 싶으면 여지없이 지어진 카페들, 건물 안에 들어가 비싼 커피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으며 풍경을 멀리서 감상하는 한국과는 달랐다. 자연 속에 들어가 자연을 즐기는 무해한 방식이었다.


캘리포니아가 서퍼들의 천국이라면, 밴쿠버는 패들보드의 낙원이다. 거센 파도는 거의 없고, 잔잔한 호수와 평화로운 바다 풍경이 어우러져 있어 패들보드에 타기 더없이 좋은 곳이다. 차 지붕에 패들보드를 얹고 달리는 차량도 자주 보이고,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심지어 포근하다 싶은 날이면 겨울날에도 패들보드 위에 오른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아이의 친구는 형과 함께 여름방학 캠프에서 패들보드를 처음 배웠고, 호수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보드에 오른 손녀딸도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패들보드가 낯설었고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고무보트를 타고 노를 제대로 저지 못해 표류 위기를 겪었던 기억도 있어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에서 200달러 할인 중인 패들보드를 발견했다. 패들보드를 해볼까, 망설이던 마음은 할인 앞에서 무너졌고 결국 그날의 가장 비싼 소비가 되어 집으로 들고 왔다. 그렇게 나는 패들보드를 갖게 되었다.


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보드 위에 오른다. 세상은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밴쿠버에 와서 처음 본 줄 알았던 패들보드를, 무한도전 다시 보기를 하며 하와이에서 멤버들이 패들보드 위에서 요가를 하는 장면 속에서 다시 마주했다. 분명 방영 당시에도 봤을 텐데, 그땐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새롭게 보인다.



패들보드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넓은 보드 위에 올라 균형을 잡고, 양손에 긴 패들을 쥐고 물을 저어 앞으로 나아간다. 처음엔 무릎을 꿇은 채 시작하고, 익숙해지면 천천히 일어선다. 패들보드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더 깊고 더 특별하다. 온통 맑고 투명한 물 위에서 노를 저으며 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물 위에 외딴섬이 된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을 앞에서 바라보는 호사를 누리며, 고요한 자유와 부드러운 물결 속에 나를 맡긴다.


패들보드를 타는 이 시간을 나만큼이나 사랑하는 남편은 한국에 돌아갈 때 이 보드를 꼭 가져가고 싶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는 어디에서 패들보드를 탈 수 있을까? 적당한 수심과 잔잔한 물결이 있는 곳을 찾았다 하더라도, ‘물놀이 금지’라는 안내판이 먼저 보이지는 않을까. 여름 휴가지에서 해변 업체에서 파라솔을 빌려야만 했던 불쾌한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우리의 패들보드를 가지고 있어도 현지 업체에서 대여하는 건 괜찮지만, 개인 장비 사용은 금지라며 막히는 일도 있을 것 같다.


바다를, 호수를,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도 호수처럼 푸르고 바다처럼 넓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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