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서 큰 산불이 났고, 앞산에 불이 붙었는데도 골프를 치는 사람들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불 때문에 골프장 예약을 취소하려 해도 골프장에서 받아주지 않아서 고민을 하며 골프장에 갔겠지, 그리고 골프장이 운영될 정도면 산불 상태가 그리 심각하지 않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불이 나도 쉽게 취소하기 어려운 골프장이라니.
한국에서는 골프장 예약부터가 전쟁이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간단하다. 여러 골프장을 예약할 수 있는 앱에서 빈 시간을 골라 예약하면 끝. 만약 골프를 칠 수 없는 상황이라면, 24시간 이전에는 앱으로, 그 이후에는 전화로 손쉽게 취소할 수 있다. 한국에서라면? 죄송한데 안되세요...
우리 가족 셋은 캐나다에서 골프를 배우고, 이제는 골프장에 가서 라운딩을 돌고 있다. 셋 다 밴쿠버에 와서 처음으로 배운 거라 잘한다고 할 수 없지만. 우리가 골프 비슷한 것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고 대단한 기분이 든다. 한국에 귀국하는 이웃으로부터 물려받은 아이의 골프채는 남편의 풀링카트에, 중고매장에서 8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산 내 골프채는 역시 중고로 구한 내 풀링카트에 넣어 손으로 밀며 걷는다. 8살 우리 아이도 주말 하이킹으로 단련된 다리로 씩씩하게 걷고 공을 치면서 마지막 18홀까지 완주한다.
한국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첫 번째, 나는 골프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내가 레슨을 받는 대신 남편이 연습장에서 가르쳐 주며 시작했지만, 한국에서는 반드시 강사에게만 배워야 하고, 골프연습장에서 지인이 알려주는 것은 금지라고 한다. 두 번째, 우리 가족 셋이서 라운딩을 도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반드시 4명이 한 팀을 이루어야 예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이가 포함된 예약을 받아줬으려나? 세 번째, 자신의 풀링카트를 밀며 다니는 것도 불가능하다. 한국에서는 보통 전동카트를 이용해야 하며, 스스로 남은 거리를 계산해 가며 자신이 클럽을 선택하는 것도 어렵다. 동반하는 캐디가 알아서 클럽을 꺼내 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골프를 배운 한 이웃은 한국의 골프 연습장은 ‘1시간에 얼마’로 가격이 책정된다고 했다. 골프공을 많이 쳐야 본전을 찾는다며, 1시간 동안 드라이버를 300개나 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1시간에 300개라니! 마치 어릴 적 하던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공을 치고 또 치면, 계속 새로운 공이 튀어나오니 못 치고 배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캐나다에서는 보통 라운딩을 도는 골프장 안에 연습할 수 있는 시설이 같이 딸려있는데 한국의 PC방처럼 ‘시간당 요금’이 아니라, 공 개수에 따라 비용을 낸다. 30개, 60개, 120개의 공 중에서 선택할 수 있고, 공을 얼마나 빨리 또는 천천히 칠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자유다. 나는 60개의 공을 뽑아 하나씩 치고 난 후, 노트에 ‘잘했음(○)’, ‘보통(△)’, ‘별로(×)’를 표시하느라 오래 걸리는 편이다. 가끔은 120개의 공을 뽑아 친구와 나누어 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는 ‘빨리빨리’가 아니라,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며 연습하는 이 시간을 정말 즐기고 있다. 답답한 실내가 아니라, 그날의 날씨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곳, 높은 나무가 우거지고 새소리가 들리며 가끔 독수리도 날아다니는 곳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골프 연습을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참 즐겁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면 그리워할 시간이라는 것도 안다.
어제는 골프장에서 아이들의 골프 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오늘 골프장에 연습하러 갔더니, 내 양옆으로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축구나 배구처럼 격렬한 운동이 아니라, 골프는 나이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적어도 4시간 30분 동안 라운딩을 돌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풍경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골프가 너무나도 멀고도 높은 스포츠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 돌아가면 골프를 즐기는 것은 어렵겠지. 지금의 10배나 되는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골프를 칠 경제적 여력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밴쿠버에서 처음 시작해 배우고, 즐기고 있는 이 골프 생활이 무엇보다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