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순간은 크게 없다. 오히려 영어도 한글도 둘 다 어중간해진 건 아닐까 싶어 조바심이 나고, 걱정도 된다. 하지만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고, 나도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아서 정말 최소한으로만 하고 있다.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10분 정도. 그런데 아이는 이마저도 하기 싫어한다는 게 함정이다.
영어유치원이라고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은 보내지 않았다.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의 영어 수준은, 영어유치원 7세 반 정도일까? 가끔 영어유치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쓴 글이나 읽는 책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럴 만도 한 게, 영어유치원에서는 방과 후에도 보호자가 책을 읽히고 글을 쓰게 하는 숙제가 많다. 인풋이 많으니 아웃풋도 자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의 친한 친구 엄마가 말하기를, 자신이 자란 Alberta, 남편이 자란 Nova Scotia, 그리고 큰아이가 학교를 다닌 Ontario보다 Vancouver가 공부를 훨씬 덜 시키는 것 같다고. 사촌 중 교사도 여러 명 있어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여긴 공부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라고. 그래서일까, 내가 만난 한국 엄마와 홍콩 엄마들은 학교가 끝나고 아이를 여러 학원에 보내고 있다.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놀자고 해도, 숙제가 많아서 못 논다고 하는 친구들도 있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굳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나 싶다. 공부 대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라는 마음으로, 정말 최소한의 것들만 하고 있다. 그러니 받아쓰기 시험에서 늘 몇 개 틀려도, Friday Journal에서 ‘coming’을 ‘comeing’으로 써 와도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사실, 조금 더 저절로 잘하게 될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안다. 아이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걸. 이건 결국 엄마의 욕심이다. 아이마다 잘하는 게 있고, 좋아하는 게 있다. 우리 아이는 글자를 눈으로 습득하고 기억하는 것에 뛰어나지 않을 뿐이다. 그냥 보통의 아이로, 자기 속도로 잘 하고 있다. 아이의 인생이란, 참 피곤한 것 같다. 엄마의 은근한 기대와 바람을 충족시켜야 하니까. 하지만 엄마가 기대를 낮추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중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캐나다에서 3년을 살다 온 친구가 있었다. 영어 시간에 그 친구가 읽는 본문을 듣고 처음으로 ‘진짜’ 원어민 발음을 들었다. 나는 괜히 영어 질문도 하고 옆에 앉아보려 애썼다. 남편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캐나다에서 살다 온 친구 집에 갔다가 냉장고에 잔뜩 붙은 여행 마그넷을 보고 놀랐던 일, 그 집에서 처음 먹어본 피자의 맛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고. 유년 시절 해외 경험이 없었던 우리에게 캐나다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예전보다 해외 생활이 흔해졌지만, 우리 아이가 이 나이에 캐나다에서 2년을 보낸 것은 분명 특별한 일이 될 것임을 믿고 있다.
예전 글에도 썼지만,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꼭 캐나다일 필요는 없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다. 아이의 단어 시험 틀린 단어들—‘broght’, ‘gardending’을 보며 생각한다. 언젠가는 맞게 쓰겠지.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된다.
지금은 벤쿠버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충분히 누리는 시간이다. 남편, 나, 아이. 벤쿠버 삼총사가 아이 학교가 끝나면 숲으로 자전거를 타러 다니고, 주말엔 하이킹과 골프를 하는 일상. 그걸로도 넘치게 행복하다.
5월의 어느 금요일 단어 시험에서 ‘gardening’을 틀린 건 기억 못하겠지만, 어느 월요일 오후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빈 기억은 오래 남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더 멀리까지 페달을 밟고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