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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생활, 환상과 현실

by 메이

사람은 누구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이 있다. 영어권 국가에 가면 영어가 금방 느는 줄 알고 기대하지만,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지내는 벤쿠버의 집은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데, 창문을 열면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자주 들린다. 옆집도 뒷집도 모두 한국인 가족이고, 아이 반에도 한국인 친구가 네 명 정도 있다. 랭리나 코퀴틀람처럼 한국인이 많은 지역은 반 이상이 한국인이라는 글도 본 적 있다. 벤쿠버 정보 공유 카페엔 종종 ‘한국인 없는 동네가 어디냐’는 질문이 올라오는데, 결국 한국인이 많은 동네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반대로 없는 동네에도 이유가 있다. 안전하고 깨끗하고 살기 편하니까 사람들이 모이는 거다.


20대 때 벤쿠버에서 세 달 정도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다녔던 어학원 반 학생 전원이 한국인이었다. 캐나다인 선생님만 빼고 말이다. 어학연수를 오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영어로 소통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영어가 서툰 외국인들끼리 어색하게 더듬거리며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라리 한국에서 기초를 제대로 배우고 연습하는 게 훨씬 나을 수도 있다.


어학연수 대신 현지 학교에 다니게 되면 또 다른 경험이 된다. 캐나다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그들의 주말이나 방과후 생활, 공휴일이나 국경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몸으로 겪게 된다. 가능하다면 어학연수보다는 교환학생으로 6개월이든 2년이든 지내보는 게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대학생 때 왜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시간을 갖게 된 게 다행이다.


캐나다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다르다. ‘캐나다 사람들은 친절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 친절함을 직접 느껴보는 건 이런 해외 생활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작은 경험 하나가 마음을 바꿔놓을 수도 있고, 이곳에서 겪은 어떤 일이 너무 좋아서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지금은 워킹홀리데이를 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뭐든지 어릴 때 기회가 더 많다. 이 나라가 마음에 든다면 부러워만 하지 말고,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다.


예전에 이웃집 아이는 어릴 때 벤쿠버 음악학원에서 여러 악기를 접해본 경험 덕분인지 지금은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어릴 때의 사소한 경험 하나가 오래 남아 인생의 한 조각을 채우게 되는지도 모른다. 운 좋게도 캐나다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 우리 아이, 이곳의 많은 것들 중 어떤 걸 마음에 새기고, 어떤 걸 기억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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