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센터에서 리딩 튜터 선생님으로 만난 마사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으셨다.
"리딩 레벨을 알고 있니? 무슨 색인지?"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리딩 레벨과 색깔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궁금하던 차, 몇 주가 지나 아이가 학교에서 빌려온 책을 보고 나서야 그 궁금증이 해소되었다.
아이 학교에는 다양한 형태의 리딩 수업이 있다. 도서관에서 사서 선생님과 함께하는 리딩 시간, 7학년 학생들이 저학년 학생들과 1대 1로 짝을 이루어 책을 읽어주는 리딩 버디 시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딩 레벨에 따라 친구들과 조를 이루어 수업하는 시간이 있다.
조별 리딩 시간에는 다른 반 학생들과 함께 수준별로 조를 재편성하여 학교의 ESL 선생님과 함께 읽는 조, 담임 선생님과 읽는 조, 라즈키즈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해 스스로 읽는 조 등으로 나뉜다. 같은 시간 동안 같은 레벨의 학생들과 함께 수준별 리딩수업을 한 후 각자의 리딩 레벨에 맞는 책을 빌려 일주일간 읽고, 다시 학교로 반납하게 된다..
아이의 리딩 레벨 시작은 ‘핑크’. 보통 1단계가 ‘레드’라는데, 그보다 더 낮은 단계였다. 단어 하나도 읽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한 셈이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1·2학년 통합 학급이라 1학년보다 책을 잘 읽는 아이들이 많았고, 영어를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더 높은 레벨에 있었을 테니까. 리딩 수업 동안 아이는 주변 친구들의 레벨을 유심히 살펴봤던 모양이다. 문장도 길고 단어 수도 많은 책을 들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 한편으로는 부러운 감정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집에 와 색연필을 꺼내 친구들의 이름 옆에 각각의 리딩 레벨 색깔을 적어 놓기도 했다.
아이와 나는 아이가 빌려온 책을 꾸준히 읽었다. 간단한 책인데도, 이미 여러 번 함께 읽은 책인데도 왜 또 못 읽는 걸까, 답답하고 초조했던 나의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계속 읽어 나갔다. 아마 아이도 나만큼이나 답답했을 것이다.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짜증을 냈고, 나는 그 짜증을 더 큰 짜증으로 억눌렀던 적도, 책장을 덮고 “그만 읽자”라고 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영어를 읽는 데 눈을 뜨는 방법은 하나뿐. 그냥, 계속 읽는 것.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이 반복되었다. 처음엔 내가 읽고 아이가 듣는 방식이었지만, 점차 한 단어씩, 한 문장씩, 한 문단씩, 한 장씩 아이가 읽는 분량이 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의기양양하게 집에 돌아와 학교에서 빌린 책을 꺼내 보여주었다.
“내가 Try 해서 올라갔어!”
무슨 일인가 했더니, 리딩 수업이 끝나기 전 다른 레벨의 책에 도전해 봐도 되겠냐고 스스로 선생님께 물었고, 책을 잘 읽어내서 선생님이 색깔을 바꿔주셨단다. 선생님은 아이가 정확하게 읽지 못해도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한 아이의 모습을 격려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리딩 수업에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아이의 모습이 참 다행스러웠다.
핑크에서 시작한 아이의 리딩 레벨은 차곡차곡 올라 회색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캐나다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같은 조가 되었다. 내가 영어책을 읽어주려고 하면 내 입을 막던 아이는, 이제 많이 자랐다. 어느 엄마들처럼 나도,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