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지금, 아이의 생활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방과 후 시간의 모습이다. 작년엔 여러 커뮤니티 센터 프로그램을 찾아 플로어 하키, 바이올린, 건축, 읽기 수업에 등록시키고 이곳저곳 데리고 다녔다. 매주 일정이 빼곡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수영 수업 하나만 남아 있다. 한가롭게 비워진 그 시간을 채우는 건 다름 아닌 아이의 친구들과의 ‘플레이데이트’다.
작년엔 학교가 끝난 뒤 놀이터에서 한 시간씩 놀다 오곤 했다. 한국에 있을 땐 늘 가장 먼저 등원해 가장 늦게 하원하던 아이였다. 바삐 퇴근해 아이를 데려 나오면 놀이터가 텅 비어있었다. 교실 창 너머로 먼저 하원한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을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렸다. 마침내 밴쿠버에 와서 아이는 시끌벅적한 놀이터에서 놀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놀이터에서 아이가 누구와 어떻게 노는지를 지켜보며 놀이터에 오래 머물렀다.
1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비치로 가는 수업 활동에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셨고, 나는 흔쾌히 신청했다. 방과 후의 놀이터에서 아이의 친구들을 늘 보아왔기에 아이의 친구관계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본 아이의 모습은 새로웠다. 놀이터에서 보이지 않던 친구와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먹고, 또 다른 친구와 모래 구덩이를 파며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학교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아이라서, 그런 친구들과 가깝게 지내는지도 몰랐던 나였다.
그날 이후, 나는 작은 용기를 냈다. 혹시 아이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와 플레이데이트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하면 어쩌나 망설이던 마음을 접고, 아이와 즐겁게 놀던 친구의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나 흔쾌히, 플레이데이트를 승낙! 아이의 첫 플레이데이트 상대는 타일러였다.
처음이 어렵지, 그 이후로도 아이와 타일러는 여러 번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방학식날 Bouncy Castle에서의 첫 플레이데이트, 여름날 비치에서 모래놀이했던 두 번째, 핼러윈에 가면을 쓰고 사탕 바구니를 들고 다녔던 세 번째,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하러 간 네 번째, 근처 비치에서 돌을 줍던 다섯 번째, 아이 생일에 영화를 보러 간 여섯 번째, 그리고 미니골프를 함께 했던 일곱 번째까지.
다음 만남도 이미 계획되어 있다. 숲과 바다에 이어 이번엔 호수다! 이번엔 숲 지킴이 선생님과 함께 트레일을 벗어나 통나무와 바위를 뒤집으며 어둑하고 습한 곳에 숨어 있는 Salamander를 찾으러 간다. 비가 오면 더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밴쿠버 지도를 펼치면 낯설고 평범했던 공간 곳곳에 아이와 친구가 함께한 추억의 화살표들이 촘촘히 찍혀 있다. 아이의 방과 후는 더 이상 텅 빈 시간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한 즐거운 순간들로 가득하다. 여유로웠던 우리의 오후들. 그 속에서 웃고 떠들던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면,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가장 그리워질 풍경일 것 같다. 한국에 가면 퇴근해서 엄마가 올 때까지, 다시 긴 오후시간을 홀로 기다리며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마음이 무거워지지만 지금의 행복한 시간들이 아이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언제나 즐거운 빛을 내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