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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의 첫 무대, Show and Tell

by 메이

아이가 학교 갈 때 챙기는 건 도시락 가방 하나가 전부다. 아이의 학교는 교과서도 따로 없어서 가방이 참 가볍다. 수업은 선생님이 아이들 수준에 맞춰 그때그때 프린트를 나눠주며 진행되는데, 그래서 아이가 가져온 수학 문제지나 그려온 그림, 종이접기 한 것을 보면서 아이의 하루를 짐작할 뿐이다.

그에 비하면 정해진 주제와 스케줄표를 미리 나눠주신 Show and Tell 활동은 조직적으로 느껴졌다. 이 활동은 아이들이 한 주제에 대해 준비한 것을 친구들 앞에서 소개하고 발표하는 것으로 말 그대로 발표자는 보여주고(show) 이야기(tell) 하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주의 깊게 보고 듣는 시간이 된다. 발표 주제는 책, 장난감, 가족, 여행, 동물 등 다양하고, 발표 시간과 형식은 자유롭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아이가 영어를 하나도 못한 채 캐나다에 왔다는 점이었다. 영어 한마디 못하던 아이가 반 친구들 앞에서 무사히 발표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매주 화요일이면 둘이 앉아 발표 준비를 했다. “Good morning, class”로 시작해서 “Thank you for listening”으로 끝나는 짧은 대본을 외우고, 우리는 함께 여러 번 연습했다. 나는 아이의 첫 번째 관객이 되어 박수를 쳐주고, 틀려도 괜찮다고 격려해 줬다.


발표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한국 가족들에게 보내기도 했는데, 아이가 영어로 무언가를 말하는 모습이 다들 너무 신기하고 대견했는지, 매주 영상을 기다릴 정도였다. 지금 다시 보면, 어린 얼굴로 대본을 기억하려 애쓰던 모습이 참 귀엽다. 그렇게 매주 연습하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는 더 이상 연습하지 않아도, 전날 준비하지 않아도 혼자서 발표를 해내기 시작했다.


논픽션 책을 읽고, 그 안에서 배운 정보 다섯 가지를 시각 자료와 함께 정리해 발표하는 주제의 Show and Tell을 준비하던 날, blubber, calf 같은 생소한 단어도 나왔지만, 아이는 여러 번 연습하며 열심히 준비했고, 선생님께 “발표 정말 잘했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는 처음으로 받은 칭찬에 신나 했고, 나 역시 속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발표자료와 선생님에게 받은 쪽지는 벽에 붙여놓았다.


이제 2학년이 되면서 Show and Tell 시간은 끝이 났고, 매주 찍던 발표 영상도 더 이상 찍을 일이 없다. 그래서 조금 아쉽다. 그때 그 시간들은, 아이에게는 매주 새로운 무대였고, 어쩌면 그 짧은 무대 위에서 아이는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걸 익혀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에겐 아이의 더디지만 확실한 변화를 지켜보는, 가장 따뜻하고 설레는 순간들이었다.




작은 칭찬도 고팠던, 처음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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