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갔다가 아이가 내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사서에게 지적을 받아 나왔던 적이 있었다. 어린이 도서관이었는데도! 정숙, 발소리 조심 등의 문구가 여기저기 붙여져 있고 조용히 앉아 책장을 넘기는 곳, 도서관에 있는 책을 열람해 읽는 사람보다 자신이 가져온 문제집이나 수험서를 공부하는 곳이 더 많은 곳이 바로 한국의 도서관이다.
내가 살던 동네의 1인 책 대여권수는 5권이었다. 그래서 내 카드로 5권, 아이카드로 5권을 빌리고 옆 동네 도서관으로 가서 다시 내 카드로 5권, 아이카드로 5권을 빌려 책을 모으곤 했었다. 상호대차한 책이 도착해서 빌리러 갔다가 연체가 된 책 때문에 빌리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깜빡하고 도서관 카드를 챙겨가지 못해 빌리지 못하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빌리고 싶은 책이 많았지만 이미 5권을 빌려서 빌리지 못한 건 기본이고요.
그러나, 밴쿠버의 도서관에서 한 사람이 빌릴 수 있는 책은? 50권 + a! 5권이 아니라 50권이다! 게다가 사서에게, 내가 이미 책을 다 빌렸는데 이 책을 더 빌리고 싶다고 하면 허락해 준다. 연체가 되었더라도 빌릴 수 있고(벌금도 없음) 카드를 가져오지 않았더라도 개인정보를 확인해 책을 빌릴 수도 있었다.
밴쿠버의 도서관은 규모도 작고 공부할만한 공간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도 않다. 그래서 종일 죽치고 앉아 공부를 하는 사람들 대신 다양한 사람들이 공간을 채운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스토리타임부터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을 위한 리딩버디, 가끔 레고블록파티나 포켓몬파티가 열리기도 하고 어른들의 책모임,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회화모임도 이루어진다.
도서관에 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보드게임을 빌릴 수 있고, 도서관 이곳저곳을 다니며 숨겨진 단서를 찾아 활동지를 완성하는 Scavenger Hunt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경험은,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악기! 악기대여는 중앙도서관에서만 가능한데 바이올린, 기타, 우쿨렐레, 칼림바 등의 흔한 악기뿐만 아니라 카존(cajon), 봉고(bongo) 등 처음 들어보는 악기까지, 악기 컬렉션도 다양하다. 나는 아이의 1/4 사이즈 바이올린으로 바이올린을 해보다 처음으로 4/4 사이즈를 대여보았는데,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다운타운을 걷는 기분은, 갑자기 음대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1년 내내 변하지 않는 무채색 같은 도서관이 아니라, 매달 있는 기념일에 따라 도서관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관련 서적을 비치해놓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에는 책을 포장해 두어서 어떤 책인지 모른 채 책을 빌릴 수 있게 하는 이벤트도 있었고, 도서관 직원들이 추천하는 책 코너를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이렇게 하나하나 마음에 드는 서비스로 가득한 도서관에서 부지런히 책을 빌리고 읽고 반납하기를 반복하며 도서관과 점점 더 큰 사랑에 빠졌다. 들어갈 때마다 감탄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한국의 도서관도 만족하며 다녔지만, 훨씬 더 많은 것이 다양했던 이 밴쿠버의 도서관에 책을 구경하고 빌려 나오는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