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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선생님과 30분 책읽는 시간

by 메이

밴쿠버 커뮤니티센터 홈페이지를 둘러보다 아이에게 적당한 프로그램을 찾았다. 선생님과 1대 1로 책을 읽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가져와도 되고 선생님이 아이의 흥미와 수준에 맞게 책을 제시해주기도 한단다. 영어노출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미리 메모해 두었다가 수강신청이 열리는 날 바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뭘 몰랐기에 3시 30분에 시작하는 수업을 신청했던 것. 아이의 학교는 3시 3분에 끝나는데 주변의 학교들도 모두 비슷한 시간에 끝나는터라 도로는 많은 차들로 붐빈다. 게다가 캐나다에 와서 운전해 본 적이 없는 나. 과연 아이를 태워 무사히 3시 30분에 시작하는 수업을 데려갈 수 있을까? 운전이 걱정이 되어 어렵게 신청한 수업을 취소를 해야 할까 몇 번이나 고민을 하던 나. 룰루레몬에 쇼핑하러 갔다가 탈의실에서 한 문장을 만났다.


Do one thing a day that scares you

(매일 너를 두렵게 하는 일 한 가지를 해보아라)



나에겐 그것이 운전이었고 그래서 운전을 해보기로 했다. 나의 운전에 대한 두려움도 감내하도록 한 것은 수업 전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 때문이었다. 그날도 학교에서 커뮤니티센터까지 운전하는 것을 연습한 후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마침 문자를 받았다. 무려 수업 2주 전이었다. 아이의 상황이 어떤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성격인지 무엇이든 알려달라고 하는 마사선생님의 문자. 첫 수업 날 우리 아이를 알아가도 충분할 텐데 미리, 설레는 마음으로 첫 수업을 준비하는 그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대망의 첫 수업을 시작으로, 아이와 마사선생님은 1년 반의 시간을 1주일에 한 번씩 만나 함께 책을 읽어나갔다.


나는 정말로 네 아이와 책을 읽는 시간이 즐겁고 나에게는 휴식 같아.


네 아이는 정말 특별하고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아이야. 그것 잘 알고 있지? 이런 아이의 부모인 너는 정말 행운이야.



수업에 넣어주고 잠깐의 인사, 수업이 끝날 때의 잠깐의 인사. 그리고 가끔의 문자메시지로 이야기하는 동안 마사선생님은 언제나 힘이 나게 하는 말을 듬뿍 쏟아내어 주셨다. 어쩌면 부모인 나보다 우리 아이를 더 좋은 눈으로 봐주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써온 글을 보면 잘 썼다는 생각보다 고쳐줘야 할 스펠링이 먼저 눈에 들어오니까. 마사선생님과의 시간에도 아이는 잘못된 발음으로 읽거나 못 읽어서 선생님에게 읽어달라고 하는 경우도 많을 텐데도 마사선생님은 언제나처럼 크고 넉넉한 사랑의 눈으로 아이를 지켜보며 잘하고 있다고, 잘하게 될 거라고 믿어주셨다. 그리고 낯설고 새로운 이곳에서 아이를 예쁜 눈으로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아이에게는,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로 큰 힘이 되었다.


어느 날은 아이가 바이올린 수업에 들어가 있는 동안 마사선생님을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 나란히 앉아 아이의 바이올린 연습하는 소리를 들었다. 조카가 밴쿠버에 놀러 왔던 어느 날은 아이가 수업받는 동안 조카가 옆에 앉아있기도 했다. 어느 날은 마사선생님의 아들이 아이의 학교에 임시교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아이가 마사선생님의 아들을 만나 인사한 이야기를 하며 신기하다며 함 웃었다. 어느 날은 아이와 마사선생님이 도서관에 내려가 함께 책을 고르기도 했고 아이의 생일날에도, 마지막 수업 날에도, 따뜻한 메시지가 적힌 책을 선물 받기도 했다. 1주일에 30분, 짧은 시간이지만 1년 반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하다 보니 여러 추억들이 쌓여갔다.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 한 명과 학급 아이들 스무 명의 관계라면, 마사선생님의 시간은, 단 30분이지만 아이가 선생님을 독차지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친밀감도, 특별함도 더 깊게 쌓여갔던 것 같다.



커뮤니티센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언제나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테이블에 펼쳐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마사선생님. 마사선생님 덕분에 아이는 영어를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엄마는 운전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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