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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May 07. 2024

30센티미터 세상

고양이의 눈높이로부터

우리의 키가 30센티미터 남짓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질문. 당신은 고양이를 보면서 주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내 경우엔 이거다. “왜 저러지?”


두부(여아, 2살)


고양이는 정말로 이상하고 어이없고 웃기고, 무엇보다 귀엽다. 고양이에겐 귀엽다는 개념도 없을 테고 딱히 그러고 싶은 것도 아닐 텐데, 왜 저렇게 희한하고 사랑스러운 짓을 하는 걸까. 고양이를 골똘히 바라보다 생각해본다. 어떤 걸까, 고양이로 산다는 건. 작지만 강하고 유연한 몸으로 세상을 누비는 가뿐한 기분 같은 건.


비디오게임 속에서라면 경험해볼 수 있을까?


<Stray(스트레이)> (2022)


<스트레이>에서 나는 문명이 무너진 세상 속 한 마리 고양이가 되어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도시를 누빈다. 인간은 모두 사라진 세계, 남은 건 인간을 모방해 살아가는 안드로이드 로봇뿐이다. 고양이인 나는(!) 고양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고양이의 행동 방식으로 탐험하면서, 집으로 돌아갈 단서를 찾아나선다. 어중간하게 놓여있는 물건은 툭툭 쳐서 떨어뜨려 보고, 높은 벽을 만나면 여유롭게 점프해서 올라갈 수 있다. 누군가 쫓아올 때는 재빠르게 내달리다 작은 틈으로 몸을 말아넣어버린다.


그건 정말 고양이가 되어보는 경험처럼 느껴졌다. 다만 실내를 벗어날 때는 게임의 시야가 고양이 눈높이가 아닌, 인간의 그것처럼 높게 바뀌었다. 고양이처럼 생각하기가 멈춰지고, 인간인 나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평소 사무실에서도 고양이들 옆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서고 보면 새삼스레 그 풍경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30센티미터 세상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내가 가진 몸뚱이로는 고양이처럼 살아보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고양이를 아직 잘 모르겠다. 수많은 고양이 밈이 온라인에서 유쾌하게 떠도는 이유도 우리가 고양이를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벽타기를 즐기는 고양이는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서일 수 있고, 과격하게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고양이들도 자기들의 룰 안에서 게임을 즐기는 건지도 모른다. 고양이는 보고 또 봐도 참 알 수 없다.



고양이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 싶어 고양이 책 몇 권을 사무실에 구비해 두었다. 팸 존슨 베넷의 『고양이처럼 생각하기』는 고양이를 둘러싼 다양한 내용을 방대한 양으로 정리해두어 필요에 따라 사전처럼 찾아 읽는 책이다.


“나는 보호자가 고양이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길, 또 고양이의 환경을 바라보는 방식도 바꾸길 바란다. 인간이라는 높고 우세한 시선으로 고양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의 입장에서 고양이를 봐야 한다는 의미다.”
 - 『고양이처럼 생각하기』, 6p.


우리 사무실은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 힘을 합쳐 꾸려가고 있는 고양이 쉼터이다. 아이들 케어와 입양 보내기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무실 운영에 대해 이야기 나누다 보면 우리끼리도 생각이 다른 부분에 수도 없이 부딪히게 된다. “이 아이는 이 입양처에 보내야해, 아니야 그 집은 적절하지 않아. 이 아이는 약을 좀더 먹여야겠어, 아니야 너무 오래 약을 먹었으니 일단 단약해야 해.” 우리끼리도 고민하고 수의사나 동물행동교정 전문가와도 상의하지만 늘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양이에게 집중하며 한 걸음씩 다가갈 뿐이다.


우리가 보기에 고양이가 이상한 것처럼, 고양이가 보기에는 우리가 정말 이상해 보이겠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서로 자기 생각이 옳다고 아웅다웅 이러쿵저러쿵. 고양이의 눈으로 우리를 다시 볼 때 사람간의 차이라는 건 실은 고만고만한 것이 되지도 않을까. 우리가, 그러니까 고양이와 인간이 서로의 입장에 완전히 다가서지는 못하겠지만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더 고양이에게 가까워질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도 중간중간 고양이들에게 혼을 빼앗겼다가, 내일은 좀더 잘하자는 다짐을 인사삼아 헤어진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부비다가도 한순간 격투기로 장르를 바꿔버리는 신속한 녀석들. 좋거나 싫은 감정을 표현하는 몸과 울음의 언어. 아니 그렇게 정리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다단한 감정과 생각의 스펙트럼. 고양이는 우리가 모르는 우주다. 오늘도 바닥에 등을 맞댄 채 몇 바퀴고 굴러대는 각양각색의 우주들.


그 우주에 가고 싶다. 낮게 더 낮게 몸을 말아서 넓고도 나른한 그 세상으로. 30센티미터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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