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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광 May 13. 2024

성심당 가는 길

조금 돌아서 가는 고양이 입양여행

@sungsimdang_official


성심당 빵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나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오늘은 진과 그 빵을 맛보러 대전으로 가는 날이다. 며칠간 거뭇했던 비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푸르게 열렸다. 거기에 응답하듯 선선히 불어주는 바람까지. 우리는 달콤한 것과 시원한 것을 고루 챙겨 차에 올랐다. 우리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뒷좌석에는 자그마한 고양이가 이동장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약 한 달 전 구조된 고양이 연두다.


맞다. 이건 데이트를 가장한 ‘입양 여행’이다.




진과 내가 서로에게만 집중해서 보내 본 마지막 시간이 언제였을까. 고양이들을 구조하고 임보 하게 되면서부터 모든 일상은 이 친구들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먹이고 치우는 일에 빈칸이 있을 수 없으니 우리가 며칠씩 자리를 비우는 일도 상상하기 힘들게 되었다. 둘이서 고양이를 가운데 두고 얼싸안으며 한 자리에서 뒹구는 동안 몇 해가 훌쩍 지났다. 그래서 이렇게 먼 곳의 입양처가 결정되면 일탈의 명분이 된다. 부산이든 한라산이든, 고양이에게 좋은 입양처라면 ‘어쩔 수 없이’ 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이름 붙이기를, 입양 여행.


연두(여아, 5세)


연두는 진의 지인 캣맘님께서 발견하셨다. 산기슭에서 고양이들 밥을 챙겨주는데 뭐가 굴러 떨어지듯 내려와 손에 ‘퉁’ 부딪혔다고 그분은 표현했다. 치아 상태 등으로 보았을 때 5세 전후로 추정되지만 2kg도 채 되지 않는 몸무게. 마치 깨끗하게 밀어버린 것처럼 털이 빠져있는 뒷다리. 아이의 종과, 몸 상태, 그리고 돌보던 자리에 갑자기 나타난 점까지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물건으로 취급받은 생명. 하지만 어떤 생명도 버려진다고 해서 물건이 돼버리지 않는다. 생기를 잃는 건 버린 사람의 마음이겠지.


다행히 연두는 사람의 손을 반기고 식욕도 좋아 병원에서 찬찬히 컨디션을 회복했다. 그리고 묘연이 닿아, 입양 전제 임보로 대전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긴 여행이 될 터라 우리는 이른 오후에 만나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그리고 역시나, 수정되었다. 진이 연두를 이동장에 태워 차로 데리고 오는 사이 아이가 대변을 지리는 바람에 다시 들어가 정리를 하고 나와야 했다. 간신히 출발했지만 연두는 곧바로 2차 표현을 했다. 이번에는 연두를 꺼내 닦아주는 과정에서 내 티셔츠에도 그 따뜻한 것들이 온통 묻어버렸다. 나는 여벌 옷으로 갈아입으면 그만이지만, 이렇게밖에 드러낼 수 없는 연두의 이동 스트레스는 얼마나 클지… 짐작밖에 못하는 우리는 가능한 부드럽게 운전하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건넸다. 고맙게도 점차 이동장 안에서 조는 모습도 보이며 연두도 안정을 찾아갔다.


시작부터 이랬으니 갈 길이 멀었다. 휴게소도 짧게 지나치면서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래, 휴게소 찰옥수수빵은 놓쳐도 괜찮아. 우리는 성심당 튀김소보로를 먹을 거니까.




조금 나른해질 무렵, 고속도로 오른편으로 농촌 마을이 우리 눈에 들었다. 깔끔하게 데스크테리어 된 디자이너의 책상처럼, 논밭과 지붕 들이 정갈해 보였다. 논마다 물이 찰방찰방 들어찼고 어느 길 하나 무너진 데 없이 관리받은 태가 났다. 지도를 열어보니 공주시 정안면이었다. 이름도 참 예쁘네. 정안.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출처는 디지털공주문화대전.


우리 나중에 이런 데서 살면 어떨까?


눈을 빛내며 진이 말했다. 우리가 언제까지 지금처럼 구조와 입양 보내기를 계속할 수는 없을 거라고 전부터 이야기해 왔다. 어느 시점에는 입양 가지 못한 아이들을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들어가 우리끼리 오손도손 지내야 하지 않을까. 혹은, 그럴 수 있을까.


“우리가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넌 어때?”

“벼농사는 소규모로 안 될 테고, 특산물 같은 것도 노하우가 꽤 필요할 텐데.”


우리는 그저 고양이 잘 돌보고 텃밭이나 가꾸는 걸로 금세 결론이 났지만,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 정안의 마을에는 한동안 눈길을 빼앗겼다.



연두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입양 신청자분은 벌써 고양이 물품을 양껏 구비해 두셨고, 실제로 본 연두의 모습에 또 한 번 사랑에 빠지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고양이에게 다가가는 모습에 조금 마음이 놓였다. 고양이의 적응을 위해 집안 환경과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꼼꼼하게 임보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로에 대한 감사도 빼놓지 않았다. 고양이에게 새 가족을 찾아주는 일이 늘 그렇듯, 다행스럽고 고마우면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서로에게 살짝 티가 날 만큼 지쳤고, 돌아가는 길에는 그만큼 조용해졌다. 중간에 안성을 지나면서는 살짝 들어온 축사의 냄새를 털어내겠다고, 아무 생각 없이 창문을 활짝 열었다가 오히려 냄새 폭탄을 한껏 맞아버렸다. 연두의 흔적을 묻힌 채 뒷좌석에 놓인 내 티셔츠의 존재도 잊고서,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러다 어느새 시야를 물들인 어스레한 노을빛에 할 말을 잊고 멍하니 달리기도 했다.



돌아와서도 정신이 없었다. 우리가 챙기는 길 위의 급식소와 사무실 고양이들, 그리고 집에 있는 아이들의 식사와 화장실을 돌며 쉴 새 없이 몸을 놀렸다. 뭔가 잊은 게 있다는 생각을 해주셨다면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성심당에 가지 못했다.


임보처에서 나왔을 때 이미 저녁 식사 시간이었고, 금요일이라 대기시간이 특히 길 거라고 임보자님은 조언해 주셨다. 본점은 넓어서 덜 붐빌 것이지만 그곳까지는 다시 40분을 더 가야 했다. 진과 나는 서로 얼굴을 확인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성심당을 놓아주었다. 익숙한 포기.


대신 임보자님이 챙겨주신 커피와 빵을 양손에 들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깜박하고 있던 선물 빵이 또 있었다.


“오늘 빵 복이 터졌네. 성심당은 못 갔지만.”


사무실을 정리하며 진이 말했고, 내가 보탰다.


“우리는 고양이 복이 터졌지. 밥은 못 먹었지만.”


사무실을 나설 때는 어느새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한 우리는 와중에 굽고 끓이고 한 상을 차렸다. 외식을 줄이고 잘 챙겨 먹어야 해. 밤 11시에 저녁을 먹으면서도 우리가 요즘 되뇌는 말이다. 하얀 밥공기 앞에 앉아 된장찌개를 한술 뜨니 짧은 탄성이 절로 비어져 나왔다. 고된 일정 뒤에 마주 앉아 뜨끈한 것을 나누는 것만으로 하루가 괜찮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 마리 고양이는 오늘 평생 가족이 될지 모르는 사람을 얻었으니까.


그러니 성심당보다 중요한 성심당 가는 길 아니었을까. 고양이가 가족을 찾아가는 길이었고, 진과 내가 함께한 길이었으니까. 목적지도 좋지만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언제나 길 위에서니까. 어쩌면 이 모든 여정도 정안의 어느 아늑한 집을 향해, 우리가 밟아가는 길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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