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 년 전에, 아마도 싸이월드 시기였을까. 아무튼 고양이와 함께 살아본 적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일본의 길거리에서 고양이에게 간택당한 카메라맨의 사진을 본 기억이 있다. 6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작은 고양이가 촬영 중인 카메라맨의 어깨에 올라가 있었다. 고양이는 처음부터 자기 자리였다는 양 편안하게 올라탔고, 카메라맨은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바닥에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고양이에게 어깨를 내주고 있었다.
우리 사무실에도 어깨냥이가 두 마리 있었다. 미우와 벼리. 미우는 좋은 가족을 만나 남매인 솔트와 함께 동반입양 되었다. 벼리는 안아주려고 하면 그대로 가슴팍을 올라타고 어깨로 향하는 적극적인 어깨냥이다. 캣타워나 선반 위에 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점프해서 어깨로 직행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양쪽 어깨를 오가며 고루고루 냄새를 묻힌 뒤에 자리 잡고 앉아 집사의 귀에 얼굴을 비비면서 골골송을 읊는다. 상상하는 것보다 두 스푼 정도 더 사랑스럽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벼리는 형제인 아리, 하리, 보리, 그리고 엄마 고양이 가을이와 함께 진의 동네 하천에서 구조되었다. 당시 약 3개월령이었던 네 마리 새끼는 모두 눈과 호흡기 증세가 심한 상태였다. 아리는 즉시 한쪽 안구 적출을 해야 했고, 벼리는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왼쪽 눈 결막에 상흔이 남아 (사람이 보기에) 뿌옇게 되었다. 기능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어깨냥이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을 여러 로망 중 하나일 거다. <내 어깨 위 고양이, 밥> 같은 영화의 영향도 있었을까? 나락 인생이던 길거리 뮤지션 제임스가 전재산을 들여 상처 입은 길고양이 밥을 치료해 준 뒤 밥이 제임스를 따라다니며 버스킹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그러니까 처음에는 제임스가 밥을 살렸지만 그다음엔 밥이 제임스를 살렸다는 이야기.
나 역시 고양이가 올라 탄 카메라맨의 그 모습을 몽글한 소망처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고양이 발톱에 어깨 살점 찢겨나가기. 특히 올라타려고 할 때, 중심이 흔들려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꽉 붙잡을 때, 벼리는 자기 안에 잠재된 모든 날카로움을 발휘했다. 발톱이 승모근을 뚫고 뼛속까지 박히는 기분이라고, 우리 사무실 식구 셋은 모두 동의했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이 귀여움과 행복감으로 오롯이 찰 것만 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는 것 같다.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보호자의 몸이나 집안 살림에 새기는 흔적도 많고, 고양이에게 생길 위험이나 질병을 생각하다 보면 끝도 없이 마음 졸이게 되는 것 또한 그 삶의 뒷면이다. 보송보송한 앞발 안쪽에는 미처 깎지 못한 날카로운 발톱이 있고, 길바닥에 배를 내보이고 뒹구는 고양이는 언제나 로드킬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먹는 것, 노는 것, 교감하는 것 어느 면에서나 부족해 보여 미안한 마음을 밤마다 차곡차곡 접어야 하는 집사의 일상.
고대하던 벼리의 입양처가 결정되었다. 이전에도 몇 번 신청서가 오가고 상의를 했었는데 인연이 잘 되지 않다가 드디어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벼리의 입양처 이동에 진과 함께했다. 입양처에 아이를 내려주고 적응할 공간에 함께 앉아 인사를 나누는데 벼리가 혼자 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벼리가 그토록 사람 어깨에 올라탔던 이유. ‘떨어지고 싶지 않아서’ 아니었을까. 집사에게 꼭 붙어서 가는 곳마다 따라가고 싶은 마음. 하지만 못난 우리 집사들은 당장 해내야 될 일들을 하느라 몇 번이고 벼리를 달래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몇 달이나 반복되는 동안 벼리가 다가오는 빈도도 조금씩 줄었다. 멀리서 눈치를 보며 지금 가면 붙어있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동그란 얼굴. 애정으로 똘똘 뭉친 이 아이에게 그만큼 돌려주지 못한 시간들이 떠올라, 나는 사과의 말들로 작별인사를 대신해야 했다.
벼리야. 너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줄 분들을 만난 걸 축하해. 서로의 몸과 마음에 많은 것을 새겨주는 가족으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나도 멀리서 소원할게.
미안했고, 그보다 훨씬 고마웠단다. 내 어깨 위 고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