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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Feb 08. 2021

인간관계에도 정리가 필요해

컨텍트 미니멀리즘


친구가 재산이다.

진정한 친구가 많은 사람이 진짜 성공한 사람이다.


마치 인간관계의 양이 그 사람의 인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듯하는 말들이 있다. 어려서부터 이런 얘기를 참 많이도 들어서 그런지 나 역시 넓은 인간관계에 대한 막연한 열망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성향의 사람은 아니다. 굳이 나누자면 넓고 얕은 관계보다는 좁고 깊은 관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엄마는 어린 나에게 어차피 세상에는 나와 딱 맞는 사람은 없고, 어딘가 안 맞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니 친구는 가려서 사귀면 안 된다고, 두루두루 다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은 거라고 하신 적도 있다. 하지만 익숙한 나의 영역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게 불편하고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사람으로서 스트레스 속에서 나와 잘 맞지도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넓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럴 시간에 나랑 비교적 잘 맞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다져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 심지어 군대생활을 하면서도 진정한 관계라고 할 만한 인연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항상 새로운 사람과 함께 업무를 해야 하고 심지어 그들을 관리해야 하는 직업을 선택하고 보니, 더 이상 나의 성향으로는 그 일을 해나가기가 어려웠다. 관리를 해야 하는데, 내가 더 낯을 가리고 어색해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결심했다. 좁고 깊은 관계를 쌓아서 넓고 깊은 관계를 만들어보자. 그 후로 모든 직원들을 후배나 후임이 아니라 하나뿐인 친구처럼 생각했다. 더 많이 들어주고,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표정, 말투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다가갔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지만, 넓고 깊은 관계를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나의 성향을 변화시키는 것 같았다. 내가 먼저 다가가자 상대방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들은 업무적으로 좋은 직원이 되었고, 나에게는 좋은 인연이 되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휴대폰의 연락처와 카카오톡 친구는 1,200명이 넘었고 나는 이것을 재산이라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적으로는 헤어지는 일이 많았지만 수많은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고, 그 사실에 만족스럽기도 했다. 내가 결심했듯이 나는 넓고 깊은 관계를 가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중요한 점은 인간관계에도 마침이 있다는 것이다. 한 때는 각별한 사이였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의사가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관계는 끝이 난다. 매일같이 보는 사이가 아니라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안부를 묻는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안부를 묻기 위해서 손편지를 써야 하는 시대도 아니고 공중전화를 찾아다니며 전화를 걸어야 하는 시대도 아니라는 것이다.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찾기가 힘들고, SNS도 한두 개씩은 사용하기 마련이다. 댓글이나 '좋아요'로도 안부를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전화번호를 알지 못해도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누군가와의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이토록 쉬운 세상이지만 인간관계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새로운 관계로 인해, 환경의 변화로 인해, 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기존의 관계에 소홀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마음을 이길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마음만이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관계는 정리된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된다는 것이고 나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한 가지 놓친 것이 있다면 관계는 말 그대로 상호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어느 한쪽이 관계를 끝내는 경우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카카오톡 친구 목록과 대화목록을 훑어보았다. SNS의 친구 목록도 확인해보았다. 아직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오래되고, 소중한 인연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오로지 나의 연락으로만 유지되는 관계도 많았다. 나는 소중한 인연이라며 뿌듯해하고 오래도록 연락하며 지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내가 연락하지 않으면 영원히 연락하지 않을 것 같은 관계들. 그것을 과연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일방적인 관계에 대한 나의 착각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일 년에 한 번을 연락해도 반갑고 애틋한 사이가 있고, SNS에서 매일같이 사진을 봐도 남 같은 사이가 있다. 그래서 인간관계에도 정리가 필요하다. 단순하게 정리된 관계에서 계산적이지 않은 진심을 보여주기 쉬울 것 같다. 말 그대로 '컨텍트 미니멀리즘'. 단, 누군가와의 관계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본인 몫이다.  


난 요즘 휴대폰을 켜고 열심히 죽은 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은 잘 남겨두고 '넓고 깊은 관계'를 위해서 

나 자신에게 씌웠던 압박은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이것이 오히려 내가 소중한 인연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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