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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Oct 28. 2019

채워지지 않았던

잉어 밥 주기에 집작 하는 이유

지난주, 남원에 다녀왔다.

작년 4월에 이어서 두 번째로 다녀온 남원.

1박 2일의 여행의 목적지로 남원을 선택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작년에 다녀왔기 때문이고

남원이 작고 아담한 도시라 볼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한루와 그곳을 배경으로 한 <춘향전>이 90%인 도시.

그래서 오전엔 여기, 여기를 가고 오후에는 이동해서 저기를 갔다가... 식의

여행 계획이 필요 없는 곳.

관광이 아니라 휴식을 하기에 참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한루는 가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그윽한 정취가 멋진 곳인데

입구에서 걸어 들어가다 보면 나무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광한루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 남원에 막 도착한 느낌이랄까.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연못 위에 난간 없이 놓인 불안하기만 한 다리와 그 위에서 바라본 연못의 잉어들이다.

잉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한, 참치나 고래라고 해야 오히려 믿을만한 크기의 물고기들.

지난 4월에 남원에 왔을 때도 다리 위에서 잉어 밥을 줬었다.

연못 한편에 마련된 매점에서 판매하는 잉어 밥을 구입하면

종이컵에 든 잉어 밥을 주는데

잉어 밥을 던져주면 몰려드는 잉어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충격이다.

잉어들은 던져주는 밥에 익숙해져서인지 사람들이 근처로 오면

물 밖으로 입을 내밀고 빨리 밥을 던져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지금 생각해보니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광한루에 가서 잉어 밥을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광한루 가기'가 아니라 '광한루에서 잉어 밥 주기'가 

너무나 중요한 계획이었고, 반드시 수행해야 할 미션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첫째 날 들른 광한루의 매점은 굳게 닫혀있었다.

잉어 밥을 주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던 나로서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둘째 날 다시 광한루에 들러 잉어 밥을 주고서야

남원에 온 목적을 달성한 듯 마음이 후련했다.


왜 이렇게 잉어 밥을 주는 일에 집착했던 걸까.

잉어 밥을 주고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광한루에 앉아있다가 오래된 일 하나가 떠올랐다.

6살. 어린 시절.

맞벌이로 바빴던 엄마는 유치원 행사에 항상 참석하기가 어려웠다.

지금도 남아있는 유치원 소풍 사진을 보면 나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다.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율동을 따라 하기 위해 애쓰고 계시는 외할머니의 손을

6살의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잡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사진이 뭔가 슬프게 느껴진다.


한 번은 유치원에서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으로 견학을 간 적이 있었다.

그날도 엄마는 나와 함께 갈 수가 없었고, 견학에 따라가는 친구 어머니에게 나를 부탁하셨다.

독립기념관에 도착해서 걸어 들어가는 길에 연못을 건너는 큰 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 위에서는 잉어 밥을 줄 수 있었고 광한루처럼 잉어 밥을 파는 매점도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에게 잉어 밥을 한 봉지 사주셨다.

나도 잉어 밥이 너무나 주고 싶었지만 

친구 어머니에게 나를 부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주눅 들어있었다.

'저도 사주세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낯을 가리는 부끄럼쟁이. 말없는 조용한 아이.

그 아이가 그렇게 말하기까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고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정도로 잉어 밥이 주고 싶었나 보다.

이미 잉어 밥을 주고 있는 친구를 지나 쭈뼛쭈뼛 거리며 나도 사달라는 말을 했다.

친구 어머니에게 돌아온 대답은 친구에게 사준 잉어 밥을 나눠서 주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지 내 자식이 아니라서 혹은 돈이 아까워서는 아닐 것이다.

6살의 나는 울지 않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용기의 결과가 좌절이라서 일까. 

아니면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율동을 하거나 

친구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느꼈던 엄마의 빈자리 때문이었을까.

엄마의 빈자리가 나에게 주었던 기죽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친구와 잉어 밥을 나눠서 줬는지

잉어 밥을 나눠달라는 말도 못 하고 뒤에서 바라보기만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잉어 밥을 줬는지 안 줬는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그 서러운 마음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내 엄마가 아니라 친구의 어머니와 함께 갔던 견학에서

마음 놓고 떼를 쓰지도, 이것저것 사달라고 투정 부리지도 못했던 그 아이는

그렇게 어른이 되는 듯했지만

여전히 그 시절 속에서 주지 못했던 잉어 밥을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잉어 밥을 던져주며 그 서운했던 마음을 채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아이가 여전히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 허전함은 잉어 밥을 주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번에 나는 엄마와 함께 남원에 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잉어 밥을 사달라고 할 것이다.

잉어 밥을 사달라는 다 큰 아들의 모습에 엄마는 다소 의아하겠지만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비로소 채워지는 그 허전함 마음에 눈물 한 줌이 섞인 잉어 밥을 잘 던져줄 것이다.

눈물이 흘러나와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그제야 나는

내 엄마와 떠난 유치원 견학을,

엄마에게 사달라고 칭얼댔던 잉어 밥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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