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휘찬 May 18. 2021

새로운 부캐 만들기

오늘의 캐릭터를 골라봅니다

어린 시절에 누군가 장래희망을 물으면 되고 싶은 게 많았다. 그중에 내가 선택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으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선생님이 되겠다고 하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고 마치 토너먼트를 하듯이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 하나는 지워나가게 된다. 문과냐 이과냐부터 대학, 전공 그리고 직업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선택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선택에 매진하게 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매진해야만 한다. 죽기 살기로 해도 취업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부터 관련된 스펙을 쌓느라 정신이 없다. 작은 나라와 그에 따른 작은 시장, 적은 일자리 하지만 세계 최고라는 교육열과 과도한 경쟁사회의 분위기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일찌감치 정하고 그것에 올인하게 만든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준비를 한다고도 하니 도대체 얼마나 준비해야 만족할 수 있는 걸까. 나 역시 그런 사회에서 자랐다. 다행히도 우리 집의 치맛바람은 세지 않았고 부모님은 대부분 내가 원하는 것을 지지해주시는 편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의 경로를 정하는 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사실 그 선택은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서 임과 동시에 결국 내가 가진 가능성 하나를 버리는 것과 같았다. 따지고 보면 문과니, 이과니 하는 것도 우리의 편의를 위해 나눈 것일 뿐이지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을 가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시를 쓰는 수학자나 그림을 그리는 변호사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선택되지 않은 우리의 가능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그라들게 된다. 그리고 결국 불가능이 되고 만다. 포항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SF소설을 쓰는 김초엽 작가를 생각해보면 선택하지 않은 길이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나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아서 문과를 선택했지만 과학은 좋았다. 지구과학이나 화학을 더 좋아했다.(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과를 선택하면서 수학과 더불어 과학까지 잃게 되었다. 그리고 미술을 하게 되면서 문과의 대부분도 잃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나 스스로 그것들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와 잘 맞고, 내가 잘해나갈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가능성이 사라지는 건 아쉬운 일이다. 내가 선택하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게 아니라 저걸 선택할 걸'이라는 후회는 없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을 '더 이상 내가 할 수 없는 것'으로 단정지은 것은 아쉽다. 그 많은 것들은 분명히 '나도 할 수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무수히 사라진 가능성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이제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으로 더욱 증폭되어만 간다. 최근에 방송에서 다양한 부캐를 만드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이라는 생각이 '(본캐로)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라는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여러 가능성들 가운데 무언가를 본캐로 시작하기에는 당연히 너무 늦었고 위험부담도 크며 포기해야 할 것도, 그 가운데 포기할 수 없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할 수 없다며 아쉬워만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부캐로 시작한다면 훨씬 부담이 줄어들 것 같다. 내가 관심 있던 분야, 하고 싶었지만 포기했던 일, 이미 취미로 조금씩 해왔던 것들을 확장시켜서 부캐로 만든다면 또 다른 성취감을 느끼고 본캐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부캐가 되어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캐를 통해 수입까지 창출한다면 제2, 제3의 직업이 되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사라져 간 나의 가능성들을 다시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개의 보기 중에서 하나씩만 선택하는데 익숙해있다 보니 여러 개의 부캐를 갖는 것이 대단한 노력이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부캐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내가 가진 열정만큼 해나가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얼마 전까지는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작가가 아니라 전업작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 길은 너무 까마득했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제대로 작법에 대해서 배워본 적도 없으니 강의도 좀 들어야 될 것 같고, 그다음엔 머리를 싸매고 글을 써야 하고, 수 십 개의 글을 쓴다고 해도 신춘문예에 입선이라도 해야 등단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 텐데 입선을 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고 등단을 한다고 바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니 글로만 먹고살 수는 없을 것이고, 기약 없는 그 긴 시간 동안 무슨 수입으로 생활을 할 것이며.... 역시나 본캐로 시작하기에는 안될 이유가 너무 많았고,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유명한 작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본인의 직업을 따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작가라는 부캐를 갖겠다고 생각하니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브런치에 연습하듯 소소하게 글을 채워나가고 따로 글을 쓰면서 얼마든지 내가 만족하는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 관심과 열정에 따라 작가라는 부캐 말고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부캐, 무언가를 만드는 부캐 모두 나의 부캐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요즘 작곡에 대한 기초로 화성학을 배우고 있으니 그것도 조만간 부캐가 될지 모르겠다. 


유재석이 유산슬이 되고 지미유가 되고 유야호가 되었듯이 

나도 오늘은 브런치에 글을 쓰며 작가가 되어본다. 

그리고 내일은 어떤 캐릭터일지 

내가 만든 부캐 중에서 진지하게 골라본다. 

이전 04화 그동안 소외됐던 꿈은 없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