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에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잠에서 깼다. 일어나자마자 앱으로 날씨를 확인하고 창문을 열어 눈으로 다시 살펴보았다. 파닥파다다닥 세차게 나뭇가지와 잎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으니 멜버른 하면 바람이라는 말이 진심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새벽 귀가로 처리하지 못한 빨랫감을 세탁기에 돌리고 소파에 누웠다 깜박 잠이 들었다. 9시가 넘어 남편이 일어났고 둘이 주섬주섬 오늘의 일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잠시 뒤 2번이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1, 3번은 더 자도록 두고 셋이서 나가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호주가 커피와 브런치 문화가 발달했다는 말에 기대가 컸는데 드디어 경험하게 되어 제법 설렜다. 숙소 뒷골목이 온통 아침식사를 파는 카페와 가게들이 가득했다. 그림책에서나 볼 법한 솥에 수프를 파는 가게도 있고, 한식 메뉴를 파는 가게도 있었다. 길 한가운데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양 옆으로 가게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셋이서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앉으니 해당 가게의 점원이 메뉴판이 가져다주었다.
이때만 해도 이토록 여유 있는 브런치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몰랐다.
1인 1 메뉴와 음료를 주문했는데 한국과 비교하여 훨씬 푸짐한 양에 놀랐다. 이 정도 양이라면 물가대비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식사를 마쳤을 때 남긴 음식이 없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리 식구는 잘 먹는구나.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모든 게 만족스러웠던 아침이었다. 어느새 뜨거워진 햇살과 활기찬 거리풍경을 느끼며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왔다. 같이 브런치를 즐기지 못한 1번과 3번은 한인마트에서 산 컵밥으로 한 아침식사를 더 만족스러워했다.
오늘의 일정은 우리 맘대로 멜버른 시티 투어다. 오후에는 돌풍과 비예보가 있어 서둘러 숙소를 나왔다. 드라마로 유명해진 호시어 레인(Hosier Lane)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세인트 폴 대성당(St Paul's Cathedral)과 플린더스 스트리트 기차역(Flinders Street Railway station)으로 향했다. 끝없이 뜨거워지는 햇살도 피할 겸 성당 안으로 들어가 잠시 앉아 쉬었다. 성당 곳곳에 폭죽 장식과 한문들이 보여 낯설었다. 호주에 정말 많은 이주자가(특히 중화권) 있음을 실감케 했다. 나와서 바로 길 건너편에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역인 플린더스역이 있다. 옛 서울역을 떠올리는 외관이 고풍스러웠다. 내부도 들어가 기차가 어디 어디 가나 노선도와 함께 가격표를 살펴보았다.
그저 둘러보는 관광에 3번이 지쳐하는 모습이 보인다. 쳐진 기운을 올려줄 젤라토 집으로 향했다. 취향에 맞게 다섯 명이 다섯 가지 맛을 골라 맛보았다. 나는 수박소르베를 골랐는데 더운 날 시원한 게 내가 고른 맛이 제일 맛있었다.
오전의 마지막 코스는 시장이다! 트램을 타고 퀸 빅토리아 마켓(Queen Victoria Market)으로 이동했다. 트램 타는 재미가 쏠쏠하다(잘못 내려 한 정거장 걸었다).
식료품과 화훼, 농축산물, 기념품, 의류까지 파는 종합시장인데 6시에 열어 오후 3~4시면 영업을 끝내는 곳이라 벌써 문 닫은 매장들도 있었다. 축산물 코너에서 수제 소시지와 딱 바로 구워 먹을 수 있게 준비된 고기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고, 다양한 품종의 감자들과 처음 보는 채소와 꽃들이 신기한 것도 잠시였다. 정말 날이 너무 더웠다. 당일 맛볼 체리와 망고를 사서 숙소로 돌아가 쉬기로 결정했다.
도착하자마자 다들 침대와 소파에 벌렁 드러누웠다. 쉬면서 맛본 체리와 망고는 가격도 맛도 모두 합격이었다. 호주 과일 가격 정말 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