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편하게 쉬고 있는데 갑자기 날이 흐려지면서 비바람이 몰아쳤다. 세상에나 이렇게 딱 맞는 일기예보라니! 16시면 비가 그친다는 예보에 믿고 시간에 맞춰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Victoria)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도 역시 트램을 타고 이동했다.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은 호주 최초의 도서관이자 세계 최초의 무료 공공 도서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멜버른에 와서 꼭 가봐야 하는 필수 장소로 꼽힌다. 비가 와서인지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와 꿉꿉한 기운이 도서관 입구에 감돌았다. 레고로 만들어진 도서관을 구경하고 메인 홀로 들어서자 '와'하는 감탄이 나왔다. 높은 돔 천장과 고풍스러운 책상들, 원형으로 둘러싸인 서가가 흰 벽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비어있는 자리에 조심히 앉아 보았다. 천천히 책도 살펴보고 싶었지만 다 영문책이라 괜스레 꺼내 제목만 보고 다시 꽂아놓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이동해서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조심스레 이동한다고는 했지만 실제 도서관이용자들에게는 실례가 되었을 것 같아 미안했다. 너무 아름다워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도서관이 되어버릴까 괜한 염려도 되었다.
어느덧 비는 그쳤고 저녁식사로 캥거루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호주에서만 먹어 볼 수 있는 메뉴라 호기심과 기대감이 함께 했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마주한 캥거루 스테이크는 기대보다 훨씬 맛있었다. '담백한 소고기 같다'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인원수보다 많은 메뉴를 주문했지만 다들 배부르다는 말이 없었다. 아침의 브런치는 정말 푸짐했는데 식당마다 양이 다른 걸 가지고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숙소 들어가기 전에 간식을 사기로 약속을 하고 야라강(Yarra River)으로 향했다. 정비가 잘 된 산책로를 따로 일몰을 감상하며 걸었다. 강을 기준으로 우리가 둘러본 곳은 옛시가지 느낌이 가득했다면 남쪽은 더 높고 번쩍이는 고층건물들로 가득했다. 도시의 풍경과 반짝이는 강이 석양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구시렁거리던 아이들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한껏 걸었더니 배가 고파졌다. 야식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을 사기로 했다. 익숙한 한국식 치킨을 살까 하다 호주의 치킨은 어떨지 궁금해져 KFC로 향했다. 버거와 치킨을 들고 숙소로 돌아와 펼친 순간 눈을 의심했다. 영수증을 다시 살폈다. 치킨 1조각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너겟을 잘못 넣어준 아닐까 의심했지만 영수증을 보니 제대로 주문이 된 게 맞았다. 어쩐지 조각 당 가격이 너무 싸다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 돌아가 따질 수 없으니 있는 만큼만 먹기로 했다. 낮에 남긴 과일과 주스 등을 꺼내 함께 먹으니 배고픔은 가셨다.
다음날은 그레이트오션로드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정이 시작되니 모두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