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일정 중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날이었지만 야속하게도 비와 폭풍예보는 바뀌지 않았다. 바로 차를 빌려 블루마운틴으로 가는 날이었다.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를 찾기 위해 시내 외곽에 위치한 차량 사무실로 향했다. 워낙 운전을 잘하는 남편이지만 호주는 운전방향이 우리와 반대이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주에서도 우리는 카니발을 탔다. 5명이 여유 있게 가기에는 이보다 더 나은 차량이 없었다. 집에 있는 13살 된 카니발과 비교되는 신형이었다. 첫 번째 목적지인 시드니 동물원으로 향했다. 둘 다 정신 바짝 차리고 나는 네비를 보고 남편은 전방을 주시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시내에서 멀어지자 차량이 줄어들어 조금 여유가 생겼다.
9시 35분 시드니 동물원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한산했고, 비예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쨍쨍해서 기분이 좋았다. 입장하자마자 플랫화이트를 한잔 사서 마시고 동물들을 향해 출발했다. 문릿생츄어리에서 보지 못한 코알라를 만날 수 있었다. 하루에 20시간을 자는 녀석들 답게 꼼짝을 안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한 무리의 단체를 이끌고 오신 가이드 분이 코알라가 움직이는 것을 자기도 처음 본다며 여러분들은 운이 정말 좋다고 말해주셨다. 정말 운이 좋았던 걸까? 한 마리의 코알라가 몸 전체를 움직여 유칼리나뭇잎을 먹으러 이동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진귀한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저장해 놓았다.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시드니 동물원에서는 코알라를 직접 만져보는 건 할 수 없고 사진은 찍을 수 있다. 요금이 1인 기준이어서 생각보다 비싸구나 했는데 어린이들은 요금이 무료였다! 만 15세인 1번도 어린이로 인정되어 성인 두 명 요금만 내고 눈 감고 있는 코알라와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오전이라 그런지 코알라를 비롯해 여러 동물들이 활동하는 것도 볼 수 있었고 다양한 식물들도 함께 볼 수 있어 좋았다. 단체로 온 다른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며 출구로 향했지만 우리는 정말 맘껏 충분히 다 둘러보고 12시가 되어서야 동물원을 나왔다.
점심을 먹고 2시경 블루마운틴을 편하게 경험할 수 있는 시닉월드에 도착했다. 내부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었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한국어로 된 안내문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여유 있게 둘러보고 5시쯤 출발하려 했는데 리프트 마감이 3시 50분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총 3개의 탈것이 있는데 대기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원시림 속에 남겨지지 않으려면 최단코스로 이동해야 했다. 노랑, 빨강, 파랑 색으로 구분된 세 개의 탈 것이 있는데 먼저 노란 케이블카를 타고 협곡을 건넜다. 우리가 높이 있는 건지 발아래 펼쳐진 숲의 풍경이 신기했다. 다시 노랑이를 타고 돌아와 빨간색 기차를 타려 줄을 섰다. 산을 오르내리는 레일워크로 급격한 경사를 자랑한다고 했다. 줄을 서는 동안 구름이 몰려들더니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더니 뒤이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레인코트를 준비해 왔느냐며 직원이 물었다. '노오오오!'를 외치며 빨간 열차를 타고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갔다. 다행히 세차게 내리던 비는 짧고 굵게 한바탕 몰아치고선 그쳤다. 잘 정돈된 데크를 따라 숲을 잠시 즐기고 거의 마지막 시간에 맞춰 파랑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올라올 수 있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여기 한국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가이드도 자기 손님을 다 외우지 못하니 이리저리 따라 움직이다가 사람들이 휩쓸리다 섞이기 일쑤였다. 그러다 가이드를 놓쳐 시닉월드에 덩그러니 남겨진 한 가족을 보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잔뜩 흥분한 상태로 버스에 타지도 않았는데 가버리면 어떡하냐며 항의 전화를 하고 있었다. 화가 나기도 하고 낯선 곳에 자신들만 남겨졌다는 두려움에 울먹이시는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남편과 잠시 고민을 하는 사이 먼저 도와주겠노라 말을 건넨 한국분들이 계셨다.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한 미안함과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머리와 가슴에서 겹쳐졌다. 내가 저 입장이면 정말 멘붕이었을 것이다. 새삼 옆에 있는 남편이 무척 고마워 잠시 빤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