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ofs Oct 31.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3부 -9-

김전호는 김수필을 장기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치안감님 이쪽을 보시고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호호.

 연희는 동시에 3대의 커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오정훈의 긴장을 풀어주려 애섰다. 긴장하면 준비한 말도 잘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2시간 정도 녹화로 진행하기로 되어있었다. 인터뷰라고 했지만 방송에 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 공문은 보냈고 인터뷰는 성사되었지만 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방송국의 판단이다. 프로그램이 개편되었다, 방송시간이 변경됐다. 시의성에서밀렸다 등등 핑계는 여럿있다.  이번 인터뷰는 중요하다. 긴장감속에서 최대한 확인할 정보를 그의 말로 들어볼 필요가 있다.  연희는 이렇게 생각하며 집중하고 있었다.


야. 이거 화면으로 보기보다 훨씬 미인이십니다. 그는 뻔한 말을 연희에게 던졌다. 인터뷰를 앞두고 잘 보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호호, 아닙니다. 이제 저도 한직으로 물러날 것 같아서.

아니, 왜 연희기자와 같은 재원이. 어허 아쉽군요. 종종 뉴스를 보면서 오늘은 또 우리 경찰을 물 먹일까 그걸 찾고 있었는데.

정책관님 너무 많은 오해를 하고 계시네요.

둘은 간단한 대화로 어색함을 풀고 있었다. 연희는 오정훈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엽과 수원으로부터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제복을 입지 않았다면 전형적인 50대 중반의 동네 마트 아저씨로 보일 외모였다. 툭 튀어나온 이마와 튀어나온 아랫배 그리고 짧게 자른 머리의절반은 차지하고 있는 흰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약간 눈이 튀어나와 귀여운 인상이었고 코는 뭉툭한 모습이었다. 의지가 충만하거나 경찰 강력계에서 근무했다고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 외양이었다. 하지만 그 강력계에서 시작해 저 지위까지 올랐으니 보통 인물은 아닐것이다. 저 외모에 상상할 수 없는 광기를 숨기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오래전부터 마약관련 수사로 많은 성과를 거두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약수사에 집중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마약은 우리사회에 가장 심각한 문제 중 에 하나입니다. 지금도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요.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서 문제가 되는데요. 오래전 제가 대규모 공급 책을 잡아서 그게 화제가 된 적이 있지요.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말을 연희는 끊어내야 하는데  말이 너무 느려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김주영 경사사건 때를 말하는 듯 했다. 그게 성공적인 검거 작전이라고? 연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오정훈은 언론 인터뷰가 처음이라 잔뜩 긴장했다. 시간이 지나도 긴장이 잘 누그러지지 않았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처음부터 다시 할게요. 연희는 나름대로 농담도 해가며 상황을 부드럽게 풀어내려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생소한 분야인데요. 이번에 처음 신설된 정보화 정책 담당관이라는 직책에 대해서 우선 설명해주세요.

아네, 그는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았는지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 있었다. 카메라로 드러나는 그의 모습을 보는 보좌관이 실수라도 나올까봐 더 긴장하는 듯 했다.

에, 그 무엇이냐. 에헴. 범죄는 점점 첨단화를 달리고 있습니다. 경찰의 장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이지요.. 에헷. 그래서 경찰도 이에 맞춰 준비를 해야 하는 겁니다. 이 분야를 신설함으로서 경찰의 첨단 장비활용도가 늘어나고... 연희는 같은 말과 원론적인 말을 반복하는 그의 인터뷰를 듣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계속 질문을 이어나갔다.

정책관님, 그렇다면 이에 맞춰서 경찰의 훈련이나 특수한 임무를 위한 연구센터 같은 것도 계획 중이신가요. 갑자기 그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는 듯했다.

아 물론입니다. 저희는 선제적으로 범죄에 대응하고첨단장비를 실험하기 위해 파주에 R&d센터를 완공하고.. 연희는 앞을 보고 오정훈의 답변에 대한 보좌관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연희는 직감했다. 지금의 대답은 사전에 없는 것 이었다. 시설은 오정훈이 승진형태로 보직을 옮기고 신설된 것이 맞는 듯 했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전문 인력이나 특수한 임부를 위한 부대 말하자면 특임부대 같은 것도 예정되어 있으신지요. 각종 시위에 대한 국민들의 염려와 걱정이 너무 큰 상태이거든요. 시위는 점점 과격해지고 요즘은 밀수된 총기 사용도 빈번합니다. 이에 신무기와 정보화기기담당 정책관의 의견이 듣고 싶습니다.

아, 특수부대요? 물론이지요. 저희도 극비리에 특임부대를 조직하려 하고 있습니다. 아.. 그는 카메라 옆의 보좌관을  쳐다 보았다. 그는 재빨리 손으로 x자를 긋는듯 큰 움직임을 보였다.   

다시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빼주시는 것이..,

아 그렇군요. 뭔가 새로운 조직도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이 부분은 원하시면 빼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연희는 직감했다. 아직은 성급하지만 그는 마약과 관련된 경찰 정보와 검거를 총괄했고 누구보다 빠른 진급을 했다. 최근에는 정보화정책과 무기를 담당하는 자리로 영전했다고 평가받는 다. 오정훈은 여러 가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윗선에서 그를 방패막이 삼고 필요한 일을 손쉽게 처리하기 위해 자리에 올린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연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다시 원론적인 얘기를 반복했다. 경찰내부에서도 특수 훈련을 받은 새로운 특임부대를 창설한다는 목소리가 있어서 검토 중이다 등연희는 몇 가지 형식적인 질문을 더 던졌고 그는 예상 가능한 답변을 하는 것으로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오정훈은 긴장이 풀리자 연희를 보고 너스레를떨었다.

아, 연희기자님 이거 힘든 일이군요. 이런 것을 해본 적이 없어놔서. 정보화 담당 정책관이면 이제 이런 것도 신경 써야 할 것 같네요. 하하. 그는 멋쩍은 듯 웃었다.


아뇨. 잘하신 겁니다 시위가 점점 과격 폭력성이 늘어나고 총기까지 곧잘 등장하는 이 상황에 대해서 경찰들은 어떻게 대응할지. 입장은 무엇인지 알았기에 국민들은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론이 이제 좀 좋아지겠죠.

그렇겠죠? 경찰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국민들께서 회복하셨으면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을 마쳤다. 연희와 오정훈 그리고 경찰 몇 명은 인사를 했다.

 조만간 방송날짜를 잡아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연희는 그렇게 인터뷰를 마쳤다. 모두가 돌아가고 난 뒤에 연희는 정엽에게 전화를 걸었다. 인터뷰에서 물어볼 것을 확인했고 정황상 그가 정보화 담당 정책관으로 옮기고 R&D센터 건립과 승인이 났으며 경찰특수부대 설립과도 관련이 있을 듯 하다고 했다. 물론 보좌관이 그 부분을 끊어내서 원론적인 얘기만다시 인터뷰를 했다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으음.. 그렇단 말이지. 수원이는?

수원이 왜? 아직도 연락 없어? 너한테도? 둘은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수원이는 어떻게 된 것인가. 거의 만 하루가 지났는데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다. 정엽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수원의 파견업무는 서서히 마무리 되고 있는 중이었다며칠간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는 것은 바로 농가주택의 그 이상하고 기묘한 풍광이었다. 그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그 주택은 마치 르네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느껴졌다. 연차를 내고 일찍 퇴근해 수원은 그 집으로 향했다. 멀리 차를 대고 걸어서 집 근처로 이동했다. 큰 길에서 벗어나자  금방 어둠이 깔렸다. 가로등불빛이 멀리서 희미하게 도로와 집 부근을 비쳤다. 차에서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시간을 보니 오후 8시였다. 외각의 농가 이면도로는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았다. 정엽은 차에서 내려 잠깐 집 안을 확인했다. 차는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외출중이라는 의미였다.  밤에 누군가 들어올 수도 있다. 수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멀리서 집근처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차 한 대가 어둠을 뚫고 농가주택 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누군가 왔다’. 수원은 상황을 파악하고 차에서 내려 조심스레 농가 주택으로 조용히 이동했다.


 도로에는 잡풀은 늦가을이 되자 황토색으로 변했고 풀벌레 소리가 귓가를 뒤덮었다. 몸을 낮추고 집 근처에 도달했다. 담으로 이동해 집안을 들여다 보았다. 대문을 조심스레 밀었지만 잠겨 있었다. 담벽이 낮아 디딤대를 놓고 집안을 살펴보았다. 자갈이 깔리지 않은 마당에  잡초와 쓰레기가 널려 있었고 쓰레기 봉투가 눈에 띄었다. 무엇인가를 태웠는지 흔적이 간간히 보였다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누군가 나올 모양이었다. 수원은 황급히 몸을 숙였다. 한 노인이 구부정한 걸음걸이를 하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어? 수원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잘 못 판단했나?  그가 예상한 방향과 뭔가 다르게 일이 진행된다고 생각했다. 잠시 몸을 숨기고 그는 노인을 살펴보았다. 전형적인 시골노인이었다. 집회에서 참석해 뭔가 일을 벌이기에는 그는 나이가 너무 들어 보였다. 하지만 분명히 차량은 이 집근처로 들어갔다. 차량이 갑자기 없어질 수는 없다. 안에 누군가 있을까? 노인이 밖으로 나오려 하지 수원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거기 누구 있소?

노인은 뭔가 인기척이 느껴졌는지 소리를 질렀다. 눈치가 빠른 영감이네. 수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 후 노인이 헛기침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집안을 살펴보다 근처 이면도로로 나왔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든 확실한 물증이 없는 한 늦은 시간에 갑자기 집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저거 어떻게 처리해야하지 않겠소? 동식은 수원의 모습을 CCTV로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남조선 사회 안전성에서 나온 모양인데. 우리의 은신처가 들킨 것 같소만. 보통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한두 번 더 올 거요. 근데 여길 어떻게 알아냈지?

당장 연락이 닿는 조선족이 있나? 석철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철용이가 될 거 같기는 한데.

없애면 번거로워 질 수 있으니 사고로 위장해서 당분간 병원에 누워있도록 하자. 새로운 은신처를 구할 때까지. 남조선의 새로운 총통 취임까지 이제 몇 달 남지 않았어. 동식은 철용에게 전화를 걸었다. 위치를 설명해 주고 차량번호와 차량을 알려주었다. 외각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수원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김포 외각에서 나와 서울로 돌아오는 입구 48번 국도에 들어섰다. 신호등이 커졌고 그는 잠시 정차했다. 저 노인은 누구일까. 분명 저 집은 김수필의 소유인데 그럼 친척일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관리자? 그 코란도 웨건 차량은 그 쪽으로 들어갔는데 차량은 왜 없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도중에 부동산에서  필지 설명을 하면서 보여준 도면이 생각났다.

아. ......

 수원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비명을 질렀다. 저 집은 두 채였다. 뒤에 비닐 하우스와 또 다른 집을 합쳐서 쓰고 있다고 부동산 주인이 말한 것이 생각났다. 이 농가주택은 택지가 넓다고 했다. 차량은 그 집으로 들어간 것이 맞다. 당연히 CCTV가 설치돼 있을 수도 있다. 노인은 나를 확인하러 온 것이다. 수원이 막 도로로 진입하려는 순간 저 멀리 반대편 차선에서 포터 트럭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호는 막 바뀌었다. 수원이 차량을 출발시켜 교차로에 들어서자 트럭은 수원의 차량을 덮쳤다. 차량 앞 범퍼에 트럭이 부딪히자 수원의 승용차는 왼쪽으로 돌다 멈춰 섰다. 쿠쿵하는 소리와 함께 트럭의 불빛을 본 순간 수원은 의식을 잃었다. 그 집을 수색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25

 오정훈은 치안감 승진 후 평온한 나날을 이어갔다. 김판수로부터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익으로 주변을 관리했으며 주기적으로 자금을 만들어 윗선으로 올려 보냈다. 그의 비호 아래 김판수는 어느덧 국내 마약 시장의 거물이 되어 있었다. 국내에 유통되는 물량의 절반 이상은 그의 손을 거쳤다. 이 과정에는 오정훈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어느새 카르텔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개성으로부터 들어오는 물량이 싼 값에 시장에 풀렸고 각종 마약성 진통제 처방이 늘어나며 마약과 진통제 시장은 더욱 커져갔다. 김판수는 욕심을 부렸다. 알게 모르게 해외에서도 물량을 들어와 판매를 하기도 했으며 불법 무기와 사채시장까지 손을 뻗고 있었다. 그 과정을 오정훈이 모를리 없었다. 오정훈은 공공안전과 형사부를 담당하고 있는 실세이기도 했다. 마약 사건과 관련된 부분은 모두 그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오정훈과 김판수도 이제는 서로가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 것이다. 그들도 서로 이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북한의 급박한 정세변화가 있던 시기에 오정훈은 김전호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오정훈은 김전호의 비호와 도움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날 오정훈은 김전호를 만나러 용산으로 향했다. 남산의 붉은 석조 벽돌 건물에 아이비와 덩굴이 어느덧 갈색으로 변하는 늦가을 무렵이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오정훈은 김전호의 집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고개를 깍듯이 숙였다.

몇 가지 얘기할게 있어서 불렀네. 김전호는 낮은 목소리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네가 데리고 있었던 김판수라는 놈 말이야. 이제는 좀 정리가 돼야 하지 않아. 아무래도 머리가 좀 굵어지면 이제 관리가 잘 안될 거 같은데. 불법적인 일을 계속 벌이는 것 같아. 네 선에서 처리를 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알고 있나?

네 알고는 있습니다.

그놈한테 책잡힐 일 없었겠지? 그럼 일이 골치 아파지니까 잘 해결해야 할 거야. 오래전 너한테 몰래 비위 감찰이 들어갔을 때 말야. 너를 처분해야 하는지 아닌지 고민했지. 다른 팀에서 냄새를 맡고 한명이 잠입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때 그 죽은 경찰의 아들이 네놈의 뒤를 캐고 다닌다는 것은 알고 있나?


 네? 오정훈은 깜짝 놀랐다. 그런 것은 아직……

그래서 내가 자네를 좀 못 믿어 하는 거야.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고 어느 놈이 뒤를 캐는지 그런 것 쯤은 봐두는 게 좋지 않겠어? 일일이 다 내가 그걸 알려줘야 하나? 김전호는 혀를 차며 뒤돌아 오정훈을 쳐다보았다. 그가 뒤돌아서자 날카로운 금속 안경에 빛이 반사됐다. 빛때문에 그의 눈빛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자, 그리고 김판수를 처리하면 다음은 어떻게 할 거야? 뭔가 다음 플랜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판매대금과 자금 확보는 어떻게 할 거냐는 거지. 거기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지. 생각해 본 게 있나? 밑에 놈을 올리면 어때? 그놈도 쓰고 버리면 될 것 같은데. 사실 오정훈은 그 이후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자 김전호가 말을 꺼냈다.

아무튼 대안을 마련해와. 어떻게 할 것인지. 나가봐. 오정훈은 아무 말 없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김전호는 오정훈이 탐탁지 않았다. 검사로 있던 시절부터 15년 이상을 알고 지낸 사이었지만  뭔가 신뢰를 주지 못했다. 검사로 있을 때 수사에 도움을 주고 총통의 정적과 반대파 제거를 위해 그를 활용했을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비위를 파악해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지시에도 잘 따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정무적 감각을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가끔은 일처리에서도 빈틈을 보인다. 김판수와 관련해서도 판단을 내려 자신에게 보고해 주기를 바랐지만 오정훈은 그의 의중을 간파하지 못했다.  


 김전호는 며칠 전 만났던 김수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오히려 김수필을 장기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필은 김판수에 대한 처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김전호에게 흘렸다. 김수필은 종종 진행되는 사업에 대해 보고 했다. 김수필의 업무능력에 대한 평가는 나름대로 만족할만했다. 그가 스스로 영업을 통해 얻어낸 성과와 보수에 대한 부분도 계약조건대로 처리가 되었다. 김수필은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부터 이 집단과 권력은 성과를 인정해 준다는 나름대로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공단 제약회사의 대표로 회사의 기밀을 유지하고 업무 성과를 보여준 것도 나쁘지 않았다.   


김판수가 점점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듯 합니다. 점점 제 멋대로 굴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김병철이 개성통행을 제한해 물량을 공급하지 못하자 외국 쪽 루트를 알아보고 있는 듯 했습니다. 김판수는 자리에 앉아 깍듯하게 자신에게 상황을 정리하고 판단을 구했다.

김판수를 처리하면 대안은 있나?

김성호가 야망이 있어 보였습니다. 아마 대안이 될 수 있겠죠. 생각해 볼만 합니다. 아마도 자신이 조직을 먹는다고 하면 그의 입장에서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 될 테니까요. 둘의 관계는 느슨합니다.

김전호는 이런 김수필의 판단능력이 나름 쓸모 있다고 여겼다. 그는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을 자신에게 남겨 놓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못믿어운 구석이 있다. 김전호는 김수필을 마지막으로 테스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정해서 알려주지. 김전호가 말을 마치자마자 김수필은 자리에서 나갔다.



이전 29화 [장편소설] 붉은 눈 3부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