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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oofs Oct 30.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3부 -8-

나는 말이요. 당신들이 있었던 그 연구시설을 없애 버리고 싶소.

24

 석철과 동식 그리고 다른 인원들은 개성에서 종종 전투에 참여했다. 개성 방어선 구축에 김병철은 전력을 다했다.  개성과 평양세력 모두 국제적 비난과 대량살상무기 활용에 대한 우려로 적극적 공세는 취하지 못했다. 김병철의 입장에서는 시간을 번 것이다. 피해는 주민들이 몫이었다. 농가주택과 도로가 전투로 피해를 입거나 시가지 전투로 복구되었던 건물이  손상을 입는 등의 과정이 반복됐다. 전투가 없는 날 김병철의 5군단 인원들은 대민지원을 나갈 때도 있었다. 석철과 동식은 개성주민들을 위해 쉼 없이 일했다.  그들의 지구력과 체력은 아직 주민들에게 화제의 대상이었다. 힘든 작업을 하는 날에는 눈의 혈관이 터져 붉게 빛났다. 근육의 과도한 사용으로 피부에서도 붉은색 땀이 흘러내렸다.  김수필이 생산한 마약을 이들은 지속적으로 남측으로 내려 보내는 작업도 진행됐다. 남측의 정보원 청화수로부터 연락이 올 때는 물건을 배송하고 남측의 집회와 시위에 종종 참여했다.


 석철과 동식은 대민지원을 끝내고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장마당에 들러서 저녁을 먹으려 하고 있었다. 공단공사는 쉼 없이 진행되고 확장과 복구가 진행중이었다.  몇 년에 걸친 확장공사는 거의 마무리 단계로 이어졌다. 가끔 일어나는 국지전에도 불구하고. 휴전선이 그랬던 것처럼, 주민들은 공단을 둘러싼 그 모든 상황을 체제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개성일대에서 벌어지는 국지전도 마찬가지였다. 작업이 끝난 저녁 장마당은 활기를 띄고 있었다. 여러 나라에 온 노동자들은 취향에 맞는 음식을 찾아 먹기 바빴다. 최근 장마당 노천 식당에는 전에 보지 못한 음식들이 펼쳐졌다. 돼지고기부터 닭튀김 만두와 국수 등도 심심찮게 볼 수있었다. 몇몇 주민은 직접 재배한 채소를 가져와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려는순간 익숙한 모습의 한 사람이 밥을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소. 동식이 손으로 좌측 좌판을 가리켰다. 석철은 고개를 돌려 왼쪽 구석에 앉아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는 약한 금색과 흰색이 감돌았다.

아. 마르크 박사 아냐? 이들은 서로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몇 년이 지났지만 이들은 그가 마르크 박사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약간 혼혈의 모습이 도는 높은 코를 가진 마르크 박사가 맞았다. 그는 허름한 인민복을 입고 앉아서 초점 풀린 눈으로 음식을 집어 먹고 있었다.

아니 저게 어떻게 된 거지. 혹시 연구소에 쫓겨났나?그럴 리는 없을 테고. 그동안 이들도 연구소 소식을 듣지는 못하고 있었다. 석철과 동식은 아는 체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르크 쪽으로 걸어가 그의 앞에 섰다. 여전히 마르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씹고 있는 듯 했다. 석철은 누군가 다가와도 아무런 반응 없이 멍하게 앞을 보는 표정에서 열정에 넘치던 그 사람이 맞나? 하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박사? 우리를 기억하오? 석철이 말을 꺼냈다. 마르크는 잠깐 그를 처다 보더니 흥미가 없다는 듯 다시 먹는 일에 집중했다.


우리를 모르겠소? 동식이 거들었다. 마르크는 앞을 지긋이 처다 보며 말을 꺼냈다.

삼일 째요. 여기를 돌아 다닌 게. 그런데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소.

박사 무슨 말이요? 우리를 알아보겠냐고 물었소. 박사는 그들의 말을 듣는 지 마는지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얘기를 계속했다.

공단에서 나와 장마당에 들렀다가 들어가는 길이었소. 근처에서 폭탄이 터져 거의 죽은 목숨이었소. 시체 처리하는 곳에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깨어났는데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었소.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다행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 집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살 수 있었지. 그의 딸을 치료해주면서 기억이 돌아왔소.

여기저기를 떠돌았지. 돌아오는 길에 그 집에 들렀는데 나를 도와준 사람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어머니는 인사불성이 됐소. 그의 아버지에게 딸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했고. 선화는 어디 있는지 물었는데 자신을 찾으러 개성 장마당으로 간다고 했는데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소. 여기를 뒤진 지 며칠째요. 주변에 물었더니 사창가근처에서 비슷하게 생긴 아이를 봤다고는 하는데 아직 찾지 못했소. 석철은 박사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잠은 좀 잔 게요? 며칠째 이러고 있는 거 같은데 일단 우리와 같이 갑시다. 가서 좀 쉬어야해. 석철과 동식은 박사를 부축했다. 그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는 듯 했다. 마르크는 자신이 본 것을 이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어떤 것인지 아오? 돈이면 사람의 목숨도 사고 팔지. 돈은 그 어떤 것도 다 집어 삼키오. 그게 무엇이든 간에. 개성은 이제 그게 시작인 것이요. 사창가를 뒤지자 나이어린아이들이 많았소. 밤이 되고 불이 켜지면 사람들이 몰려들어오지. 밤거리에 붉은 전구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호객행위가 시작되오. 나도 안으로 들어갔소. 퀴퀴한 냄새가 나고 중학생쯤 돼 보이는 앳된 여러 아이들은 이미 약에 취해 있었소. 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을 애들에게 투입한 놈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그 짓을 한 거요.물어보니 인신매매도 빈번하다는 게요. 이 생지옥을만드는데 나도 일조한 것 같소. 아무리 봐도 그 물건은 내가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더군. 나는 몇 군 데를 돌아봤소. 관리자로 보이는 놈들이 나를 보자마자 말했소. 쓸데없는 짓 할 거면 물러나라고 죽고 싶지 않으면. 실랑이와 몸싸움도 벌였지. 칼을 들고 나를 위협하기도 했지. 여기는 시간이 돈이니. 나는 매번 돈을 내고 근처를 뒤졌고. 하지만 선화는 보이지 않았소. 나는 선화를 찾아야 하오.


 석철과 동식은 마르크를 부축해 일단 근처의 숙소로 데려가 몸을 뉘웠다.    

형님 어떻게 할 거요. 이대로 박사를 놔두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우리가 도움을 좀 줘야 하지 않겠소.

박사가 말하는 곳은 어디냐? 석철은 그러고 보니 외각의 홍등가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내일 박사와 같이 그곳을 한번 뒤져봐야겠어. 누가 관리하나 저기는?

아마도 전직 보위부 간부나 사회 안전성의 누군가가 봐주고 있겠지. 찾는 사람이 있으니 만들어 졌을 거요. 나도 한번 알아보리다. 일단 박사는 잠 들었으니 내일 다시 와서 같이 찾아보도록 하던가 하자. 저기 관리하는 자들도 뒷배가 있지 않을까. 다음날 저녁 석철과 동식은 다시 장마당을 찾았다. 마르크 박사는 예상대로 자판근처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마르크는 이들을 힐끗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몸은 어떤가? 마르크는 처음으로 이들에게 말을 꺼냈다.

평상시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야. 펜타닐의 중독성만 참으면 돼. 흥분제와 진정제로 성분의 효과를 눌러놓았으니 조심해야하고 근육은 운동으로 계속 만들어 놓아야 몸이 항상성을 유지해. 눈에 수포가 터져 붉게 변할 때 갑자기 활동을 늘리면 쇼크 상태가 올수 있으니 조심해야해.

박사의 말투가 돌아온 것 보니 그래도 다행이요. 석철은 박사 옆에 앉아 있었다. 이들은 오늘 군복을 입고 오지 않았다.

어제는 군복을 입은 듯 했는데 다시 군으로 돌아간 것인가? 마르크가 물었다.

사령관의 호위업무와 여러 작전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소. 저들은 우리의 능력을 잘 써먹고 있는 것이지. 서편으로 곧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같이 찾아봅시다. 박사에 대한 은혜는 갚아야지. 김수필한테 꼭 복수를 해줄 것이고. 동식이 옆에서 거들었다.

부탁이 하나 있소. 마지막부탁이 될 거요.

말해보시오.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들어주겠소. 석철이 말했다.

나는 말이요. 당신들이 있었던 그 연구시설을 없애 버리고 싶소. 남한 정부에서 내가 만든 데이터를 가지고 실험을 시작할 것이고 당신과 똑같은 능력을 가진 부대원들을 양성할 것이요. 그들은 당연히 그렇게 할 거요. 공단에 사람이 더 늘어난다면 약의 생산을 더 늘릴 것이고 일부는 또 이곳으로 흘러들어오겠지. 내 연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지 이런 부작용은 생각하지 못했소. 석철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폭탄으로 아예 건물자체를 없애버리고 싶은데 어느 정도가 필요한지 모르겠어. 구해줄 수 있겠소? 마르크가 물었다.

외각에 무장해제하고 남은 시설에 일부가 있을 것이요. 그거면 충분할거 같은데. 내가 군에서 폭파 특기였소. 그럼 좀 기다려 보시오. 그 시설은 없애는 게 낫소. 그 약도 이쪽으로 너무 많이 흘러들어오고 있소. 이제는 그만해야 할 때요. 김수필이 일정량을 넘겨 물량을 대량으로 팔아대는것을 알고 있소. 어느덧 노을이 지나고 어둠이 밀려들고 있었다. 장마당의 전구가 들어오고 불은 주기적으로 깜빡거리고 있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 봅시다. 석철은 마르크를 부축하고 사창가 쪽으로 움직였다. 장마당을 가로질러 북쪽 외각으로 500미터쯤 걸어 나가자 근처에 천막이 늘어선 곳이 보였다. 여러 명의 남자들이 자기들끼리 떠들며 마르크 일행과 앞서거니 하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석철이 뒤를 돌아보니 대 여섯 명이 무리를 지어 뒤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텐트촌 초입에서 이들은 저 멀리 대 여섯 명의 무리들이 천막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기보이는 저들이 이곳을 지키는 경비요. 돈도 받지 계산부터 해야 할 거요. 마르크가 말했다.

굳이 돈은 필요 없소. 석철은 성큼성큼 걸어가 천막을 뒤지기 시작했다. 한 50채가 되는 것 같은데 가급적 오늘 다 확인하고 그 애를 찾아 데려가시오. 텐트촌 가장 끝자리에서 두 명이 걸어와 마르크와 석철 앞에 섰다.

이건 뭐하는 쓰레기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와서 영업을 방해하지? 니들 목숨이 여러 개인가?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를 한 찢어진 듯 한 작은 눈을 가진 사내가 상대를 무시하는 말투로 말을 꺼냈다. 이후 이들을 노려보았다. 양옆으로 살짝 올라간 입 꼬리는 살짝 비웃음을 띄고 있었다. 왼쪽 얼굴의 상처가 그의 인상을 한층 차갑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니가 여기 책임자인가? 석철이 건조하게 말했다.

책임자든 아니든 너는 뭐인데? 그는 석철에게 다가왔다. 소란이 나자 주변이 조용해졌다. 다들 마르크 일행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니들이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찾을 사람이 있다. 석철은 짧게 대답했다.

햐, 이거 정말 뭐 이런 개뼈다귀 같은 게 있어. 너 여기가 누구 소관인지 알고 이 짓거리를 하나? 석철의 눈 주위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울고 있나? 눈이 벌 건데. 이거 미친놈 같은데 빨리 처리하자우. 그가 석철의 몸에 손을 대자 석철의 몸은 순간적으로 반응했다. 손을 뿌리쳐 밀어버리자 상대방의 몸은 왼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석철의 순간적인 몸놀림에 놀라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소란이 일자 나머지 인원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다른 사내가 나섰다.

이거 뭐하는 놈들이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석철은 성큼성큼 무리 앞으로 걸어갔다. 한손으로 몰려온 한 사내의 어께를 잡았다.

아악, 그가 어께를 잡히자 크게 비명을 질렀다.

여기서 힘을 주면 네 어께 근육이 부러질 거다. 세 달간은 움직이지 못하겠지. 석철이 다른 쪽 사내를 노려보자 누군가 칼을 빼 들었다. 그는 칼을 좌우로 휘두르며 석철에게 다가왔다. 석철의 복부를 노렸다. 석철은 천막 부목으로 쓰이던 각목을 집어 들었다.

칼을 뺀다는 것은 나를 죽여도 좋다는 소리다. 그것만 알고 있으라. 석철은 그렇게 말했다.


잠시 대치가 이어지고 사내가 칼로 석철의 왼쪽을 노리자 석철은 각목으로 칼을 튕겨 냈다. 곧바로 석철이 사내의 손목을 치자 칼이 떨어져 나갔다. 순간적으로 사내의 앞으로 석철은 움직여 그의 목을 움켜 쥐었다. 목을 잡힌 사내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석철이 손에 힘을 주자 그는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피가 통하지 않는지얼굴색이 하얗게 변했고 곧 검은 빛이 돌았다.


여기서 힘을 더 주면 근육이 부러지겠지. 너희들 처리하는 것은 일도 아냐. 여기 뒷배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오늘 온 자들이 김병철 사령관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해라. 그럼 아무 말 못할 거다. 그는 손에 힘을 풀고 그를 던지듯이 밀어버렸다. 석철이 두 명을 처리하자 나머지 인원은 더 이상  달려들지 못했다.

 박사를 도와 아이를 찾아. 석철은 동식에게 말했다. 동식은 마르크를 부축해 천막을 돌아다녔다. 나머지 사내들이 그를 보고 붉은 눈이라고 수근 대는 것 같았다. 사방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우리는 아이만 찾으면 갈 것이다. 더 이상 귀찮게 한다면 이번에는 숨통을 끊어 놓을 테니 그리 알고 있으라. 석철은 통보하듯 말했다.

형님 찾았소. 여기에 있소. 동식이 소리쳤다. 잠시후마르크는 한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축처진 몸으로 억지로 몸을 일으켜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마르크는 꿰맨 상처를 보고 그 아이가 선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약에 취했는지 선화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자 사지는 더욱 힘없이 늘어졌다. 눈의 초점도 없어보였다. 동식은 선화를 들춰 업어 사창가 밖으로 나왔다. 이들은 시내 쪽으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해 선화를 눕히고 이들은 자리에 앉았다.


아이를 데리고 내일 아침에 움직이시오. 석철은 마르크에게 손 전화를 건내 주었다.

며칠 전 구했소. 박사한테 드리겠소. 준비가 되면 내가 박사에게 전화를 할 거요. 아마 이삼일 걸릴 테고 그때 같이 움직이면 되오.

폭탄은 무장해제가 되지 않은 21부대 쪽에 있을 거요. 동식이 말했다. 그거 날려버립시다.

동식이와 내가 같이 움직 일테니 박사도 그때 일을 도와주면 될 것이요.

아, 연구시설에서 내가 빼올게 하나 있소. 마르크가 말했다.

그러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그건 그때 봐서 생각해 봅시다. 석철과 동식은 그 말을 마치고 마르크가 묵고 있는 숙소를 나와 부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너무 위험한 거 아뇨? 사령관과 부관이 알게 되면 곤란해 질수도 있는데.

모르게 하면 되지. 설사 알게 되더라도 당분간 우리를 죽이지는 못 할 거야. 아직 써먹을게 많을 테니. 밤거리의 공기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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