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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페르소나 논 그라타 2부 -9-

진실이라고 불릴만한 게 있습니까?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가진 기준으로

by proo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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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민의 회사는 선릉역 벤처 스트리밍 빌딩 12층이었다. 다양한 벤처그룹이 그 빌딩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엔젤 메카닉스>는 부침을 겪었지만 국내로봇기업에 부품을 납품하고 자체제작 로봇도 개발하고 있는 유니콘 기업이었다. 벤처기업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투자금 확보였다. 수익이 나기까지의 지난한 기간 동안 기업은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다. 수익이 나기까지 첫 5년을 넘기는 벤처기업은 30%도 되지 못한다. 안승민은 자신을 갈아 넣다시피 해서 죽음의 협곡을 건넜다. 현민은 언론인터뷰를 살펴보았다. 홍보용 기사임이 분명했지만 안승민이 고생한 부분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안승민이 <엔젤 메카닉스> 대표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적잖이 놀랐다. 짧은 시간 놀라운 성과를 냈고 기술력 자체도 인정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민은 사전에 홍보팀과 약속을 잡고 사무실로 향했다. 비서는 대표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홍보공간에는 회사의 연혁이 대형사진으로 걸려있었다. 내부공간을 지나며 만난 직원들의 얼굴은 나쁘지 않았다. 상장을 앞두고 있는 기업답게 활기가 느껴졌다.


본사는 대전에 있는 모양이었고 안승민은 서울 사무소로 불리는 곳으로 번갈아 출근한다고 했다. <엔젤 메카닉스> 서울사무소에는 기업부설연구소가 있다. 대표실 입구에로 들어가자 회사에서 만든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양한 휴먼형 로봇과 제어시스템 등이 보였다. 회사가 추구하는 비전은 사람과 가장 가까운 즉, 휴머 노이드였다. ‘사람과 로봇은 차이가 없다’ 회사의 홍보문구였다. 문 앞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손목관절이 눈에 들어왔다. 그 관절은 작은 칩을 들고 있었다. <터미네이터> 속 T-800을 보는 듯 했다. 미래를 만드는 기업이라는 로고가 독특했다. 대표가 기타를 좋아하는지 또 다른 휴먼형 로봇은 전자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동영상속 로봇의 손 놀림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우리의 기술은 뛰어나다. 로봇도 제어시스템을 통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그 기술력을 보여주려는 의도처럼 느껴졌다.


―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좀 늦었네요.

안승민은 자유분방한 옷차림이었다. 최첨단 유니콘 벤처 기업 대표로서 의외의 모습이었다. 깔끔한 슈트를 입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검은 안경을 끼고 있었고 긴 머리를 살짝 묶었다. 얼핏보면 화가나 사진작가 같은 모습이었다. 긴 머리는 펌을 한 듯 자연스러웠다. 이국적인 그의 외모와 잘 어울렸다. 한편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공학도와 같은 느낌도 주었다. 안승민은 음악에도 조회가 깊은 듯 했다. 인터뷰 내용 중 고등학교 시절 밴드부를 했고 기타연주도 수준급이라는 것이다. 가끔 공연을 즐긴다고도 했다. 회사 경영과 관련된 스트레스를 연주로 날려 버린다는 멘트가 기억에 남았다. 대표실에 그가 기타를 치는 모습과 연주를 하는 사진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 기타연주에도 조회가 깊다고 들었습니다. 현민이 딱딱한 분위기를 조율했다.

― 아닙니다. 그 정도까지는. 그냥 아마추어죠.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취미라서요. 홍보팀의 말을 들어보니 NBS 시사 프로그램 쪽이라고 하던데. 어떤 부분을 취재하시려 하는 것인지. 설마 부정적인 내용을 확인하러 오신 것은 아니겠죠? 하하. 저희 곧 상장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는 농담 삼아 가볍게 웃었다. 현민은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인터뷰 질문도 전달된 것이 없고 촬영팀도 함께 오지 않아 안승민도 이상하다는 눈치를 챘을 지도 모른다. 그와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최근 벤처기업의 동향이라든가. 앞으로의 신기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자 승민은 놀라는 눈치였다. 안승민은 달변이었다. 막힘없이 자신의 사업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자신이 기업을 살리기 위해 마치 독극물이라도 퍼먹을 수 있을 듯 비장한 표정도 가끔 지었다.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해 그는 무슨 일이라도 했을 법 했다.


― 기자님 관련분야에 대한 지식이 상당하시네요. 저희가 개발하는 웨어러블 로봇은 현재 가장 가깝게 인간의 손동작을 모방하고 있습니다. 힘의 전달방식에 따라 인체가 착용하는 웨어러블 로봇은 몇 가지로 구분이 됩니다. 힘의 출력에 비해 하중을 가장 줄일 수 있는 방법과 동작개발이 핵심인 것이죠. 굽힘힘줄(flexor tendon)의 FDP와 FDS를 함께 당겨 손가락 끝에도 힘이 전달되게 해 심지굴근 인대(FDP)만 당겼을 때 보다 물건을 잘 잡도록 있는 겁니다.

― 웨어러블 로봇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기도 한데 손으로 물체를 쥘 때 진화적으로 근 골격과 장력의 힘 조율로 자신의 팔을 움직이는 것처럼 쥐고 사용할 수 있죠. 이 기술에 대한 특허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는 진열장의 제품을 들어 어께와 팔목에 지지대를 부착하듯 착용했다. 착용도 쉽고 몇 배의 근력을 낼 수 있죠. 보통 3배에서 4배까지 자신의 근력을 확장해서 사용가능합니다. 터미네이터의 t800 같아 보이죠? 그는 웃으며 자랑스럽다는 듯 말했다. 현민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 저희는 인체 근 골격 시뮬레이션을 수없이 반복했고 로봇이 인체에 무리가가지 않으면서도 최적의 토크를 통해 자연스레 효율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제품을 착용하면 근력이 약한 여자도 자신의 근력의 몇 배를 낼 수 있죠. 제품개발과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막대한 연구자금과 시행착오가 반복됐습니다. 사용자의 팔에 부착이 가능할 정도로 가볍죠. 이 부분이 저희의 핵심기술입니다.


― 아. 죄송합니다. 설명을 하던 습관이 있어서. 저 혼자 떠들었군요.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현민은 가볍게 웃었다.

― 매력적입니다. 연구가 더 되면 팔과 다리 등 인체의 모든 부분에 적용할 수 있겠네요. 참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의 손동작은 가장 효율적으로 진화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계와 웨어러블 로봇도 그 시스템을 모방하려 하니까요.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인체의 손동작과 약력은 힘을 적절하게 분배하고 관절에 큰 무리가 가지 않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수 십만년 이뤄진 진화의 정점으로 볼 수 있죠. 안승민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 사업을 진행하며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어떤 부분이었습니까. 자금 확보는 어떻게 하셨는지. 막대한 투자금과 운영자금을 만드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 매 해가 고비였습니다. 정책자금과 엔젤 투자자와 중기청, 신보 등 끌어 쓸 수 있는 자금은 모조리 동원했죠. 그때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마지막 고비가 1년전 이었습니다. 특허 이후 1차 생산 제품이 납품되면서 숨통이 트였고요. 이후에 외국투자도 유치했습니다. 이제 대량생산 상품화 시기만 남았고 제품개발을 다양화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해를 넘기면 상장까지 예정되어 있는데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 위기를 모면할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가 봅니다.

― 아. 네. 정부정책지원금과 사모펀드 쪽에서 얘기가 잘 돼서.

― 그렇군요. 현민은 잠시 침묵하다 말을 꺼냈다.

― 대표님 혹시 민소희 변호사를 아십니까? 현민은 궁금하다는 듯 그의 눈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 네? 갑작스레 그게 무슨. 안승민의 놀란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적인 질문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 민소희라. 가만있자 누구였더라. 그는 답변을 하기 전에 뭔가 시간을 벌고 있었다. 현민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이 부분에는 능숙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 아. 민소희 변호사? 기억났습니다. 오래전 투자자 미팅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었죠. 이제야 생각나는군요.

― 같은 형주 출신이신데 혹시 알던 사이였습니까? 그는 말을 하려하다가 갑작스레 화제를 돌렸다.

―기자님은 민소희 변호사를 잘 아십니까? 그는 거꾸로 현민에게 질문을 던졌다. 공을 현민에게 넘긴 것이다.

― 아니면 민소진씨를 아십니까? 현민은 그 말을 더했다. 최영은 소식도 아시죠? 제가 요새 형주지역의 여러 사건을 좀 취재하고 있습니다. 우연찮게 대표님께서도 형주 출신이시고 민 변호사도 그렇더군요. 얘기를 들어보니 같은 반이셨다고 학창시절이나 이후에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셨는지요.

―음. 그는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후 머뭇거리며 대답을 이었다.

― 지금의 질문이 오늘 인터뷰와 관련이 있을까요? 개인적인 부분이라서 굳이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 웨어러블 로봇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요. 보통 그런 경우가 많잖습니까? 불편하셨다면 굳이 말씀 안 해주셔도 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부의 정책자금과 지원의 출처를 좀 확인해 보니 국민의 당과 관련된 기업들과 연구자금등이 많더군요. 오늘은 그냥 여쭤보러 온 것입니다. 대표님. 저는 한정혜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NBS시사프로그램 <사건25시> 프로그램 관련 취재이기도 하고요.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한정혜 사건에 대해서 혹시 말씀해 주실 게 없으신가요? 최영은이 살해됐습니다. 방준호도 그렇고요. 한정혜의 모친인 신효선도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 모든 게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대표님은 그때 그 모임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찰조사를 받지는 않으셨더군요. 그냥 언급만 되는 정도였고요. 진실을 알려주시면 어떨까요? 안승민은 한동안 고민하고 있었다.

― 진실이라고 불릴만한 게 있습니까?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가진 기준대로 이해하는 거죠. 승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 블라인드를 밀어 올렸다. 늦은 오후의 노을이 사무실로 스며들었다.

― 소진이가 얘기하더군요. 누군가 형주와 관련된 일을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게 박현민 기자님이었군요. 소진이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 경찰이 올 줄 알았는데. 이 부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하. 안승민은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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