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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페르소나 논 그라타 2부 -10-

나 오래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어. 너희집에 묵었지.

by proofs

2부

9

안승민은 형주에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승민은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역 관사를 떠돌았다. 넉넉한 형편으로 생활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머물던 관사는 대부분 방치된 폐건물 같았다. 벗겨진 페인트와 관리가 되지 않은 아파트 벽면과 무성하게 자라난 현관입구의 잡초를 볼 때마다 승민은 가지런하고 정돈된 아파트 단지나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친한 친구를 만들지 못했다. 그의 기억은 대부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것이었다. 자아가 정립될 무렵 중학교 시절의 형주에서의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거주공간도 그랬지만 바다와 인접한 그곳의 풍광도 썩 좋지는 않았다. 관리가 되지 않아 주변의 어수선하고 무분별하게 버려둔 썩은 자재에서 나는 악취와 폐기물이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그 광경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승민은 처음 형주에 도착해 시내를 둘러보던 기억을 떠올렸다. 첫인상은 기묘했다. 도심과 외각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늘어선 적산가옥은 스산한 느낌마저 주었다. 도심 한복판 폐쇄된 역사는 역사유물이라고 좋게 포장하고 있지만 재개발을 하지 못해 방치된 지역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멈춰선 곳. 도시는 자기관리를 하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간 모습이었다. 집근처에서 밖으로 나가면 희미한 갈매기 울음과 파도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외각도로로 나가면 비릿한 바다 내음이 공기 중 퍼졌다. 비릿내가 바람을 타고 코끝을 간지럽혔다. 줄 곳 도심과 산속에서만 살던 승민은 이질적인 분위기에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승민의 가족은 형주에 머문지 1년 후 관사에서 평탄읍 갈매리의 단독으로 이사했다. 승민이 다니게 될 고등학교까지는 시내버스로 30분정도가 걸렸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에는 모래사장이 한눈에 들어오고 해안 소나무 숲이 보여 그 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버스를 타고 10여분 후 내려 조금만 걸으면 솔밭이 있는 바닷가와 큰 바위가 그나마 위안을 주었다.


풍광이 주는 아름다움은 잠시였다. 어릴 적 그가 느낀 형주의 사람들은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인상을 풍겼다. 시내와 조금 떨어진 곳이다 보니 주민들과 주택 통행로를 주고 다툼도 벌어졌고 이들은 마을 발전기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아버지가 영관급 군인이라는 것이 알려지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들은 얼굴을 바꿨다.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자 승민과 그의 부모는 폐쇄적인 분위기에서 두려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좋게 보면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그 비율이 높은 이유를 일제 강점기 수탈에 대한 피해의식이 남아 있어서라는 사회문화적 해답을 누군가 내놓기도 했지만 확인된 것 같지는 않았다. 남강으로 이어지는 뱃길로 일제 강점기부터 쌀을 실어 나르는 항구 옆으로는 수산물 가공공장이 있었다.행정명칭으로는 산업단지였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부공장은 버려져 폐허처럼 방치되기도 했다.


승민은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판타지나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이 취미였고 틈틈이 일렉 기타를 혼자 연습해 치기도 했다. 공학에 관심이 생겼다. 물리학과 로봇공학 그리고 유체 역학쪽을 깊게 공부해 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형주를 떠나 빨리 서울로 가 대학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생각이 컸다. 학교 공부는 어렵지 않았다. 시험기간에만 슬슬 공부해도 상위권을 유지했기에 그의 부모도 특별하게 학업을 강요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의 기억에서 특별한 순간은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였다. 그는 간밤에 책을 읽고 새벽에 잠이 들었다. 너무 졸려 잠시 책상에 엎드려 눈을 붙이고 있었다. 앞에서 두 번째 줄이었기에 담임 황정우가 들어와 안승민을 깨웠다.


―야, 안승민 조례시간이 됐는데도 아직도 자는 것은 뭐냐? 일어나.


황정우는 그를 보고 소리쳤다. 그는 졸린 눈을 비비며 멍하니 일어나 앞을 바라보았다. 황정우는 전학생을 인사 시키고 빈자리에 가서 앉으라고 했다. 안승민의 옆자리였다. 그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는 정혜를 보았다. 167정도의 큰 키에 마른체구였다. 그가 보기에 한정혜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승민은 그 전까지만 해도 이성에게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의심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정혜를 보고 깨달았다. 자신이 동성애자는 아니라는 것을.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는 것은 문학작품에서 등장하는 이야기인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정혜를 본 순간 왜 그런 묘사가 등장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정혜가 전학을 온 후 전학생에 대한 관심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녀의 아버지가 검사이고 근무지로 인해 이곳으로 왔다는 소문이었다. 확인된 것은 아니었다. 승민은 며칠 전 버스에서 정혜를 처음 보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한 여자아이가 반석동 입구에서 내린 것이다. 처음 보는 아이였고 무작정 말을 걸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로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실행은 하지 못했다. 순간 그 아이는 버스에서 내렸다. 승민은 그녀가 걷고 있는 모습을 시야에서 멀어질 때까지 보고만 있었다. 전학온 아이는 그 아이였다. 승민은 상황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정혜는 학교 생활에 천천히 잘 적응하는 듯 보였다. 소심해 보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아이들 사이에 녹아들고 있었다. 승민은 버스 뒷자리에 가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승민이 탄 버스가 반석동을 지나 학교로 지나갔기 때문이다. 반석동은 중간경로였다. 둘은 몇 주 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가까워질 계기가 없었다. 통학과정에서 몇 달간 간단하게 안부정도를 묻거나 학교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다. 그날도 뒷 자석에 근처에 나란히 서 있었다. 둘은. 멍하니 창문 밖 경치를 처다 보았다. 학교에 거의 다 왔을 무렵 그녀가 말을 꺼냈다.


― 승민아. 나 뭐하나 물어봐도 돼? 갑작스레 그녀는 승민을 보고 이야기를 꺼냈다. 승민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 어?..... 뭔데.

― 왜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 하하...... 그게 아니고. 갑작스레 말을 꺼내서,,....승민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킬까봐 당황한 것도 있었다.

― 학교 축제는 몇 주 뒤야? 너 기타 연습하는 것 음악실 지하에서 봤어. 축제에 진심이구나. 항구에서 다른 축제도 한다면서. 소리가 좋던데. 연습을 많이 한 것 같아.

― 기타를 좋아해서 조금 더 잘 치는 것 뿐이야. 원래 좋아하는 것은 열심히 하는 법이잖아. 보통 학교 축제가 끝나고 다들 아이들과 함께 항구에서 하는 여러 행사를 보러가는 거지. 이 동네에서는 그렇게 해 왔어. 형주에서 유일하게 이것저것 볼게 많은 날이지 않을까해. 사람들도 많이 방문하는 편이고.

ㅡ 그래? 그건 왜? 그날 같이 행사와 공연을 보자는 말을 꺼내려는 순간 버스가 학교 앞 정류장에 도착했다. 기회를 놓쳤다. 제길........

ㅡ 다 왔다. 내리자. 정혜가 말했다.

버스는 등교하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승민은 빨리 말을 꺼내지 못해 아쉬웠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과 인도를 줄지어 걷는 무리가 뒤섞여 왁자지껄하게 학교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11월 마지막 주 형주에서는 대규모 축제가 벌어진다 풍어제는 초여름이다. 풍어제 행사는 그리 규모가 크지 않다. 형주에서는 늦가을 무렵 단풍의 절정과 함께 이뤄지는 지역축제가 유명했다. 형주항과 군어항에서는 전어 잡이가 한창이었다. 이후 겨울 숭어와 방어철이 이어진다. 형주고 교내 축제도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다형주고는 1940년대 공립으로 시작했다. 이후 황호민의 부친이 일제강점기 학교를 인수해 이름만 바뀌어 재단이 소유한 사립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그 축제도 재단을 설립한 황보인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 알려져 있었다. 형주고의 학교 축제는 단상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재단 이사장인 황호민의 부친은 일제 강점기 시절 많은 부를 쌓았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형주항에서 열리는 축제가 그 시절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황호민은 국회의원이 된 이후 형주항에서 벌어지는 행사를 지역 전통의 행사로 만들어 굿이나 무속행사에 지원을 강화하고 후원을 이끌어 냈다. 지역전통의 명맥을 유지하게 한다는 이유였다. 형주의 축제 기간이 다가오자 형주고도 학교 축제인 단상제를 준비했다.


승민이 속한 동아리는 밴드 연주를 하기로 돼 있었다. 학교축제 공연이기는 했지만 관중을 대상으로 한 연주라 흥분과 긴장 상태에서 몇 주간 점심시간과 토요일 오후 까지도 연습실에서 연습을 이어갔다. 3학년 선배는 수능이후 교내에 아예 발길을 끊어 버렸다. 승민은 공연을 앞두고 급한 마음이 들어 시간을 쪼개 연주실을 좀 더 찾았다. 리드기타를 맡아 부담이 있었다. 개인 솔로곡도 한곡을 해야 한다 총 3곡을 연주하기로 돼 있었기에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을 해 왔기에 어느정도 자신은 있었다. 공연 시간은 촉박했지만 무난하게 연습 한 대로 래퍼토리는 완주할 수는 있다. 다만 긴장만 하면 제대로 된 연주가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점심시간에 정혜를 장서실에서 볼 때 가 있었다. 도서관 건물 외장공사가 진행되는 중이라 아이들은 깔끔한 새 건물 독서실을 대부분 이용했고 잠깐 책을 빌리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음침한 구도서관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승민은 지하 연습실에서 올라와 장서실 한쪽 구석의 공간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낡은 소파와 빈티지한 쿠션이 있고 오래된 책들이 칸칸이 꽂혀 있는 그 장소가 좋았다.


장서관으로 눈을 돌리자 누군가 가장 안쪽 구석에서 오래된 하드커버 책을 읽고 있었다. 민소진이었다. 아이들은 사실 이곳 장서실에 잘 오지 않았다. 신관에 쾌적한 열람실이 있고 신간들이 배치됐다. 이곳은 오래된 책들이 쌓여 있었고 자료 보관 용도로 활용되는 곳이었다. 수 십년 된 학교자료들이 먼지에 쌓여 있기도 했다. 승민은 민소진을 구도서관 장서실에서 몇 번 본적이 있었다. 가끔 민소진은 혼자 책을 읽고 있었지만 정혜도 점심시간에 저곳에 있다는 게 좀 의외였다. 승민은 민소진을 볼 때마다 그녀가 가끔 도깨비나 유령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반 아이들이랑 어울리지도 않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민소진에게 사연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스스로를 고립시킬 정도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공연연습 때문에 작년에도 이곳을 찾기도 했고 중간고사가 끝난 이후 가끔은 토요일에 연습을 할 때도 있었다. 여지없이 민소진은 그곳에 있었다. 그녀에게는 오히려 이곳이 편한 공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4교시가 끝나기 전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밥을 먹으러 여지없이 의자를 뒤로 빼고 움직였다한바탕 소동이 끝나면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아이들을 뒤로 하고 장서관으로 향했다. 민소진은 두꺼운 하드커버 책들을 가끔 읽는 것 같았는데 가끔 승민은 어렵고 두꺼운 고전 같은 책이 어떤 재미가 있을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식당으로 향하거나 주머니에서 작은 빵을 허나 꺼내 그것을 먹으며 책을 읽는 듯 했다.


― 재미있어? 민소진은 깜짝 놀랐다.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은 오랜만이었다.

― 밥은 안 먹을 거야? 소진은 정혜를 쳐다보았다. 왜 자신에게 말을 걸고 귀찮게 하느냐는 표정처럼 보였다정혜는 민소진이 읽던 책을 보았다.

― 이게 뭐야? <신곡> 너도 이걸 봤어?

소진은 초점 없는 눈으로 정혜를 바라보았다. 소진은 이 아이가 친절을 가장한 행동 뒤에서 다른 애들처럼 자신에게 무슨 짓을 벌이려 하는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소진은 정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를 기억하지도 못했다. 구부정한 작은 키에 못난 얼굴과 조금만 뛰거나 걸어도 숨이 차 언제나 어께와 허리를 구부렸다. 병치레로 인해 긴 머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언제나 푸석푸석해 보였고 생기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민소진의 별명은 <사다코>였다.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tv 브라운관을 기어나와 나와 핏발선 눈을 부릅뜨며 뒤뚱거리며 걷는 그녀. 누군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민소진은 놀림감이었고 또래집단의 희생 제의의 제물이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최영은은 민소진을 괴롭혔다. 놀림과 따돌림의 바이러스는 반 전체로 퍼졌다. 매년 학기 초에 발생하는 일이었다. 정혜의 계속된 호의를 소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몇 번이나 귀찮게 구냐는 듯 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에 단답형의 대답만을 할 뿐이었다. 그날도 정혜는 소진의 곁에 붙어 않아 있었다. 소진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정혜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작정한 듯 긴 말을 꺼냈다.


― 나 오래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어. 너희집에 묵었지.

그 말을 끝으로 정혜는 소진을 바라보았다. 소진은 이아이가 무슨 뜬금없는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정혜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주기를 바랐어. 정혜가 말햤다. 그녀의 말에 민소진은 언제인지 모를 기억이 떠올랐다.

― 아......

갑작스레 울음과 같은 신음이 터졌다. 소진은 정혜에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생각하지 못한 과거와 마주친 순간이었다. 그 순간 소진의 기억은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아무런 고통이 없었던 그 시절이었다.

―혹시 그때 그게 너야? 민소진은 알 듯 모를 듯 한 표정을 지었다. 정혜가 전학을 온 뒤 한 달 정도 지난 뒤의 일이었다. 정혜는 그렇게 소진의 손을 잡아주었다. 소진은 언제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그날 영어 선생 한민구는 갑작스런 학교일로 수업에 늦을 수 밖에 없었다. 반장을 시켜 자율학습을 지시하고 교실로 향했다. 아이들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민소진은 교실뒤편의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 아오. 씨발. 야..... 너 내 앞으로 지나다니지 말랬지?

최영은은 민소희를 걷어찼다. 꽈다당 소리가 난 뒤 민소진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갑작스레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는 조용해졌다. 승민과 몇몇 아이들은 인상을 찡그렸다. 잔뜩 주늑 든 민소진은 어께를 늘어뜨리며 교실 가장 왼쪽 구석 자신의 자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민소진은 늘 있는 일이라는 듯 옷을 탁탁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물함에서 두툼한 붉은 책을 꺼내 뒷 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자신의 구석자리에 앉았다. 한정혜는 민소희와 최영은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야, 전학 넌 왜 째려봐? 뭐, 어쩌라고.

최영은이 책상에 걸터앉아 웃으며 말했다. 한정혜가 갑작스레 책상에서 일어나 최영은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갑작스레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쏠리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최영은은 책상에 걸터 앉아 민소진을 보며 웃고 있었다. 둘 사이 팽팽한 긴장이 교실을 뒤덮었다. 그때 뒷문이 열리고 한민구 영어선생이 들어왔다. 한민구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갑작스런 일이 생겼다고 양해를 구하고 수업을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곧 생길지 모를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최영은의 견고한 왕국 통치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그 상황을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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