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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페르소나 논 그라타 2부 -13-

반복되는 심문 끝에 이들은 자신들의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by proo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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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수산물 가공 공장 노동자 케나르를 긴급체포 해 심문을 진행했다. 하지만 용의자의 행적은 뭔가 허술했다. 그는 돈을 벌기위해 이국땅까지 와 여러 수모를 당해가며 밭일을 했다. 수산물 생산 가공공장에서 일주일에 60시간 이상 근무하며 최저 생계비로 생활을 했지만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다. 소개업자에게 큰 비용을 지불했기에 생활은 궁핍했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한 악질 사업주는 임금을 체불하기도 했다. 형주의 수산물 가공공장은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그는 쓰리랑카 출신 네트워크로부터 좋은 제안을 하나 받았다. 이들 3명은 쉬는 날이나 한밤중 대포차를 이용해 CCTV가 없는 곳을 위주로 사전에 답사를 진행 한 뒤 후보지를 골랐다. 형주시 외각이나 정주시 근처였다. 대문이 잠기지 않은 곳에서 여러 물건들을 훔쳐내 장물로 내다 팔았다. 전자제품부터 귀금속 까지 돈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집어 들었다. 이들이 덜미가 잡힌 것은 반석동 일대에 수상할 정도로 들락거렸다는 것과 정주시 일대에도 비슷한 수법의 도난사고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거의 한달 만에 용의자를 선별해 낸 것이다. 나머지 공범들을 수배하고 검거했다. 반복되는 심문 끝에 이들은 자신들의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최영은이 살해된 건물에도 출입해 절도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살인에 대해서는 전면부인하고 있었다.


―선배님, 오늘도 안 들어오세요? 대체 뭘 캐고 다니는 거예요? 팀장이 별건 수사한다고 뭐라고 해요. 지금 그럴 때냐고. 용의자들 여죄 캐내야 하는데 손이 모자라다고 해요.

― 그들 취조해도 나올 거 없어. 알아서 들 잘 할 텐데. 나까지 끼어서 뭐하려고. 조만간 팀장하고 윗선에서 난감해 할 게 뻔해. 그 비난도 감당해야해. 진범이라고 언론 플레이했다가 누가 또 살해되면 그 뒷감당 누가해? 장 형사. 한정혜 사건 수사기록 확인해 보고 그때 혹시 학교에 있었던 당직 관리자 수소문해봐. 이따가 들어갈 테니까. 당직 근무자 조사기록도 좀 확인해 놓고. 팀장은 지금 사건 수습하느라 정신없을 테니. 빨리 알아봐.

― 에휴 그렇기는 하죠. 정주현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도 이들이 살인을 저지를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았다.

김선호는 정주현이 보낸 문자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결번이라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번호가 바뀐 모양이었다. 김선호는 집 주소로 향했다. 시 외각 형주서에서 20분쯤 걸리는 평탄읍 갈매리였다. 김선호는 차를 몰아 퇴근시간을 피해 한정혜 사건 당시의 당직 근무자 서호인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늦었다고 만나주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국도 2차로에서 50미터쯤 시멘트 도로를 따라 들어갔다. 파란색 대문이 인상적이었다. 붉은색 벽돌기와를 얹은 오래된 단층집이었다. 이곳에서 형주고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듯 보였다. 당직근무자는 매일 오후에 출근해 밤을 새고 다음날 아침에 퇴근한다. 물론 중간에 쉬는 시간은 있지만 매일 주야가 바뀌는 생활이기에 주로 나이가 많거나 은퇴 후 소일거리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파란색 대문을 열자 작은 마당이 눈에 들어왔다.


― 계세요?

― 뉘시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김선호는 신분증을 보여주고 오래전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물었다. 서호인은 기억을 더듬는 듯 보였다.

― 아. 그때 그 형주고? 그게 언제 일인데. 아직도 사건 해결이 안됐나? 앉으시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김선호는 당시 사건기록에서 서인호의 진술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김선호는 화재사건 기록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전열기기 사용으로 인한 과부화와 누전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화재는 순식간에 주위로 옮겨 붙었다. 커튼과 인화성 물질이 가까이에 있었다. 당직실 건물이 모두 불타버린 것이다. 비슷한 시간 한정혜는 보강수리 중인 장서관 건물 3층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사망 했다. 그날은 형주지역 축제날이었다. 11월 마지막 주 주말이었다. 형주 항에서 풍어제가 열린 날이다.


― 경찰에서 다 얘기를 한 것 같은데. 그날 밤에 당직을 하러갔지. 일주일 절반씩 나눠서 하니까.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이었어. 서호인을 조사한 것은 지성우 경사였다. 김선호는 한정혜 사건이 자살로 종결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당시 수사관으로서 경력도 적었고 지선배의 조사내용을 신뢰했고 자신은 보조만 했기 때문이다. 한정혜가 우울증치료제와 안정제등을 먹고 있는 것. 모친인 신효선도 그 부분을 인정하고 있었고 이전에도 자살 시도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자살 미수자들은 자살시도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녀가 왜 당시 그 시간에 학교에 갔는지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그날 8시에 출근해서 교내순찰을 돌고 있었어. 축제가 있는 날이라서 분위기가 좀 들떠 있기도 했고. 윤영근은 자주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할 때가 많았거든. 그래서 기억이 있지. 그날도 그랬고.

― 혹시 그때 경찰에 미처 얘기하지 못한 것이나 좀 의심스러웠던 것은 없을까요? 사소한것이라도 좋습니다.

― 음...... 그게... 얘기하기가 좀 그런데. 사실 내가 변명처럼 들릴까봐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말이지. 그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마당으로 시선을 잠시 돌렸다.

―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요? 순찰을 한 바퀴 돈 다음 사실 졸았거든. 이상하게 졸음이 오는 거야. 그런 적이 없었는데. 교무실에서 윤영근하고 음료수를 마셨는데. 홍삼음료를 주더라고. 그걸 마셨지. 오래전 이야기이기는 한데 사실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니까. 당시에 걱정이 되기는 했는데 다행이 책임은 묻지 않았어. 당직근무자는 출근해서 아이들 하교하고 한 바퀴를 돌아서 학교 상황 확인하고. 좀 쉬웠다가 10시 이후에 다시 순찰을 하는 거지. 그는 그때 책임에서 벗어난 것이 다행이라는 눈치였다.

― 윤영근 선생은 당일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왜 종종 늦게까지 남아계시죠?

―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거 뭐. 교무실에서의 선생들끼리의 관계는 잘 모르니까.

서호인는 더 말할게 없다는 투었다. 확인한 것은 한정혜가 숨지던 날 윤영근이 늦게까지 학교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윤영근은 잊은 물건을 가질러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불이 난 것을 확인 한 뒤 서호인을 밖으로 꺼냈다고 했다. 이전 조사에서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것이 의심스럽다. 기묘한 우연이 겹친다. 윤영근이 다시 돌아온 이유는 불이 날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인가? 의심이 갈 만 하다. 김선호는 갈매리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겼다. 학교 운영실에서의 화재로 CCTV 하드는 화재로 모두 소실됐다. 김선호는 형주서 합동수사팀으로 들어가자 절반정도의 인원은 남아 업무를 하고 있었다.


― 단서 좀 발견한 것 있어요? 그가 자리에 앉자 정주현이 물었다.

― 아 모르겠어. 확실하지는 않은데.

― 강수연에게 전화를 해 놨어요. 강수연은 시큰둥한 반응이에요. 주의하라고 해도 말이죠. 자신은 관련이 없다고. 저부터도 그렇긴 할 텐데. 인정하고 싶지 않겠죠. 일상에 지장도 있을 테고.

― 강수연이 다음 타겟이 될 수 있어. 아니면 사건이 끝이기를 바라야지.

― 스리랑카 놈은 어때? 긴급체포 기한 곧 끝나잖아.

― 아휴. 그것 때문에 죽겠어요. 인권단체에서 성명 발표할 것이라고. 자기 억울하다고. 기자도 어떻게 알고 왔는지 취재해 갔어요. 누가 일부러 제보한 것 같다니까요. 물건을 훔쳐 판것은 인정했고. 같이 움직인 놈들도 잡기는 했지만 워낙 완강하게 부인하는 터라. 최영은 사건 빌라에 갔던 것도 반석동 근처 신효선 집근처에도 행적이 확인돼요. 살인은 안했다고 완강히 부인하는 중이죠. 저도 저놈이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은 좀 안 들어요.

― 선배님 그러지 마시고 팀장님한테 얘기하세요. 믿던지 안 믿든지 사건은 해결해야죠. 가능성에 베팅해야 해요. 이제 더 단서가 없어요.

― 음...... 나도 그러고 싶은데. 용의자 특정을 해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정형사는 형주고 윤영근 선생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는 다 확인해놔. 아무래도 좀 걸리는 게 있어. 이번 사건에서 뭔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한정혜 사건이 있던 시기에 윤영근은 학교에 있었어. 최근 최영은 사건 전후해서 윤영근 통화내역하고 계좌내역하고 조회해봐. 의심 가는게 나오는지. 형주학원과 관련해서는 아직 특별한 것은 없어?

― 아시잖아요. 고등학교도 완전히 이쪽으로 이전한다고 하면 형주학원만 좋은 일 일테고. ktx이전 호재도 있고. 황호민이 되면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근데 뜬금없이 윤영근은 왜요? 더 조사할게 있어요?

― 잠깐만 뭐?

― 학교 이전하는 것 모르셨어요? 알고 계신 줄 알았는데. 교육청과도 협의가 끝나 간데요. 중학교 이전 끝났고 고등학교 차례죠. 오래전 학교법인에 반대하던 선생들 다 자르고 급식비 횡령이다 뭐다 해서 고소고발로 시끄러웠는데 물갈이 됐잖아요. 형주학원은 황호민이 이사장인데 그의 손아귀에 있고요. 반대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절대권력이죠. 정주현이 커피를 마시며 무덤덤하게 말했다.

― 신효선의 계좌를 보면 빌라 구매건 하고 반석동 단독주택 지분을 취득했고 수 천만원이 입금된 부분은 있어요. 오래전이죠. 시기로 보면 한정혜 사건쯤 됐네요.

― 그래? 지분매입을 위한 자금은?

― 그건 알 수 없죠. 그런데 사건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당사자들이 부인하면 그만인데 개인 채무라고 해도 되고. 윤영근은 오래전 목돈이 거래된 게 있기는 해요. 공교롭게도 그것도 비슷해요. 의심은 가는데 증거를 없죠.

― 그렇군. 내일 마지막 확인할 것 체크하고. 얘기해 줄 테니까. 팀장님한테도 이제는 얘기해 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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