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편소설]페르소나 논 그라타 2부-14-

무당이라고 해도 너한테 그런 얘기를 들을 이유도 없고

by proofs

*

―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현민은 승민을 바라보았다. 승민은 벽을 가리켰다. 유리문을 밀어내자 대표실 왼쪽으로 거대한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책장에는 프로그래밍과 관련된 분야와 로봇공학 관련된 책들이 놓여 있었다. 오른쪽 끝에는 붉은 겉표지로 쌓여 있는 고전이 몇 권 보였다. <신곡>이 눈에 띄었다. 현민은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승민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 정혜에 대한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최영은이 한정혜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그 애가 주도했을 테죠.

― 무슨 소문이요?

― 근거 없고 의미도 없는 말들은 크게 부풀려 집니 다소문이라는 게 그렇잖습니까? 당사자가 아무리 부인해도 공기 중으로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변종 바이러스처럼. 승민은 현민을 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아는 듯 한 표정이었다. ‘왜 저기 정혜가 있지?’ 승민은 의외의 장소에 있는 정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정혜도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아니 그곳에 온 많은 아이들이 그녀를 보았을 터다. 정혜도 자신을 보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듯했다. 그녀는 묵묵히 행사를 돕고 있었다. 최영은이나 강수연 같은 아이들이 보게 된다면 정혜의 학교 생활은 이래저래 쉽지 않을 것이다. 태평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소리에 맞춰 무속인의 몸놀림은 점점 빨라졌다. 승민은 그 몸짓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무당의 움직임에 몰입했다. 접신이 끝난 후 굿은 마무리되었다. 공연이 마무리된 것이다. 무당의 열정적인 굿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주위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예상대로 며칠 후 학교에 소문이 펴져나갔다. 정혜는 한동안 자신을 둘러싼 소문을 못 본 체 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 소문의 근원이 최영은이었습니까? 현민은 승민이 소파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었다.

― 글쎄요. 그것까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죠. 좁은 지역 사회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중요하니까요.

음......

이후 정혜는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죠. 뭐라 할까. 마치 정혜를 해로운 세균 같은 것으로 보았다고 할까. 전염병에 걸린 대상에게 사람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비슷한 것이죠.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경외하던 대상이 현실의 바닥으로 끌려 내려올 때, 아니 자신보다 못한 변변치 않은 존재라는 것으로 여겨진다면 반발심과 반작용은 더 크겠죠. 마치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배신을 당한 것처럼 느껴졌을 테니까요. 정혜가. 지역 검사장 자녀에서 무당의 딸이 됐으니. 자신이 속았고 소문에 휩쓸렸다는 생각을 하기 싫었을 테죠. 물론 정혜는 자신에 대해 말한 적이 없지만. 뭐, 정혜의 부모가 고위직 공무원인 검사장이라는 소문이 있기는 했으니까요.

― 대표님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이야기해 주시죠. 대표님은 한정혜에 대한 관심이 있었죠? 그녀와 가까워지기를 원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죠? 안승민은 웃음을 지었다.

― 네, 당시에 정혜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민소진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은 어느덧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중력을 가진 존재와 대상은 관성에 영향을 받는다. 민소진을 희생제 의의 제물로 삼아도 된다는 것. 부당한 것과 정의롭지 못한 행위와 인식에 대한 처벌과 제제가 없다 보니 괴롭힘과 따돌림은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황정우는 그 상황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이들의 진술을 황정우는그 과정을 방치해 관찰하는 듯 여겨졌다. 인간사에 영향을 끼치지만 직접 개입하지 않는 인격신처럼 아니면 그는 고통을 즐기는 사디스트 같은 면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최영은과 몇몇 아이들은 그 상황을 알고 있었고 더더욱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될 때였다. 수능이 끝난 학교는 3학년 입시 상담과 수시지원을 위한 일정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입시일정으로 기말고사가 끝나고 휴강이 잦았다. 자율학습이었지만 학기말과 방학을 앞두고 모두들 들떠 있었다. 사건은 그때 발생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조용히 장난을 치며 떠들고 있었다. 민소진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최영은은 갑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사물함에서 물건을 꺼내다 민소진이 읽고 있는 책을 쳐다보았다.


― 미친년, 뭘 이런 것을 읽고 있어? 최영은은 이유 없이 민소진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 푸하하, 너 지옥 가고 싶어? 그녀는 책을 빼앗아 그녀가 읽고 있던 부분을 짚어 내려갔다. 뭐야 이거.


단테가 절벽을 따라 제7 환에 이르러 머리는 황소이고 사람의 모양을 한 미노타우로스가 날뛰는 모습을 본다. 더 나아가 펄펄피가 끓어오르는 강물에 남에게 폭력을 행사한 자들이 있는 것도 본다. 죄인들 중 몸을 빼려는 자가 있으면 반인반마의 켄타우로스가 그에게 활을 쏜다. ......


― 하하. 이거 진짜 미쳤네..... 호러야? 이런 걸 왜 보고 있어. 누구 지옥이라도 보내 게?

그녀는 책을 뺏어 교실 뒷문 쪽으로 집어던졌다.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언제부터인지 아이들도 이제는 둘의 싸움을 보고도 못 본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최영은을 제지하다 몇 번씩 같은 과정이 반복되자 모두 무덤덤해졌다. 폭력에 순응하고 무감각해진 것이다. 최영은이 중학교 때 그녀의 모친이 선녀바위 아래 바다에 빠진 채 숨진 채 발견 됐다. 그즈음부터 최영은의 폭력성향과 민소진에 대한 괴롭힘은 더욱 극대화 됐다. 빨간색의 두꺼운 하드커버 <신곡>은 한정혜의 앞으로 투둑하고 떨어졌다. 한정혜는 책을 집어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가장 왼쪽의 민소진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민소진의 책상에 조용히 책을 놓았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한정혜에게 최영은은 도발을 시작했다.


― 둘 다 똑같은 년이네.

최영은은 한정혜를 괴롭힘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처음 전학을 온 뒤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을 때 최영은은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상관하지는 않았다. 황정우가 한정혜와 시끄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이유를 물었지만 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 비켜 왜? 전학 너는 왜 뭐 문제 있어? 영은은 정혜를 도발했다.

― 축제 때 굿 잘하더라. 너 무당이야? 최영은은 박수까지 치며 웃다가 한정혜를 노려보았다. 무당의 딸이고 그 자식도 무당이었는데 지역으로 온 검사의 딸이라는 말이 돌았으니...... 최영은은 일부러 큰 소리를 냈다. 한정혜는 몸을 돌려 뚜벅뚜벅 최영은을 향해 걸어갔다.

― 아무도 그렇게 얘기한 적 없어.

한정혜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당이라고 해도 너한테 그런 얘기를 들을 이유도 없고. 그녀는 그 말을 하고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움직였다. 뒤돌아가던 한정혜는 멈칫하더니 최영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녀는 손을 치켜들고 최영은의 뺌을 후려쳤다.

짝......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공간을 짓눌렀다. 무형의 거대한 기운이 그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공기는 화염을 머금었다. 사소한 움직임 아니 눈빛만으로도 폭발할 수 있을 만큼 임계점으로 치달았다.


―이 미친년이 어이가 없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최영은이 손을 뻗어 한정혜를 치려고 했지만 그녀는 몸을 피했다. 최영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침을 삼키는 소리도 울릴 만큼의 정적이 공간을 지배했다. 둘은 마주 보고 대치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자신의 왕국도 통치의 권위도 사라진다. 절대 권위의 존재가 위엄을 잃게 되면 왕좌와 권위는 최후를 맞는다. 더할 나위 없는 굴욕이다. 최영은은 호위대가 있었다. 방준호를 무사로 거느렸고 자신의 정치력과 영향력을 행사에 도움을 주는 강수연과 몇몇의 무리들이었다. 민소진은 하층계급이었으며 방관자는 안승민 같은 부류다. 최영은은 자신이 해결하기 껄끄러운 문제가 생기면 황정우를 소환했다. 데우스엑스 마키나(주: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기계장치 신으로 그리스비극에서 갈등을 수습할 방법이 없을 때 활용했다.)를 활용한 것이다. 그녀는 교묘하게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을 전달해 여러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을 썼다. 왕국에 대한 통치와 자신의 영향력에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세력은 그렇게 보존됐다. 그런데 어느 날 뜨내기가 자신의 왕국에 침입해 권력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천박해 보이는 무당의 딸이 말이다.


― 이게 어디서.....

최영은은 한정혜의 뺨을 때렸다. 한정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움직임도 없었다. 무표정한 한정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최영은은 눈치챘다. 뭔지 모를 기괴한 웃음이었다. 오싹하고 섬찟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이 아이는 뭔가 다르다. 그 생각이 최영은을 지배했다. 하지만 공포와 당황스러움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 더 해 봐. 최영은은 서늘한 말로 빈정대듯 한정혜에게 말했다.

― 넌 동정도 받을 자격이 없어. 피해의식으로 소진이를 괴롭히지 마. 한정혜가 말했다.

그녀의 말은 마치 다른 존재가 갑자기 튀어나온 듯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같은 공간에 모두가 느꼈을 법 한 차갑고 서늘한 굵은 목소리 었다. 서늘하고 냉랭한 공기가 그곳을 지배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방준호도 강수연도 그리고 민소진도 멍하니 그 상황에 집중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팽팽한 긴장감은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끝났다. 한정혜는 별일 아니라는 듯 교실문을 나갔다. 아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