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입은 아이의 뇌
1)9문장으로 말하라.
요즘 여기저기서 '꼰대' 논쟁이 한창이다. 필자도 우선 MZ 세대에 속하긴 하지만, 참 이것도 꼰대 저것도 꼰대라는 불평을 듣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에 '어른의 말'이란 것이 설 자리가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왜 이런 논쟁에 불이 붙은 것일까? 그건 우리 부모세대가 전달하는 '이야기'가 틀린 게 아니라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이 글러먹었기 때문이다.
주제를 요약하여 '재차 전달'하는 것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세대는 똑같은 말을 정말 질릴 정도로 반복해 말한다. 그런 말을 듣고 있으면, 그게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누구나 지루하고 듣기 싫기 마련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아이들이 듣기에 여러분의 말은 사실 다 잔소리가 될 수밖에 없다. 알맹이와 무관하게 자꾸 빙빙 돌려서 똑같은 말만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말이 잔소리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면, 우선 같은 말을 반복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하려고 하는 말의 '주제'를 요약적으로 전달할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두괄식이 좋다. 예컨대, 장황하게 이야기를 푼 후에 주제를 전달하기보다는, 주제를 전달한 후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게 좋다는 뜻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다 끝낸 후에는 다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요약적으로 한 번 더 전달해 주는 것이 좋다. 특히 여러분이 말하기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라면, 시계를 보고 2분 내에 말을 끝내겠단 생각을 하는 게 좋다. 사람마다 말하는 속도는 다르지만 대개 14초에 한 문장 정도를 마무리 할 수 있다. 계산해 보면, 2분은 120초이니 여러분은 대략 9문장 정도를 말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얼추 같은 이야기일 테니, 남은 7문장 안에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2)주제는 인상 깊은 표현법을 사용할 것.
그렇다면 주제는 어떻게 전달하는 게 효과적일까? 사실 인상 깊은 표현을 위해서는, '운율이 느껴지는 문장.', '적절한 비유가 담긴 문장', '어순이 다른 문장.' 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먹고 살기 바쁜 우리 부모가 언제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또 연구할 것인가?
그래서 필자가 단순한 방법으로 아이의 기억에 쉽게 남을 수 있는 형식을 주려고 한다.
(1) 엄마(아빠)는 이렇게 생각해. A는 B라고. (첫번째 문장)
A는 뭐라고? B라고. (마지막 문장)
(2) 잘 들어. 넌 나를 아주 쉽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 네가 A한다면 난 행복할 거야. (첫번째 문장)
다시 말할게. 네가 A한다면, 난 정말 행복할 거야. (마지막 문장)
(3) 엄마(아빠)가 말해주고 싶은 건, A는 빨간색 B는 초록색이란 거야. A가 나오면 위험하니까 멈추고, B가 나오면 건너. (첫번째 문장)
네가 빨간불에 멈추고 초록불에 건너길 바라. A는 빨간색, B는 초록색이야. (마지막 문장)
(4) 이건 부모 자식이 아니어도 괜찮아. 사람 대 사람은 언제나 A해야 하는 거야. (첫번째 문장)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한테 A해야 한다는 걸 말야. (마지막 문장)
(5) A라고 말하지 마. 난 너의 B로 이미 충분해. 다른 건 바란 적 없어. (첫번째 문장.)
그러니까 적어도 내 앞에선 A라고 말하지 마. 난 정말 너의 B로 충분했고 지금까지 항상 행복해 왔어.
(마지막 문장)
위의 예시들은 필자가 아이들에게 자주 쓰는 형식이다. 아무리 말하기가 업인 사람이라지만, 언제나 새롭고 다채로운 표현으로 아이들의 뇌리에 박힐 만한 말들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형식을 만들어 두고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때면 종종 꺼내 쓰곤 한다. 이 형식에 A와 B를 채워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표현만 있으면 가타부타 다른 말들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이유를 잘 묻지 않는다. 아이가 궁금한 건 부모의 생각이고, 자신이 그것을 '해도 되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러니 사실 부모는 아이에게 이유를 설명할 일이 많이 없고,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위와 같은 형식을 외워둔다면, 아이들과 대화가 수월해질 수 있다. 필요에 따라 A와 B에 자신의 생각을 집어 넣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면, 아이들에게 명료한 주제로 이야기 할 수가 있다.
3) 선 긋기
다시 앞선 논의로 돌아 가서, 왜 우리의 말하기는 아이에게 잔소리로 들릴까? 그건 자신의 의견을 아이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의 생각은 여러분과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무작정 여러분 의견만 고집하게 되니 아이들 입장에선 부모의 말이 듣기 싫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당신의 말을 잔소리로 듣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넌 다를 수 있어.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해."
라는 말을 달고 사는 게 좋다. 그리고 이야기를 끝낸 후, "넌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는 게 좋다. 당신의 주장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아이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만 고집한다면, 단언하건대 당신은 잔소리꾼이 돼버릴 것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아이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이에게 단호하게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을 꺼내면, '드디어 내가 잘하는 말하기가 나왔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아마 여러분의 말하기 방식으로 단호했다가는 아이를 찍어 누르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여러분을 위해 몇 가지 형식을 주고자 한다.
(1) 엄마(아빠)도 널 이해하려고 노력해 볼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난 지난 몇 십 년을 A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어. 수십 년 된 생각을 바꾸기까지 나한테 몇 번의 기회를 줘. 그러니 지금은 안 돼. 너무 늦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절대 열 번을 넘지 않을 거야.
(2) A는 안 돼. 네가 A를 한다면 엄마(아빠)는 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거야. 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넌 정말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엄마(아빠)는 널 의심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러니 A는 안 돼. 엄마(아빠)는 사실은 되는 일인데 기분에 따라 너에게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아. 엄마(아빠)는 정말 다 들어주고 싶은데, A는 안 돼.
(3) A 해야 해. 네가 A하길 바랐기 때문에, 엄마(아빠)는 그간 너에게 많은 것들을 해준 거야.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고 원치 않는 걸 막아준 건 네가 A하길 바랐기 때문이야. 넌 A를 해야 해. 네가 원하는 다른 것들을 위해서 우선은 A를 해야 해. 원하지 않는 것들을 하지 않기 위해서 우선 A를 해야 해. 그럼 넌 계속 원하는 것들을 하고 원치 않는 것들을 하지 않을 수 있어. 그러니 A를 해.
이 긴 형식을 모두 외우라는 것이 아니다. 이 형식에 담긴 의미를 이해했다면, 꼭 이 형식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아도 좋다. 또 마음에 드는 몇 문장만 가지고 가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 문장에 담긴 단호함과 아이에 대한 배려이다.
아이에게 단호하게 A를 요청하거나 거절할 경우에, 그것이 영원히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 해서는 곤란하다. 자칫 아이가 당신을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그러한 경우 부모의 허락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일단 행동한 후 걸리지 않을 궁리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1)번 형식처럼 '적어도 지금은 안 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또한 어쩔 수 없이 거절해야 하는 경우에는 '신뢰'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 좋다. A라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아이가 신뢰를 잃을 수 있으므로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길 바란다는 것을 분명히 일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아이가 몰래 A를 한 것이 적발되면, 더 많은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끝으로 단호하게 A하길 바랄 경우, A를 바라는 이유를 설명한 후에도 아이가 납득하지 못한다면 부모가 그것을 바란다는 것을 분명하게 일러주어야 한다. 부모가 아이가 바라는 바를 들어주는 것과 아이가 부모의 바람을 들어주는 것이 서로 대등한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말하기는 아이에게 은근한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는 간절히 바라는 일이 아닌 경우 A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4) 하체를 고정하고 인중을 보며 천천히 말하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달할 때에는 사실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떤 '자세'로 이야기를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특히 아이에게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와 대화를 나눌 때에는 가급적 몸을 고정해야 한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은 아이에게 불안감을 주고 여러분이 하는 말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예컨대, 강사가 손발을 어지럽게 놀리면서 수업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 사람의 제스처 때문에 수업이 들어올 리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좋은 강사는 대부분 하체를 고정한다. 고정된 하체는 타인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와 이야기할 때는 마치 강사가 된 것처럼 가급적 하체를 고정하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앉아 있건 서 있건, 배꼽이 아이를 향한 상태로 하체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하체뿐만 아니라 상체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더 큰 안정감을 줄 수 있으나 오히려 분위기를 경직되게 만들 수 있다.
다음으로 아이의 인중을 바라보며 이야기 해야 한다. 아이와 눈을 마주하다 보면, 가끔 아이가 부모 앞에서 위축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너무 눈을 뚫어지게 처다보게 되면, 아이는 자신이 할 말을 생각하기보다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인중을 보며 이야기 하는 게 필요하다. 실제로 생방송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은 웬만해선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눈을 보는 순간 방송사고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TV에 아나운서들이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시선이 서로의 인중을 향해 있다.
따라서 아이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고 아이가 생각을 더 많이 하길 바란다면, 눈을 보기보다는 인중을 보아야 한다. 물론 중간중간 아이의 눈을 한 번씩 마주칠 수는 있으나, 뚫어지게 처다보는 것은 안 된다.
마지막으로 말을 천천히 해야 한다. 말을 천천히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러분이 언성을 높이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말을 천천히 하기 위해서는 큰 소리를 낼 수도 없고 상대를 쏘아붙일 수도 없다. 당연히 앙칼진 목소리로 아이를 억압하거나 상처 입히기도 어렵다.
이러한 측면에서 말을 천천히 하는 것은 아이와 보다 건설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야기도, 상대가 화를 내면서 전달한다면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흥분을 가라 앉히고 최대한 천천히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적어도 화를 내지는 않아야, 아이가 여러분의 말을 듣고 싶어질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