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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승마장, 중문해수욕장, 산굼부리

<애마부인 2>

by 신동욱

제주도 동북 해안의 답사를 마친 나는 바다를 등지고 한라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평선으로 반듯하게 펼쳐지던 풍경이 점차 능선을 따라 곡선으로 굽이친다. 섬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바다에서 산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제주도 정수를 향해 다가서는 느낌. 나는 그 중심을 아직 만져보지 못했다. 답사를 핑계로 내내 변죽만 울리고 있다.

'애마부인 촬영지'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송당승마장

동선상 가장 가까운 곳은 송당승마장이다. 주차장 간판에서부터 이곳이 <애마부인> 촬영지임을 알 수 있다. 열 편도 넘는 시리즈로 개봉하며 우리 에로영화사에 전설로 남은 <애마부인> 촬영지에서 실제로 말을 타볼 수 있으니 진귀한 경험이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흔한 승마 체험장 중 하나겠지만 영화 팬에게는 은밀한 성지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정확하게 해두어야 한다.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는 1982년에 개봉한 1편이 아니라 <애마부인 2>(정인엽, 1984)이다.


정인엽 감독은 <애마부인 2>에서 1편에 나왔던 극중 인물들을 제주도로 불러 모았다. 제 분을 못 이겨 사람을 때렸다가 징역을 살았던 남편 현우(최윤석)는 2편에선 제주도에서 곤충을 연구하고 있다. 전편에서 애마에게 마음을 빼앗겼다가 돌연 프랑스 유학길을 떠났던 동엽(하재영)도 이곳에 있다. 그땐 도예가였는데, 느닷없이 현우의 후배라며 제주도에서 곤충 연구를 따라하고 있다. 1편에서 애마와 진하게 사랑을 나눴던 남자 둘이 알고보니 선후배 사이였다니 약한 인물 설정이다. 이때 전 남편을 잊지 못해 상현(신일룡)에게 좀처럼 마음을 주지 않던 애마(오수비)도 스스로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 이렇게 1편을 흥행으로 이끌었던 극중 인물들은 2편을 통해 모두 제주도에서 재회한다.


송당승마장에서 촬영한 장면을 영화에서 분명하게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영화 속 가장 유명한 승마 장면—애마가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릴 때 '무엇인가'가 자꾸 흔들리는— 후경에는 다랑쉬오름이 뚜렷하게 보인다. 자로 잰 듯 반듯한 경사면은 다랑쉬오름만의 실루엣이다. 그런데 송당승마장은 다랑쉬오름으로부터 차로 15분 거리나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그 사이에 오름들이 많아 송당승마장에서는 다랑쉬오름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와 같은 그림이 나올 수 없다.


애마가 말을 타던 다른 장면들도 송당승마장에서 촬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말을 타고 승마장 안으로 들어가보면 알 수 있다. 승마장 규모는 말이 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크지는 않다. 같은 이유로 동엽이 텐트를 쳤던 야영장도 송당승마장은 아니다. 영화 58분쯤을 보면 텐트 있는 곳을 롱샷으로 촬영한 쇼트가 있다. 이때 텐트는 아주 넓은 목초지 한복판에 있다. 역시 송당승마장과는 거리가 있다. 분명 <애마부인 2> 촬영지라는데 이상하게 주요 장면마다 배경이 안 맞는다. 왜일까?


여러 단서를 종합해봤을 때 송당승마장이 영화에 나왔을 법한 장면은 딱 한 컷이다. 애마가 달려나와 말에 오르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영화 개봉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송당승마장은 그 한 장면으로 충분히 오래 살아남은 셈이다.


제주도에는 송당승마장 말고도 <애마부인 2> 촬영지가 더 있다. 2009년에 퇴임한 제주대학교 김원택 교수의 고대곤충연구소도 촬영지였고, 송당승마장과 멀지 않은 산굼부리에서도 애마가 달렸었다. 그런데 뜻밖의 증언이 있었다. 다름아닌 배우 이서진의 '양심 고백'이었다. 중학생이던 때에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애마부인 2> 촬영장을 목격했다는 내용이다. 촬영장은 살색으로 가득했으며 그의 부친께서도 몹시 궁금해했다던 이 증언은 이서진이 2013년에 한 번, 2023년에 다시 한 번 예능에 나와 반복했으니 신빙성이 있었다. 나는 한라산 중심으로 향하던 계획을 접고 우선 중문해수욕장을 향했다.

애마는 오른쪽 비탈을 따라 내려와 해변으로 달려 나갔다

이서진이 목격했다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애마부인 2>를 기억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남자에게 겁탈당할 뻔한 애마가 달려나가 그대로 바다로 뛰어들었던 해변이 바로 중문해수욕장이다. 이곳에서 애마는 육감적이라는 말 말고 달리 설명할 단어가 없는 몸매를 드러냈다. 해변 후경에 공사중이던 건물은 제주 중문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멋진 바다뷰를 선물했던 하얏트리젠시 호텔이었다. 짓고 있던 중이었으니 망정이지, 완공이라도 되어 호텔 투숙객이 있었다면 <애마부인 2>는 촬영 자체만으로 여러 가정 평화를 위협할 뻔했다. 지금 하얏트리젠시는 소유주가 바뀌어 '파르나스호텔 제주'라는 이름으로 운영중이다.


해변으로 내려와 애마가 뛰어들었던 바다를 바라본다. 영화의 만듦새와는 별개로 <애마부인 2>은 전통적 성별관 또는 봉건적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받던 여성성과 욕망의 해방을 언급하며 당대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문화 현상만으로 한국영화사에 남긴 의미가 큰 작품이다. 이제 애마(愛馬)를 애마(愛麻)로 바꿔야 했던 어처구니 없는 시나리오 검열도, 호주제도 간통법도 모두 폐지됐다. 다만 파도에 부서지던 윤슬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 아름다웠다.


중문해수욕장에 더 이상 애마는 없다. 파도를 사랑하는 근육질 남자들만이 서핑 보드를 끌고 해안을 질주하고 있었다. 이공이오공칠일팔




✦ 송당승마장 정보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번영로 2015 (송당리)

- 전화번호: (064)782-1199

- 영업시간: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중무휴, 입장 마감 16:30)

- 체험 가격

기본 코스: 11,000원 / 중거리 코스: 25,000원 / 장거리 코스: 35,000원 / 산책 코스: 60,000원 / 1시간 자유승마: 120,000원


✦ 한 줄 평 & 별점

- 영화 감성 ★☆

영화 때문이라면 가 볼 이유는 거의 없음

- 교통 & 접근성 ★★★★

제주공항에 직행 버스 있지만 주요 관광지와 거리 있어 렌터카 추천

- 풍경 & 자연 ★★★

좋지만 안전상 승마 체험 중 사진 촬영 엄금

- 난이도 (낮을수록 쉬움) ★★☆

앉아 있기만 하면 되지만 말이 달릴 땐 엉덩이가 몹시 아픔

- 감성 & 사색 ★★★

천천히 걸으면 꽤나 낭만적인 코스


✦ 산굼부리 정보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 768

- 전화번호: 064-783-9900

- 영업시간

3~10월: 09:00 ~ 18:40 (입장 18:00까지)

11~2월: 09:00 ~ 17:40 (입장 17:00까지)

- 입장료

성인(대학생 포함): 6,000원 / 청소년, 노인, 제주도민, 국가유공자, 장애인: 4,000원 / 어린이(만 4세 이상): 3,000원

- 관람 소요시간: 약 1시간


✦ 한 줄 평 & 별점

- 영화 감성 ★★☆

<애마부인 2>보다 <연풍연가> 촬영지로 더 알려져 있음

- 교통 & 접근성 ★★★★☆

제주공항에 직행 버스 있지만 주요 관광지와 거리 있어 렌터카 추천

- 풍경 & 자연 ★★★★★

올라가서 굼부리 내려다 보면 자동으로 ‘와’ 함

- 난이도 (낮을수록 쉬움) ★★★

경사가 아주 심하지는 않아도 꽤나 넓음

- 감성 & 사색 ★★★

사색이 필요하다면 주변에 무료 오름을 추천


✦ 중문 색달해수욕장 정보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색달동 중문관광로 72번길 29‑51

- 전화번호: (064)738‑9360

- 운영 시간: 24시간 개방 (기상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

- 주차: 공영 주차장 있음 (약 150대 수용)


✦ 한 줄 평 & 별점

- 영화 감성 ★★★

아는 사람 눈에는 보일 한국 에로영화사의 맨살

- 교통 & 접근성 ★★★★☆

중문관광단지와 매우 인접하고 주차장 아주 넓음

- 풍경 & 자연 ★★★☆

신라호텔에서 한 눈에 내려다보면 좋지만, 해수욕장에서는 굳이

- 난이도 (낮을수록 쉬움) ☆-★★★★★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난이도 천차만별

- 감성 & 사색 ★★★

사색을 자꾸 방해하는 살색


*여행길에 들으면 좋은 노래

- 주정이, 서글픈 사랑(<애마부인>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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