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입안이 그냥 호강허난 제주 맛집 <4>

제주동백을담다, 연정식당, 정의고을 메밀꿩칼국수

by 신동욱

다시 제주 답사길에 올랐다. 2박 3일 짧은 일정인데 동선이 만만치 않다. 성산일출봉부터 중문 색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긴 길 위에 점 여섯 개를 찍었다. 물류 배달하듯 '찍고 턴' 해도 족히 반나절 거리다. 답사지들도 흩어져 있어 숙소를 한 곳으로 정하기 어렵다. 고민 끝에 공항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를 골랐다. 2박 일정을 쪼개 짐을 싸고 푸는 건 번거롭다. 그보다는 공항 가까운 곳에 베이스 캠프를 차리고 이쪽 저쪽 다니는 게 낫다.


'간드락게스트하우스'는 답사객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한다. 버스 정류소가 숙소 바로 앞에 있고, 편의점도 100m 거리 안에만 두 개가 있다. 2박 가격이 4만 원이다. 내도록 돌아다니다 숙소에서 잠만 잘 뿐인 답사객에게 합리적이다. 짐을 풀고 나니 숙제가 생겼다. 밥을 먹어야 한다. 답사 다니느라 그을은 피부색이 좀체 돌아오지 않는다. 어디다 구워야 나올 피부색이다. 여기에 살까지 빠지면 봐주기 민망한 몰골이 된다. 숙소와 가장 가까운 식당은 다름아닌 '이재모 피자'다. 본점이 부산 남포동에 있다. 기막힌 맛이지만 부산 사람이 제주까지 와서 먹을 이유는 없다.


제주동백을담다

'제주동백을담다'는 제주여중·고 바로 앞에 있다. 학생들이 좋아할 메뉴는 아니다. 몸국, 고사리육개장, 고(등어)구이와 물회까지 술 좋아하는 사람 안주 메뉴로 딱이다. 나는 몸국과 내장을 주문했다. 몸국은 제주도 향토 음식이다. 돼지고기 삶은 물에 몸을 넣어 끓인다. 기호에 맞게 청양고추와 고춧가루를 넣어 먹기도 한다. 처음 제주도에 와서 몸국을 먹을 때 '몸'이 고기를 말하는 줄 알았다. '몸'이 그야말로 '몸'인 줄 알았던 건데 그게 아니라 모자반을 말한다. 제주도 어느 해안에 가면 모자반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해안에 방치돼 경관을 해치고 비린내를 내기도 한다. 조업 선박 운항을 방해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대개 괭생이모자반이다. 식감이 억세 먹을 수 없다. 몸국 재료로 쓰이는 흔히 모자반은 참모자반이다.


대정 쪽 '강셰프의 키친'에서 먹어 본 몸국은 된장 맛이 깊었다. 제주시청 '호근동' 몸국은 기름지고 가게 분위기가 좋았다. 여긴 정확한 맛이다. 제주 몸국 하면 상상하는 맛 그대로다. 육수가 깊고 된장을 넣어 맞춘 간이 딱 맞다. 몸이 적당히 들어가 있어서 국물도 여유있다. 더 맛있는 건 같이 나온 내장이다. 잡내 하나도 없이 간간하면서 질기지 않고 식감이 부드럽다. 혼자 먹기 아쉬운 맛이다. 사람 입맛이 크게 다르지 않은지 포털에서 제공하는 가게 후기도 좋다. 가게는 들어올 때만해도 한산했는데 나갈 때 보니 제법 사람이 찼다. 혼자 먹을 수 있는 테이블도 있어 제주시와 숙소가 가까운 여행객에게 추천한다.


숙소에 돌아오니 게스트하우스 주인께서 식사하셨냐며 인사하신다. 몸국을 먹고 왔다고 하니 대번에 "제주동백을담다 다녀오시면 되는데" 하셨다. 마침 거길 다녀왔다고 하니 잘하셨단다. 현지인 맛집을 잘 찾아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 제주동백을담다

- 맛 ★★★☆ 감초 연기가 맛깔나는 장르 영화

- 가격 ★★★★ 이 맛에 이 정도 양에 이 가격이면 4성 장군

- 분위기 ★★☆ 특별한 운치나 개성은 없는 곳

- 접근성 ★★★★ 시내도 가깝고 버스 정류소도 가깝고


연정식당

'연정'은 회사에 연차를 내고 종일 답사에 동행하며 운전해준 선배가 저녁까지 사주겠다며 데려가준 곳이다. 전국 영화 촬영지 답사기를 책으로 쓰겠다며 퇴사한 후배를 격려해준 감사한 선배다. 덕분에 이날 하루 운전도 안 하고 호강했는데 술까지 얻어 마시려니 입이 민망했다. 그래도 저녁 식사는 하루 일정 중 가장 기다려왔던 시간이다. 내가 선배에게 선물로 준 건 겨우 금정산성막걸리 세 병이었는데. 살아온 이력에 비해 훌륭한 인복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이미 알려진 맛집인 것 같았다. 수요일 저녁이었지만 '연정'엔 이미 사람이 많았다. 선배는 가브리살을 먹어봐야 한다며 3인분을 시켰다. 파스텔톤 선홍빛 영롱하기가 꽃보다 고운 고기가 접시에 담겨 나왔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이었다. 가브리살은 쫄깃한 식감이 생명이다. 육즙이 많고 고소한 건 두 번째다. 일단 어금니에 짝짝 붙어야 한다. '연정' 가브리살에서 딱 그 맛이 났다. 이 고기를 졸인 젓갈에 찍어 먹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역시 맛집을 찾을 때 현지 사는 지인만큼 든든한 사람은 없다. 마무리는 청국장 볶음밥이다. 밥은 두 사람 기준 한 공기로 충분했다. 볶음밥용 냄비에 청국장을 끓여 남은 고기를 마저 넣고 볶아 먹는다. 그 감칠맛이 아직도 입에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도 이제 결혼했고 선배는 아이가 둘이지만, 이때만큼은 대학 다니며 함께 과제 영화 찍고 축구하던 20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유독 동선도 길고 비까지 내린 날이었다. 제주 막걸리 한 잔에 가브리살로 이날 제주에서의 밤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찐단골'들은 이곳에서 더러 뽈살 한 판을 시켜 먹는다고 한다. 매직으로 메뉴판 제일 아래에 써두었기 때문에 자세히 봐야 먹을 수 있다.


✦ 연정식당

- 맛 ★★★★☆ 누구라도 ‘하정우 먹방’ 가능한 맛

- 가격 ★★★★ 1인분 더 추가하기엔 살짝 선배 눈치보이는

- 분위기 ★★★★ 공간 밀도로 보면 성산일출봉보다 사람 많음

- 접근성 ★★★★ 어디서 내리든 5분은 걷자


정의고을 메밀꿩칼국수

나는 면을 좋아한다. 면 요리는 대개 젓가락질 세 번에 깔끔하게 비운다. 아내는 천천히 먹으라고 하지만, 나는 끊지 않고 쭉 빨아당겨야 면 요리 먹은 것 같다. 냉면집에서 으레껏 가위를 주시면 쓰지 않고 그대로 다시 드린다. 그런데 평소대로 먹을 수 없는 면 요리가 제주도에 하나 있다. 메밀꿩칼국수는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한다. 면발이 짧고 두께감도 있는데 100% 메밀로 만든 전통 방식 반죽을 사용해서 쫄깃한 맛은 적다. 먹어본 중에서는 가장 가까운 음식이 수제비인 것 같다. 먹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사실 빨리 먹을 수 있더라도 천천히 먹어야 한다. 메밀꿩칼국수는 건강에 좋은 슬로우 푸드 느낌이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땐 기대하는 맛이라는 게 있다. 상상하던 그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만 않으면 평균은 먹고 들어간다. 가게 재방문 의사는 그 편차가 얼마나 적냐에 달려 있다. 그 맛이 예상을 훅 벗어나면 모 아니면 도인데, 메밀꿩칼국수가 딱 그런 음식이다. 면치기 좋아하는 분들은 '이게 아닌데' 싶을 식감이다. 반면 나처럼 처음 먹어보는 음식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면 뜻밖의 맛에 눈이 커진다. 내게 꿩메밀칼국수는 음식 자체로는 무조건 '모'다. 이제 관건은 하나다. 그 집이 꿩메밀칼국수를 잘하는 곳이냐는 것이다.


'정의고을 꿩메밀칼국수'에는 배우 사인이 딱 한 장 붙어 있었다. 배우 고두심 사인이다. 사인에다가 이렇게 써두셨다. "참말 제주 맛이우다예." 다른 유명인 사인이 아무리 많은 식당이더라도, 제주도에서는 이 사인 한 장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보증인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고두심 선생님이니 믿고 먹을 수 있다. 음식 자체가 취향에 안 맞으면 몰라도 요리 못하는 가게는 아니라는 뜻이다. 주문한 꿩메밀칼국수 한 그릇을 받고 나름 평소보다 더 진지하게 맛을 본다. 진한 국물과 면발을 숟가락으로 떠 후루룩 먹으니 든든한 국밥 한 끼를 먹는 기분이다. 동문시장 골목식당에서 먹었던 메밀꿩칼국수와 편차가 거의 없는 깊은 맛이다. 무엇보다 영화 촬영지 제주 답사를 마치는 마지막 식사를 고두심 선생님 다녀간 식당에서 할 수 있어 좋았다.


정의고을은 지금으로치면 영화 <이재수의 난>과 <내 이름은> 촬영지인 성읍민속마을을 말한다. 민속마을로 지정돼 오랫동안 제주 향토색을 유지하는 곳이니,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 '메밀꿩칼국수' 앞에 붙을 수식어로는 딱이지 않나 생각한다. 이공이오공구공이


✦ 정의고을 꿩메밀칼국수

- 맛 ★★★★☆ 어려워도 한 번씩 봐야 하는 예술 영화

- 가격 ★★★★ 2000원 정도는 더 받아도 먹을 맛

- 분위기 ★★★ 밖에서만 보면 곧 문 닫을 것 같지만

- 접근성 ★★★ 주차장 없는데 불법주정차 단속도 엄격한 곳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