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게 많은 나를 인정하기까지
"너는 색깔이 없어."
초등학교 쯤이었을까.
당시 열심히 율동연습을 하고 있던 나에게 선생님이 건넨,
뜻은 잘 모르지만 눈치 있게 알아들은 좋지만은 않은 말이었다. 색깔이 없다니. 그래서 내가 지금 율동을 잘한다고? 못한다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색깔이고 나발이고 간에 그 때의 나는 그저 알려주는 것만 잘해내면 되는거라 생각했다. 이후에 그렇게 말씀하신 선생님께서 수습한답시고 그 말이 그리 나쁜게 아니라 이것 저것 잘하다보니 특색이 없어보여서 그렇게 말한거라고 말씀하셨다.(저게 무슨 개똥같은 말일까. 다 잘하는 것도 특색일 수 있지 않나(?)) 하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그 말을 애써 칭찬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고, 그 말이 내 맘속에서 눈덩이 처럼 불려져 나라는 사람은 '할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이라는 은근한 믿음을 가지게 해줬다.
그 믿음이 어른이 되서도 죽지도 않고 살아있었는지, 상황 때문이었는지, 한동안 안해보던 일을 해보려는 용기가 생겼다. 여러번의 면접과정을 거쳐내고 어렵게 정규직이 되었다. 급여는 2012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지만, 정규직이라는 이름 하나로 얻게 되는 미래의 안정감을 생각하면서 버텨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한 일주일이 지났을까.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너무 자만했다는 것을.
면접에 합격했다는 천국과 이 일이 정말 나랑 안맞다는 지옥을 연달아 경험하면서 참 괴로웠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준비했고, 초조함을 견뎌내면서 얻은 자리였는데 단순히 해내기 어렵다는 마음으로 그만둬야 하는걸까? 내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까? 여느 때처럼 일을 배우는 시간과 과정인데 왜 내가 이 정도로 심각하게 생각하는 걸까? 내가 이 정도도 못하는 인간이었나?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나라는 사람의 무능력함에 대해서 우울해했다.
슬펐다. 가뜩이나 나라는 사람은 가진 것도 많지 않다 느꼈는데,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니 스스로가 하염없이 작아보였다. 이런 생각에서 스스로 어느 부분이 괜찮다고 다독여야할지, 그래서 어느 부분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답이 없다고 느꼈다. 아마 그 일이 특출나게 뭔가를 잘해야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더 그렇게 느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일' 하나로 "할 수 있는 게 많은 사람"에서 "할 수 없는 게 많은 사람"으로 강등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창 우울해하고 있을 때 남편이 힘이 많이 되어줬다. 위로라는 게 특출난 말로 해주는게 아니라 같이 이해해주고 너도 겪어본 마음, 나도 겪어봤다 싶은 마음으로 해주는 게 아닌가. 남편이 해준 말은 참 평범했지만, 당연했고, 그래서 더 위로가 되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다 할 수 있겠어, 자기한테 그 일이 정말 안맞았던 거지"
생각해보니 나는 신도 아닌데, 욕심도 참 많았다. 뭔가에 대한 자격요건을 떠나서 내가 버틸 수 있는 일이 있고, 세상이 둘로 쪼개져도 안되는 일이 있는데, 내가 뭐라고 세상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사람들에게는 각자 개성에 맞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에서도 보면 처음 캐릭터를 정할 때, 전투에 특화된 캐릭터를 고를 것인지, 힐러(Healer)를 고를 것인지, 법사를 고를 것인지 등등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나오지 않나.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와 더 다양한 개성들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사람'이라는 한정적(限定的) 존재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각자가 가치 있고, 마치 한정판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혹시나 나와 같이 스스로의 무능함에 있어서 슬퍼하고 있는 사람에게 내 의식의 흐름(?)이 위로가 되었으면 싶다.
무능한 게 아니라 아직 발견을 못한 것이고, 발견하기 위해서는 아프게도 몇번의 실패를 경험해봐야 안다는 게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싶다. 짧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 중이지만, 그 짧은 삶 속에서도 다양한 일이 일어나더라. 실패가 많이 무섭다는 걸 알지만, 안해보고 죽는 거 보다야 해보고 죽는 게 덜 후회하지 않을까? '사람'이니까 궁금해할 수도 있지 않나. 호기심을 용기로 바꾸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런 거 저런 거 많이 부딪혀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치열하게 살다가 '이거는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짓이다' 싶으면 그냥 그 자체로 인정하고 지나가는 것도 미덕이라 생각한다. 다시 딴 길을 알아보는게 좀 귀찮을 수도 있겠지만, 귀찮다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버텨야 하는 것이고, 못해먹겠다는 마음이 더 크다면 또 다시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귀찮음과 못해먹겠다는 마음, 둘 중에 골라야 되는 일이다.
이러나 저러나 각자는 참 개성 강하고, 생긴 것도 다르고, 각기 다른 색을 품고 있는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다. 그리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무기 또한 다를 것이니, 그 무기를 어떻게 사용할 건지는 '나'라는 사람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