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누구나 많은 노래를 듣습니다. 어떤 노래는 노랫말이 좋아서, 어떤 노래는 리듬이나 멜로디가 좋아서 마음에 담습니다. 그런 노래들은 플레이리스트에 넣기 마련이죠. 꽂히는 노래가 생기면 질릴 때까지 반복해서 듣습니다. 며칠이 되기도, 몇 달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내 마음을 그 한 곡에 줘버리고 나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느낄 때쯤 슬슬 다른 노래를 찾습니다.
전 일본 노래를 잘 모릅니다. 이따금 몇 곡을 듣고 나면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추가로 알게 됩니다. 히라이 켄은 1972년생으로 183센티미터의 훤칠한 키를 지닌 싱어송라이터 겸 모델이라고 합니다. 서구권의 얼굴을 지니고 있지만 순수 일본인 혈통이라고 하네요. R&B 계열의 노래를 주로 부른다고 하고, 오리콘 차트를 여러 번 정복할 만큼 인기도 많다고 합니다. 전 사실 몰랐습니다. 하지만 ‘Nonfiction’이라는 노래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한동안 잊지 못할 거예요.
꿈은 이뤄지지 않는 편이 더 많아/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부러워, 나 자신이 싫어지지/얕은 잠에 짓눌려질 것 같은 밤도 있어/상냥한 이웃이 그림자 뒤에서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다거나/타성에 젖어 보고 있던 텔레비전을 끄는 것처럼/살아가는 걸 가끔은 그만두고 싶어/인생은 고통인가요? 성공이 전부인가요?/난 당신이, 당신이 그저 보고 싶을 뿐/초라해도 좋으니까, 욕심 가득해도 좋으니까/난 당신의 진심을 알고 싶으니까
일본 노래는 해석을 할 수 없어서 보통 해석본을 찾거나, 번역기를 돌려 한국 노랫말을 확인하면서 듣고는 합니다. 첫 구절부터 몸을 멈춘 채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꿈은 이뤄지지 않는 편이 더 많아”라니요. 이거, 지금 내 이야기인가 생각했어요. 게다가 그다음 이어지는 노랫말을 보세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부러워, 나 자신이 싫어지지”라고 말하네요. 제가 그런 사람이거든요. 끊임없이 누군가를 의식하며 나보다 잘난 누군가를 찾아냅니다. 그러고는 열등감에 사로잡히죠. 그건 제 자신을 향한 경멸감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살아가는 걸 가끔은 그만두고 싶어”라고 느끼게 됩니다. 윤회하거나 부활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한 번을 사는데 고작 이런 인생이라니. 어떨 때는 비참한 현실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렴구의 한마디에 저는 무너졌습니다. “인생은 고통인가요? 성공이 전부인가요?” 정말 제가 묻고 싶었던 말입니다. 정말 인생은 고통뿐입니까? 성공하지 못하면 살 이유가 없습니까? 그 노랫말 때문에 노래를 몇십 번은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아뇨, 실은 몇백 번 이상 들었어요. 왜 나는 여기에 있고, 그들은 왜 저기에 있을까요. 왜 나는 고통스럽고, 그들은 행복하게 웃고 있을까요. 왜 세상에서 나만 불행한 것 같다고 느껴질까요. 그 노랫말에 마치 제 지난 모든 인생이 흐르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중학생 시절 너무 느꼈던 좌절, 고등학생, 대학생, 군대, 사회생활… 그 모든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이 노래가 필요했어요. 몇백 번이고 들어야 했죠.
히라이 켄은 그다음 이렇게 말하는군요. “난 당신이, 당신이 그저 보고 싶을 뿐”이라고요. 그래요. 제게도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사랑한다는 게 알려준 그 많은 이들, 내 잘못과 실수 같은 허물을 모두 따뜻하게 감싸며 어깨를 두드려준 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지금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대부분은 지금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차가운 세상에는 날 외면하는 사람들만 남아 있어요. 가끔은 그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묻고 싶습니다. 인생은 고통인가요, 성공이 전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