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듣는 노래
제 경우에는 듣자마자 반하는 노래는 흔한 편이 아닙니다. 대개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야 귀에 들어오죠. 하지만 이 노래는 달랐습니다. 어떤 날의 ‘초생달’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3인조 밴드 ‘옥수사진관’은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출신의 노경보와 영화음악 감독 김대홍, 작곡가 겸 연주자인 김장호 세 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옥수동에 작업실이 있는 데다 셋 모두 사진 찍기를 좋아해 밴드 이름을 ‘옥수사진관’이라 붙였다고 합니다. 인디스럽고, 홍대스러운 이름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소리를 내 발음하기 좋아 몇 번이고 독백해봅니다. 옥, 수, 사, 진, 관. 부드럽고 정겹게 느껴지는 발음이 아닌지요. 발음처럼 옥수사진관의 음악은 부드럽고 감성적입니다. 활동 기간에 비해 발표한 앨범의 수는 적지만 수록곡들은 하나같이 여운이 짙게 남습니다.
2014년 발매한 2집 <Candid(솔직한)>의 수록곡 ‘겨울’은 특히 아직 더 기다려야 하는 겨울을 떠오르게 해줍니다. 노경보가 “차가운”이라고 첫 노랫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저는 이 곡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소리/그 바람에 날리는 눈송이/창밖은 어느새 하얀 세상이 되어서/이제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아무도 지나지 않는 거리/외롭게 깜박이는 전구불/나도 모르는 새 거리에/혼자 나가서 발자욱을/조용히 남겨보네/한참을 걸어 얼마나/멀리 왔는지도 모른 채/낯선 골목에 서서/이제는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지도 모르지/한참을 멈춰 서 있네/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사랑했던 사람들의 기억/눈은 또 내리고 지워진 발자욱/위로 조용히 걸음을 되돌려 보네/얼마나 멀리 왔는지/발걸음은 하얀 세상 속으로
밴드 연주에다 현악기까지 더해진 잔잔한 음악 속에서 노경보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이어집니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선명하게 ‘겨울’을 떠올리게 하는 노랫말입니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고, 그 바람에 날리는 눈송이를 떠올립니다. 창밖 세상은 어느새 하얀 세상이군요. 아무도 지나지 않는 거리에는 외롭게 깜박이는 ‘전구불’만 남아 있습니다. 그 고요한 순간을 참지 못해 화자는 혼자 나가 ‘발자욱’을 남겨봅니다. 한참을 멈춰 선 그 거리에서 그는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이제는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지도 모르지.’ 그가 내딛었던 ‘발자욱’들은 하얀 세상 속에서 지워지고, 그는 이제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혼잣말을 내뱉습니다. 혼자 남아 있는 그 방으로 말입니다.
혼자 있는 방에 머문 화자와 창밖의 하얀 세상, 그리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추억과 회한이 느껴지는 노랫말입니다. 담담하지만 깊게 마음속을 파고듭니다. 한 번을 다 듣고 나서도 여운이 지워지지 않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이 노랫말에는 어려운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쉬운 단어, 쉬운 표현으로 복잡다단한 인간의 마음을 표현해내고 있어요. ‘한 곡 반복 듣기’로 노래를 듣다가 문득 두 개 단어에 시선이 쏠립니다. ‘발자욱’과 ‘전구불’입니다. ‘발로 밟은 자리에 남은 모양’을 뜻하는 ‘발자욱’은 표준어가 아닙니다. 다들 알다시피 ‘발자국’이 표준어입니다. 물론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서는 종종 쓰이긴 합니다. ‘전구불’도 원래는 ‘전구 불’로 띄어서 쓰거나 ‘전등불’로 쓰는 것이 맞습니다. 왜 비표준어를 썼을까. 궁금했습니다.
우선 ‘전구불’이 처음 등장하는 대목을 보시죠. “외롭게 깜빡이는 전구불”입니다. 어감상 ‘전등불’이라고 하면 느낌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굳이 붙여서 ‘전구불’이라고 썼네요. 화자는 ‘전구불’을 하나의 고유명사로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러니까 아무도 없는 거리에 혼자 남아 있는 그 ‘전구불’이 자신과 같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화자는 표준어가 아닌 ‘전구불’을 써서 자신만의 흔적을 새기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전구 불’과 ‘전등불’은 다른 사람들도 흔히 쓸 수 있는 단어이니 화자만의 시그니처가 담겼다고 보기 어렵겠지요.
그다음은 ‘발자욱’입니다. ‘전구불’을 본 화자는 자신도 모르는 새 거리에 혼자 나가서 발자욱을 조용히 남겨봅니다. 발자국이 아닙니다. ‘발자욱’는 표준어보다 포근하고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딱딱한 ‘국’보다는 ‘욱’이 더 살갑게 느껴지지 않던가요. 화자는 차가운 겨울 거리에서 조용히 자신만의 따뜻한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의 흔적을 알아봐 줄까요. 사랑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에 몰골하는 사이 그의 ‘발자욱’은 눈에 덮이고 맙니다. 이제 하얀 세상은 그의 발자욱을 지운 걸까요.
이 노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화자는 지워진 발자욱 위로 조용히 걸음을 되돌립니다.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자신의 숱한 발자욱을 남길 게 분명합니다. 때마다 하얀 눈이 그의 발자욱을 지우겠지만,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이 하얀 세상은 자신을 스쳐 간 모든 발자욱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쌓이고 쌓인 발자욱들이 겨울 거리 곳곳에서 떠돌아다닙니다. 이따금 다시 돌아가야 하는 화자에게, 그리고 제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넌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걸어가도 된다고. 겨울은 제가 남긴 발자욱들이 떠도는 계절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더욱더 겨울이 기다려집니다. 옥수사진관의 노래를 통해 아직은 머나먼 겨울을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