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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학 접어봤어?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 (여행스케치)

by 레몬트리

종이학 접어봤어?

ft.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 (여행스케치)






: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조심스레 네게 한발 다가서면

: 의지할 곳 없던 우리는 작은 날갯짓으로 서로의 유일한 떨림이 되어

: 음악으로 쓴 시는 곧 사랑의 편지로 너의 마음에 필체를 남기고,

: 악기가 만들어 낸 화음은 곧 설렘의 날갯짓으로 너의 가슴에 내려앉는다.


그렇게, 드디어, 마침내, 만날 인연

그래서, 결국, 끝내, 사랑할 운명

나의 음악, 나의 노래, 나의 시가 될 너에게 -





어떤가요?

좀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조금 설레기도 한가요?

[나의 음악]으로 사행시를 짓는 이벤트가 있어서 사행시를 짓다가 오늘의 연재글도 이어서 써봅니다.


'썸'이란 이름으로 초반의 설렘과 짜릿함만 맛보고, 서로를 알아볼 새도 없이 식어버리고, 끝나버리는 연애가 다반사가 된 썸의 시대

사귀는 내내 손편지라곤 주고받을 일이 없는, 메신저나 SNS로 줄임말로 최대한 짧게 이야기하는 게 센스인, 길게 이야기하면 꼰대가 된듯한 MZ세대.

상대방의 마음이, 영혼이 어떤지는 알아볼 새 없이 제품 설명서처럼 보이는 사진 속 스펙과 외모를 스캔해서 만남을 하는, 게다가 마음을 확인하기도 전에 스킨십을 상대와의 중요한 필요충분조건으로 먼저 확인해야 하는 정신없이 LTE 세대.


카카오톡이나 인별 DM으로 친구들과 고백을 주고받고, 소통을 하는 중2 아기새를 키우면서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는 경우가 허다한 요즘입니다.


비단 젊은이들의 사랑만 요즘 아이들이어서 일까요?

아니요, 나이가 들면 드는 대로 시간이 빨리 흘러가고, 남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더 급해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빨리 만나보고 아니면 또 빨리 아니다를 판단하고.

그것이 서로를 위한 것이고 시간낭비, 감정낭비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동조해서 시대가 그렇게 흘러가는 흐름을 막을 순 없고 틀렸다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조선의 사랑과, 개화기의 사랑, 지금의 사랑

사랑의 본질이 같아도 모습과 방식은 다양하게 변화해 왔으니까요.


편지.jpg 학창시절 친구들에게 받았던 추억의 손편지 ^^


하지만 문득문득

천 번을 접어야 학이 된다는 사연을 가지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고백을 하려고 종이학을 접고, 별을 접어 예쁜 유리병에 담아 수줍게 교회 담장에서 전하던 풋풋함.


꾹꾹 눌러쓴 손 편지에 감동적인 사랑 시나 영화 속 명대사, 책 속 명언을 하나씩 골라 내 마음을 대신해서 고백했던 그 조심스럽고 소중한 마음.


목소리라도 한번 듣고 싶어서 집 전화로 전화를 걸었다가 그 아이가 받으면 "여보세요" 목소리만 몇 번 듣고 끊어버린 용기 내지 못했지만 님을 향한 그리움.


도서관 저 쪽 맞은편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어느 날 빈자리에 조심스럽게 올려둔 작은 쪽지와 캔커피.


이제는 그 시절 기억도 가물가물해지지만,

요즘은 보기도, 듣기도 힘든 이야기가 되버린 추억이 그리운 날이 있어요.



그리고 가끔 이렇게 빠른 시대에도

자기만의 속도를 가지고 느리게 가는 사람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몇 번은 사귀고 헤어졌을 시간 동안,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무거워 꺼내지 못하는 사람.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 봐 내 감정을 열 번 스무 번 돌다리를 두드려 보며 한발 한발 어렵게 내딛는 사람.

극지방 빙하처럼 바다 아래 헤아릴 수 없이 큰 마음을 숨겨두어도 바다 밖으로 표현은 삐죽 빙산의 일각으로 수줍게 조심스레 보여주는 사람.


그런 마음을 잘 표현한 노래를 오늘의 사행시로 표현하고 소개해봅니다.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

난나직이.jpg


사랑이 뭔지 어렴풋이 알게 될 무렵 이 노래를 듣게 되었을 때

아, 이 노래야 말로 "고백"이고 "연애편지"구나 했어요.

가사의 단어 하나하나도 - 조심스럽게 / 두렵게 / 떨림에 / 잠을 설치고 / 설렘 / 두려움

사랑을 시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지만 노래를 직접 들어보면, 숨소리, 호흡하나까지 가수는 사랑에 빠진 이가 연인을 위해 불러주는 것처럼 떨림을 담아 노래를 부릅니다.


한동안 이 노래를 아침저녁으로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수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떨림이 가슴을 울렸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


아, 그리고 이 노래를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꼭 함께 소개하고 싶은 시가 있었어요

저의 영원한 낭만 소년 윤동주.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랑에 대해 이처럼 잘 표현한 시가 또 있을까 싶은 아끼는 시예요



달같이.jpg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듯 (달이 차는 걸 바라보듯)

너를 향한 나의 마음도 점점 무르익고 채워져 가고

가끔은 까만 밤, 바라보는 달을 보며 문득문득 충만함 속에 외로움과 공허함도 느껴지겠지만,

나무의 나이테가 밖에서 보이진 않지만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한줄한줄 덧대여 지며 줄기가 굵어지듯

그렇게 연륜이 되어.

나의 너도 내 마음에 그렇게 채워져 가길, 확실한 선을 남기며,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하길

나직이, 조심스레, 조용히,


수줍게 꽃집을 서성이며 꽃을 고를 일도 없이, 꽃배달이 되고 무인 꽃가게가 24시간 영업을 하는 낭만이 사라진 시대이지만,

오래 우려낸 사골국에서 내는 깊은 맛과 오래된 된장에서 만들어낸 감칠맛을

순식간에 아무나 흉내 낼 수 없기에 종갓집, 50년 전통집, 명인이 존경받고 인정받는 것처럼



조금 더디고 느려도 클래식한 사랑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칭찬과 응원을 보냅니다.


종이학 접어봤어?

오늘부터 접어볼까? ^^




* 곡을 들으시려면

https://youtu.be/h6DGUdetqLs?si=l_of-7uK15hF0k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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