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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빔의 마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옛날 육아일기

by 레몬트리


설빔


어릴 때 설이나 추석이 되면, 엄마 아빠가 늘 새 옷과 새 신발을 사주시니까,

세뱃돈만큼이나 설레던 것 중에 하나가 명절에 새 옷을 사는 것이었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그래도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명절에 꼬박꼬박 한복을 입기도 했고,

친척들 집에 방문하기 전 목욕탕과 미용실, 설빔(새 옷)을 장만하는 게

명절의 기본 준비과정이었으니까요.


부모님께서도 명절에 사주시는 옷은 평소와 달리 조금 더 비싸고, 조금 더 예뻐 보이는 원피스나 투피스를 사주셔서, 새 옷과 새 구두를 신고 할머니댁에 갈 때는 뭔가 내가 공주가 된 것 같고,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간질간질, 붕~뜨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댁이니 친척 어른들 집 근처에서 동네 어른들이 "oo 왔구나~" "oo집 손녀구나?"라고 알아봐 주시면 좀 더 예쁘고 예의 바른 얼굴로 인사를 드리고 칭찬받는 기분도 좋았고요 ^^


그런데 제가 엄마이자, 가장이 되어보니,

설이나 추석은 참 돈이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기본적으로 부모님, 조카 용돈에, 본가가 부산이니 부산까지 왕복 교통비, 또 만나서 가족들과 외식이라도 한번 하려면 큰딸노릇 이럴 때나 하지 싶어 무리해서라도 좀 더 분위기 있는 맛집으로 모시고 가니 이런저런 비용에, 또 여기저기 받기만 할 수 없으니 선물 구입비 등등 아무리 아끼려고 해도 물가는 치솟고, 반대로 나잇값은 무거워져서 무리를 해서라도 도리는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명절은 늘 가계부를 보면 한숨이 나오지요.


새삼 나는 외동딸 하나 키우고, 지금은 시댁이 없이 친정만 챙겨도 이런데, 어릴 때 우리 엄마 아빠는 삼 남매를 키우시며, 양가 부모님에 큰아버지댁, 고모, 이모, 삼촌에 주렁주렁 조카들까지 다 챙기셨던 것 같은데,

명절이 얼마나 반갑고도, 한편으로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 앞에서 내 새끼 예뻐 보이라고 꼬박꼬박 설빔을 사입히셨던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한복3.jpg 손수 손바느질로 지어 입힌 한복 세벌 ^^ 시집갈 때 물려줘야지!



저라고 부모의 마음이 다르지 않더라고요.

부모님 때보다야 물질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졌고, 외동딸을 키우니 평소에도 옷이나 신발이 많아서 탈이지 부족함이 없지만, 저는 평생을 워킹맘으로 살아왔기에 아이에게 좀 더 애틋한 마음이 있었어요.

요리엔 취미나 소질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바느질, 다림질 하나는 기가 막히거든요. ^^


아기새 돌 때, 서너 살 때, 또 유치원 때 2~3년 간격으로 명절에 입을 한복을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만들어 입혔어요. 사 입히는 한복이 더 싸게 칠 수도 있고, 더 예쁠 수도 있지만,


명절 두어 달 전에 아기새를 재워두고,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며 비단조각이 옷이 되는 과정을 보며,

아무것도 모르던 핏덩이가 이렇게 커서 사람이 돼 가고 있구나 지난 시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건강과 안녕을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새벽까지 한복을 지었을 때 피곤하기도 했지만 뭔가 직장맘으로 평소에 미안했던 마음이 스르르 녹는 것 같고 예쁘게 입을 아기새 생각을 하며 마음이 행복해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색동한복을 두 번이나 시도해서 저고리 만들 때 색색깔로 하나하나 이어 붙이는 것과 금박을 입히는 작업은 정말 ㅋㅋㅋ 어려운 멀고도 먼 길이었어요 ㅋㅋ)

한번 또 완성하면 치맛단을 길게 만들어서 2~3년을 입으니, 그다음 명절에 아이가 부쩍 자라 치맛단을 조금씩 조정해서 내려줄 때의 기쁨은 또 어땠게요.


한복1.jpg 한 땀 한 땀 손바느질 하던 모성애의 시절 ^^



그렇게 아기새는 엄마의 눈물, 엄마의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지금은 비록 한복은 입지도, 보지도 않는 중2병을 앓고 있지만,

그래도 어린이집이며, 유치원에서 행사할 때 "우리 엄마가 만들어 준 한복이에요!"를 선생님 친구들에게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던걸 보면 아기새에게도 분명 소중하고 빛나는 선물이 되었던 것 같긴 해요.


지금은

우리 부모님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슬쩍 옷에 붙은 텍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너무 손쉽게 옷을 사줄 수 있는 시대가 되어 설빔의 의미가 무색해졌지만,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더니!

제가 이제는 한복을 짓지 않는데

몇 년 전, 마지막 어린이시절 한복은 또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이렇게 사서 보내셨었어요ㅜ.ㅜ


어린 시절 아기새의 한복을 모두 모아서 상자에 켜켜이 접어 보관하고 있어요.

나중에 결혼할 때 배넷저고리와 손싸개와 함께 전해주려고요

(T 아기새도 어른이 되고, 여자가 되면, 감동 받겠지요? 설마 그때도 지금처럼 에이...그렇지 않겠죠? ^^)


"가족들의 흘러넘치는 사랑으로 너의 오늘이 있었음을

먼 훗날의 네가 감사함으로 기억하길 바라며, "


주말에 설이니, 저도 본가가 있는 부산에 아기새와 함께 다녀올 예정이에요.

부모님께 드릴 선물, 용돈봉투,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부모님이 내 나이었을 때 짊어지셨을 명절의 무게가 조금 무거워 보여 애틋한 마음이 들었고,

이 맘 때의 사진으로 한복사진이 핸드폰에서 뜨니, 예전 나의 설빔과, 아기새의 특별한 설빔도 생각이 나서

그저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들어 추억을 들춰보았습니다 ^^

한복2.jpg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들과 즐겁고 행복한 명절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레몬트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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