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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인형, 끊어진 인연

끊어진 키링을 보고 통곡중인 딸을 보며,

by 레몬트리


아기새를 깨우러 방에 들어갔더니 아침부터 울고 있어요.

어디 아픈가 싶어 깜짝 놀라 왜 그러냐 물었더니,

참,, 이게 뭐라고

엄마가 사준 키링에 인형이 떨어졌는데, 어디서 떨어졌는지,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고,

"엄마가 사준건데...."라고 나만한 딸이 아침부터 대성통곡을 하고 있던 것.


"너 왜 이래 ㅋㅋ 안어울리게"라고 대꾸했지만,

그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아침부터 닭살돋게 으스러지게 안아줬어요.

비싼것도 아니고,

몇달 전에 인왕산 다녀오는 길에 지하철역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산에 다녀온 뿌듯함으로 기분좋게 비싸지도 않은 토끼모양 키링을 하나 사주었는데,

너무 신나하며 다음날부터 책가방에 걸어두고 다녔던 것.


선물을 건네줄 때 제가 생각한 마음보다, 받을 때 아이가 훨씬 더 크고 귀한 마음으로 받아준 것 같아서

내 작은 정성을 훨씬 더 깊고 따뜻하게 마음에 간직해 준 것 같아서

감동을 주려고 했던 게 오히려, 제 마음에 감동이 밀려왔어요.


마음이란 그런거같아요.

내가 온 마음을 전해도, 상대가 그 마음의 크기와 깊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저 그런가보다 지나쳐버리면

모든걸 주어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아주 작은 마음을 슬쩍 전했는데도, 훨씬 더 기뻐하고, 훨씬 더 가치있게 알아봐주고 소중히 받아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세상 전부가 되기도 합니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나,

아이는 아침부터 제게 또 가르침을 주네요.

(평소에 '진 to the 상' 이어도 이렇게 뜬금없이 어느날 조금씩 저를 어른으로 만들어주니, 밥값은 톡톡히 하는듯 ^^)


키링에 귀엽게 달려있던 인형이 온데간데 사라지고 쇠 고리만 남아있는 걸 보고

끊어진 '인형' 하나에도 우린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끊어진 '인연'에 우린 얼마나 아프고 또 아플까요.


아이가 끊어진 인형에 눈물바다가 된 모습을 달래주고, 출근하는 길

끊어진 인연에 속상했던 어느 날이 떠오릅니다.


아이가 매일 함께 다니던 그 인형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끊어질 지 예상치 못했던 것처럼

저는 좀처럼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성격인데, 한참 전 어느 늦가을 골프를 치러 필드에 나갔다가 아끼던 볼 마커를 잃어버렸어요. 매 홀마다 그린에서 쓰는거니, 분명 앞 홀에서 사용했으니, 잃어버린 구역은 겨우 전 홀에서 이번 홀 - 딱 그 거리뿐인데, 주변을 아무리 두리번거려봐도 늦가을의 낙엽들 사이로 보이질 않고, 게임은 계속 진행되니 앞으로 카트는 계속 전진하고...분명 잃어버린 걸 알았는데 손 쓸 틈 없이 그저 속수무책이었지요.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하고, 첫 필드를 나가기 전에 그와 함께 하나씩 다정하게 나눴던 미키와 미니 볼마커였는데, 그런 의미있던 물건을 잃어버리니 조금 찜찜하고, 석연치 않은 기분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죠.


그런데 우리는 그 다음날 아주 사소한 다툼이 발단이 되어, 몇 년간의 만남의 시간을 뒤로하고 마침표를 찍었어요.

우리의 마침표는 사실 그날의 사소한 그 말다툼 때문이 아니었다는걸 알고 있어요.

커피의 향긋하고 따뜻함 이면에 머신기 구석구석 켜켜이 쌓인 커피가루 찌꺼기가 어느날부터 커피머신을 삐걱거리게하고 어느날 갑자기 토해내는 듯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고장이 나버리듯, 우리의 마침표도 그간 쌓여온 서로간의 서운함, 불만, 갈등, 그 모든 찌꺼기 같은 감정들이 쌓여 어느 순간 우리를 멈추게 했겠지요.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내가 그날 볼마커를 잃어버린게 불행의 징후 아니었을까, 내가 그걸 끝까지 찾아냈다면 우리는 다음날 다투지 않았을까? 의미없는 자책임을 알지만, 예상할 수 없던 시기에 마침표를 찍은게 못내 속상해서 혼자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떨어져버린 아이의 인형도, 잃어버린 나의 볼마커도,

아마 이별의 순간을 알았다면 좀 더 소중히 했거나, 마음의 준비라도 해서 그렇게 당혹스럽지는 않았겠지요.

한낱 물건도 이러할진데, 사람과의 관계는 더욱 그렇겠지요.


"이 다음에 잘해줄께", "이 다음엔 좀 더 먼저 양보할께", "다음 번엔 먼저 미안하다 말해야지, 먼저 사랑한다 말해야지." 하다가 이 다음이 영영 허락되지 않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 되어요.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지면...",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조금만 더 이해해주면..."하다가 조금만이 한참이 되어도 기약없는 희망고문에 상대의 마음만 희미해져 가기도 하고요.


내가 말한 "이 다음"과 "조금만"이 설령 그 순간만큼은 핑계나 거짓이 아닌, 진실어었다해도, 어떤 이유든 우린 한치 앞을 알 수 없기에 '지금 이 순간'을 놓친 '이 다음'은 내게 허락되지 않고, 뒷전으로 미뤄 둔 '조금만'은 찾으려 할땐 조금만 아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버릴지도 몰라요.

그래서 사람은 뒤늦은 미안함과 자책에 휩싸이기도 하고, 후회라는걸 하게 되는 거겠지요.


"이랬었다면, 저랬었다면"이나 "그렇게 할껄, 그렇게 하지말껄"과 같은 후회의 말은 아무 힘이 없는 그림자같은 말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형체가 있지만 아무것도 잡을 수도, 끌어안을수도, 힘을 줄수도 없는 - 아무 힘없는 말 - 인거죠...


아이의 끊어진 키링을 보며,

크토록 엄마가 사준 작은 것 하나에도 감동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기적과 충만함을 느끼기도 했고, 또 반대로 언제 끊어질지 몰랐던 우리의 운명에 후회없게 진실하고 충실히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되돌아 보는 아침.


하지만 기왕이면 다음엔 아이도 저도 속상하지 않게 튼튼하고 야무진 키링을 잘 골라

아이의 발걸을 내딛을때마다 함께 박자를 맞추고, 아이의 하루를 지켜봐주고, 아무도 모를 속마음을 들여다봐줄, 오래오래 함께 할 아이를 곱게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출근길이었어요.


아참, 그러고 보니 키링은 열쇠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붙이고 다는 악세사리잖아요.

아이도, 나도, 우리도,

정작 우리가 키링으로 지키려고 했던건 열쇠니까요- 가장 소중한 것, 그것을 (그것이 마음이든, 물건이든 그 무엇일지라도) 잘 지켜내는 야무지고 후회없는 삶이 되길 바라봅니다!!


내게 온 소중한 모든 것들이, 귀하게 아껴가며,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아주 작은 마음으로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세상 전부로 만들 수 있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봄날다운 오늘'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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