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자우림)
역사적인 2002년 6월 22일, 월드컵 8강전에서 대한민국이 스페인과 승부차기까지 한 끝에 4강전에 진출한 역사적인 날, 그날은 제 스물세 번째 생일이었고, 저는 그날 첫사랑 남자친구와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친구 커플과 광안리 바닷가에서 함께 생일축하 겸 축구응원을 하며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눴어요. 4년 뒤에도 우리 넷이 함께 월드컵을 보자는 굳은 약속을 하면서요.
하지만 2006년 우린 그 약속을 아무도 지키지 못했어요. 함께 있던 제 단짝 친구는 그 4년의 사이에 첫사랑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를 만나 2006년 6월이 오기 전에 이미 결혼을 했고요, 저는 2006년에 5년이 넘는 첫사랑과의 긴 연애에 마침표를 찍었어요.
스물한 살 때 만나 스물여섯에 헤어졌으니, 저의 대학생활과 청춘은 늘 이 친구와 함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가물가물 흐려졌지만, 얼마 전 방영했던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드라마를 보며 “아, 우리도 그랬었지!”하고 다시 떠올랐어요.
우리는 이십 대 초반에 맞게 싱그러웠고, 서툴지만 열심이었고, 빛나고 따뜻했어요.
드라마 주제곡 가사에 딱 맞아떨어지게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광안리 바닷가를 함께 걸으며 벚꽃과 바다, 그리고 그날의 하늘을 보며 일주일 전 그 애가 한 고백에 답을 했었지요.
우리는 그런 설레는 봄을 지나, 여름의 뜨거운 태양처럼, 속절없는 소나기처럼 사랑을 했고, 군대 간 남자 친구를 기다리며 온통 가을처럼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또다시 만날 땐 한겨울에 느끼는 붕어빵의 달콤함과 따뜻한 온기처럼 그 애가 반가웠어요. 그런 몇 해를 지나고 그 아이는 복학생으로, 저는 서울로 취업을 해서 각자의 새로운 삶에 정신이 없었어요
연인이 사랑을 한다는 건 꼭 함께 붙어있지 않더라도 서로의 일상이 공유되고, 공감하는 게 중요하단걸 지금은 알지만 그땐 몰랐어요.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아마도 어느 순간부터 예측하기 어려운 서로의 일상과 공감하기 어려운 서로의 고충, 고민들로 조금씩의 균열이 생긴 걸 거예요. 결혼 적령기(지금은 없지만 당시엔 사회가 만들어 둔 결혼적령기가 있었죠)는 다가오고, 직장생활 4년 차인 저와 이제 막 복학한 대학생은 이제 같은 꿈, 같은 곳을 바라보기에 서로의 환경과 상황이 너무 달라져버린 거죠.
그렇게 우린 이별을 했고, 우리의 청춘은 서랍 깊숙한 곳으로 빛바랜 사진처럼 조금씩 희미해졌습니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냐고요?
저를 평생 못 잊을 거라고 결혼도 하지 않겠다던 그 애는 저보단 물론 늦게 결혼을 했지만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어요.^^
하지만 저는 알고 있고, 믿어요.
우리가 비록 서로의 첫사랑으로 과거가 되었지만,
스물하나였을 때 그 애가 제게 했던 고백도,
스물여섯이었을 때 이별 앞에 잊지 못하겠노라 했던 말도 모두 그때의 우린 진심이었음을요!
그 애와 저는 첫사랑이기도 하지만 대학동기이기도 하니까 이십 년이 지났지만 가끔 단톡방이나 친구들 경조사에서 마주칠 때도 있어요. 그럼 우린 자연스럽게 안부도 묻고 가벼운 농담으로 그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언젠가 제가 그 애에게 물었어요.
“그래서 넌 나를 만난 그 긴 시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야? “
그 애는 이렇게 답했어요.
“음 다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내가 군대 가서 한참 훈련받던 때가 여름이었는데, 우리 둘 다 2% 음료수를 좋아했잖아. 근데 군대에서 첫 통활 시켜줬던 날 너에게 전활 했는데 네가 힘들게 훈련할 날 생각하니 맘이 아파서 2% 음료수를 안 먹게 되었다고, 참고 있다고 그 말을 했는데 그 한마디가 평생 기억에 남더라?! “ 저는 그건 기억도 못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똑같은 질문에 저의 답은 (물론 그 앤 아직도 모를 것 같지만) “어느 여름날 엄청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는데 무슨 일정으로 외부 카페에서 미팅이 예정시간보다 두 시간이 넘게 늦게 끝났는데 우산이 없단 걸 알고 카페 입구에서 두 시간 넘게 그 아이가 절 기다려줬는데 우산을 씌워주는 내내 그 아이의 흰색 카라티셔츠가 반쯤 다 젖었는데, 저를 챙기겠다고 우산을 제 쪽으로 계속 양보한 거예요… 나중에 다 젖은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는데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웠는지, 그 흠뻑 젖은 뒷모습이 평생 기억에 남아있어요.
명절이 되어 고향인 부산에 오니
집 근처인 광안리 바닷가는 역시나 그 애와의 추억이 여전히 여기저기 문득문득 떠올리게 하네요^^
정말 곱고 예뻤던, 가진 것 없지만 꿈은 컸고,
서툴러 수없이 넘어지고 방황했지만, 씩씩하게 일어나는 것도 거침이 없었던, 수줍지만 순수했고, 미숙했지만 뜨거웠던 우리의 청춘! 첫사랑은 끝났지만 이십 년이 지나도 고맙고, , 아름답게 빛나던 나를 만들어 준 너‘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아요. 이 바다가 존재하는 한 말이죠!
저는 이번 설에 딸아이와 부산 본가에 내려와 처음으로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부산이 고향이니 정작 저는 집에서 지내서 부산의 뷰맛집 숙박을 평생 해본 적이 없는데 사춘기 딸아이에게 특별한 기억을 선물하고 싶어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단 하루의 외박을 계획했어요
오늘 저는 딸아이와 밤 문화를 느끼러 오락실도 가고, 인형 뽑기도 하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엄마의 고등학생 시절이나 첫사랑 이야기를 나누며
아기새에겐 곧 다가올 청춘!
엄마에겐 이제 지나간 청춘! 에 대해 밤새 웃고 떠들며 여자들의 수다타임을 가질 예정이에요.
저의 첫사랑, 여러분의 첫사랑과 꼭 닮은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들으면서
우리 모두의 빛나고 아름다웠던 청춘의 사랑을 노래한
고재종 님의 [첫사랑]이란 시도 아기새에게 들려주려고 해요.
곧 첫사랑을 맞닥뜨릴 내 딸아이도 빛나고 아름답고 열심히 청춘답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길!!
원곡을 들으시려면
https://youtu.be/R3KtLQylivQ?si=QFeqX9THvzARAp7b
오랜만에 서랍 속 켜켜이 접어두었던 첫사랑의 기억을
쨍하고 환한 햇살에 말려주고, 탈탈 털어 상쾌한 바람을 맞게 해준 반짝반짝 빛난 하루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