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사랑해요 (한스밴드)
"어느 날 문득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랑이 온 거야~"
한스밴드 [선생님 사랑해요]의 첫 소절.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꾸밀 줄도 모르고, 세상물정 모르는 사춘기 아이가, 선생님이 좋다고 가슴이 콩닥콩닥, 교탁 위에 음료수도 가져다 놓고, 쉬는 시간에 쪽지를 써놓고 오기도 하고, 선생님 얼굴만 봐도 얼굴을 붉혔죠! 온갖 순정 만화에는 선생님과 사랑을 하는 여고생 주인공의 이야기가 친구들의 "꺄악~!" 소리와 함께 "나도 나도"하며 함께 깔깔대며 봤던 기억도 나고요.
선생님이란 존재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공부를 가르치는 teacher 그 이상의 의미인 것 같아요.
좁은 교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좋든 싫든 사회로 나가기 전 아이들에게 "첫"생각, "첫"경험, "첫"갈등 등 수많은 "첫"을 선물하거든요. 이 모든 경험은 친구사이에도 있지만 선생님과의 관계에도 있고요.
저는 친동생이 교직에 있고, 가까이에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는지 알기에 기본적으로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한 존중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모든 선생님들이 반짝반짝 빛나지만은 않았고요.
부모님께서 제게도 교대를 권한적이 있으셨는데, 너무 순종만 하던 딸이 교대는 죽어도 안 가겠다고 하니 당시에 굉장히 당황해하셨던 적이 있어요. 아직 부모님도 모르시는 저만의 비밀인데 어린 마음에 제가 선생님에 대한 실망을 크게 했던 한 기억의 영향이 컸어요.
국민학교 5학년때, (국민학교니까 김영란법도 없고, 촌지, 체벌 등이 만연하던 시절이겠죠?) 반에서 부반장이던 저는 여학생이고 글씨가 예쁘니까 선생님께서 매일 아침 교무실 책상에 적힌 선생님들용 공지사항을 써오라는 심부름을 1년 내내 시키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의 교무수첩을 맡긴 거니 저를 엄청 믿어주시고 예뻐해 주셨던 건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매일 심부름을 하던 어느 날 수첩 맨 앞페이지 달력에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걸 발견합니다. 모든 아이가 아니라 o월 o일 김 oo, 이 oo, 또 며칠 후 o월 o일 장 oo... 이게 뭐지? 의아했는데 그걸 몇 달 뒤에 알게 되었어요. 그건 엄마들이 찾아온 날,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담의 명목으로 촌지를 받으셨을 것으로 추정) 그 아이들이 그대로 그달에 과학의 달 글짓기, 그림대회, 독후감대회 등에서 차례로 상장을 받았어요. 정확히는 많이 찾아온 아이가 우수상, 한번 온 아이가 장려상 이런 식으로 요. 어쩐지 숙제도 안 해오고 공부도 안 하는 말썽꾸러기가 갑자기 글짓기상을 받고 친구들끼리 의아해했던 그런 상황이 뭔가 퍼즐 조각처럼 맞춰진 거였죠. 평소 예쁘고 상냥한 얼굴에 멋쟁이 셔서 좋아했던 선생님께서 그럴 리가 없다고 애써 기억을 지우려고 했지만 학년말에 의심은 확신이 되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조금 대쪽 같은 스타일이어서 학기 초에는 인사를 안 오시고, 매년 1년 동안 감사했다. 내년에 뭘 좀 신경 쓰면 되겠느냐 상담을 겨울방학을 며칠 남긴 학년말에 꼭 오셨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다녀간 다음날 그 앞페이지 캘린더엔 박 oo이름이 쓰여있는 거죠!
아..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선생님과 세상에 대한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제야 매년 나름 상장 부자였는데 5학년은 이렇게 상장이 적지? 했던 모든 의구심이 해소되며, 쐐기를 박듯, 그달에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상장을 받았어요. 저는 세상의 "부조리"라는 걸 처음 경험했어요. 어제까지 웃으며 인사하고 존경하던 선생님은 이제 불공정의 대표 어른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물론 대부분 만난 선생님들은 너무 훌륭하시고 좋은 선생님들이었지만 아마 그때의 기억이 여린 제 마음엔 굉장히 큰 충격이자 상처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게 그런 기억만 있던 건 아니에요 저는 선생님 덕분에 인생의 방향이 바뀐 경험이 있어요!
물론 학창 시절은 아니고 대학교 1학년때! 저는 경영학부생이었는데 1학년때 외국어 교양과목으로 초급 일본어를 수강하게 됩니다. 아!! 그런데 그 수업의 담당 교수님 (지금 생각해 보면 교환교수, 시간강사 정도였을 거예요)이 금성무 같은 외모를 하고 등장하는 거 아니겠어요?
저는 고등학교 때도 앓지 않았던 선생님앓이를 스무 살 때 시작했어요. 친구들 미팅 연애한다고 난리인데, 저는 교수님과 말을 한마디 더하고 싶어서 파고다학원에 등록을 하고요, 전공도 아닌데 일본어 수업을 욕심내서 듣게 됩니다. 교수님은 (일본이 군대가 없다 보니) 굉장히 젊으셨고 미혼이셨지만, 성격도 상냥하셔서 단둘의 데이트를 해보진 못했지만 친한 일문과 친구들 몇몇과 함께 일본 영화를 보러 극장도 가고, 한일전 축구경기도 보고, 간혹 맥주도 함께 마시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회화 인터뷰 테스트라도 하면 이건 시험인지, 1:1 소개팅인지 저는 너무너무 좋았지요. 결국 저는 교수님의 수업을 더더더 듣고 싶고, 교수님의 말을 더더더 잘 알아듣고 싶어서 일문과 복수전공을 하게 되었고 전공자도 취득하기 어렵다는 JLPT 1급을 쟁취했어요.
결론은 어찌 되었냐고요? 결론은 교수님은 함께 한국으로 나온 여자 교수님과 결혼을 하셨지요 ㅎㅎ 저의 무모하지만 빛났던 짝사랑은 "The Power of Love"가 되어 훌륭한 성적표를 안겨주었습니다. 나중에 4학년 때 취업을 하고 오랜만에 찾아간 학교에서 교수님은 엄청 반갑게 맞아주셨고, 저는 보고 싶었고 너무 궁금했다 등등의 수다를 교수님께 늘어놓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외국인이고, 외국어로 말을 하니까 좀 더 용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어차피 교수님은 저를 귀여운 제자로 보셨으니 그저 좋은 성적,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 또 일찍 취업해서 돌아온 모습 마치 부모님의 마음처럼 대견하고 뿌듯하셨겠지요. ^^
우리 아기새(딸)도 지금 중2인데, 학원에 그런 선생님이 계세요. 수학 보조선생님인데 무려 S대 대학생! 나이로 치면 몇 살 차이도 안 나니 사회 나오면 오빠 동생일 수도 있지만 아직 아기새에겐 하늘 같은 스승이고, 선생님이 전 과목 만점 받으면 방학 때 맛있는 거 사주겠단 말에 성적표를 받자마자 엄마인 저보다 선생님께 연락을 했더라는!! ㅎㅎㅎㅎㅎ 모전녀전인가요? ㅋㅋㅋ
이루어질 리 없는 무모하지만, 순수하고, 그래서 귀엽고 예쁜 그 시절의 선생님 사랑
하지만 좋은 스승은 백 마디 엄마의 잔소리보다 아이에게 큰 응원과 독려를 주기도 하니까요.
그뿐이 아니에요.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아파트에서 그때부터 쭈욱 우리 집 옆라인에 살고 계신데, 6학년때부터 아기새를 엄청 예뻐하셔서 여러모로 마음을 써주셨어요. 눈물이 핑 돌게 고마웠던 건 아빠와 살지 않는 아기새의 상황을 어렴풋이 알고 계셨는데, 아파트 단지 내에서 주말에 친구 몇몇을 모아 탁구장에도 데려가시고, 아파트에 장이라도 서면 함께 만나 바이킹도 함께 타고, '남자 어른'의 좋은 모습을 너무 잘 보여주셨지요. 특히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은 운동을 같이 해주는 게 사실 쉽지 않은 부분인데 한창 탁구에 빠져있던 아기새와 일부러 시간을 내주신 점이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게다가 그 선생님은 여전히 한동네 좋은 이웃어른으로 아기새와 여러 수다를 나눕니다. 다니고 있는 학원 정보도 아기새에게 물어보고 선생님의 아들을 따라 보내기도 하고요, 가끔 버스에서 만나면 중학교 생활도 이야기하면서 그해의 담임으로서의 의무는 끝났지만 여전히 스승으로, 좋은 어른으로 힘이 되어주세요. 아기새의 인복이기도 하지만, 좋은 스승을 만난다는 건,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 못지않게 일생에 큰 영향력을 주는 것임엔 틀림이 없어요.
그런 점에서 한스밴드가 부른 "선생님 사랑해요"는 첫사랑의 느낌을 담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성 간의 두근 두근의 사랑만이 아닌, 부모를 제외한 어른에 대한 존경심, 세상에 대한 호기심,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아이가 만나게 된 그 모든 긍정적인 감정이 모여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것'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잘생긴 일본어 교수님이 그러했듯, 학업에 동기부여를 듬뿍 부어주신 아기새의 S대 선생님이나, 탁구를 같이 쳐주시며 좋은 어른의 모습이 되어주신 6학년 담임선생님이 그러하셨듯,
모두 직업이 선생님으로 불렸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 크나 큰 영향력을 끼친 좋은 어른으로 "선생님 사랑해요" 고백을 받을만한 '빛나는 스승'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어제 문득 친구와 대화하다가 "학생과 선생님 같잖아"로 시작된 추억소환이었는데,
좋은 스승은 좋은 어른, 좋은 인연으로 세월이 지나도 가르친 지식뿐만 아닌 그분이 하셨던 말, 생각, 추억이 우리에게 좋은 양분이 되어 평생에 "영향력"을 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비단 학교에서 만나는 선생님만 스승이 아니라, 우리 삶에 나를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주고, 나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이는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나의 스승이 되는 거 아닐까요.
오늘은 각자의 가슴속에 추억의 선생님 또는 좋은 영향력을 준 스승과 같은 소중한 인연을 떠올리며, 설레고 행복한 마음으로 이 곡 함께 들어보길 추천해요!!
※원곡을 들으시려면,
https://youtu.be/Woi1yifEo3s?si=KpkzLPv1AOw1sHb8